미디어 세상은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 휴대전화기에 속속 뜨는 뉴스를 보며 우리는 쉽게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는 종종 놓치곤 한다.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미디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어떻게 ‘걸러내야’ 할까. 지난 5년간의 미디어 환경을 면밀하게 분석한 유네스코의 보고서 안에 그 답이 있다.
진화하는 미디어, 헷갈리는 우리
“페이스북은 미디어가 아니라 기술기업일 뿐이다.”
지난 4월 11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미의회 청문회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이스북은 무려 8700만 건에 달하는 사용자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미 국회와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보다 며칠 전인 3월 26일에는 우리나라의 나경원 국회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일베 폐쇄 추진을 우려한다” 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일었다. 일베(‘일간베스트’의 준말로 혐오와 폭력, 차별을 조장하는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게재돼 여러 차례 논란을 빚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폐쇄를 주장하는 국민 청원이 일자 청와대가 실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논평이다. 비록 그 맥락과 발언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인사들이 며칠 간격으로 내뱉은 이 발언들로 인해 사람들은 새삼 이 시대 미디어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해당 발언을 전혀 근거가 없다고 단정 짓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나 의원의 발언은 공익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면에서 경청해 볼 여지가 있다. 그저 이용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게시물을 만들고 퍼트릴 수 있도록 ‘틀’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을 언론이라 정의하는 것도 성급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합리적인 이유를 고려하더라도, 두 사람의 발언은 여전히 실망스럽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다. 그 이유는 익명의 그늘에 숨어 타인의 인권과 존엄마저 서슴없이 짓밟는 해당 인터넷 사이트의 행태와, 넘쳐나는 가짜뉴스가 가져온 막대한 파급력을 그저 손 놓고 보기만 했던 페이스북의 잘못을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논란은 오늘날 숨 가쁘게 변화해 온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21세기를 관통하는 이 시대의 미디어란 과연 무엇일까. 미디어를 미디어라 칭할 수 있는 형태와 내용과 역할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대량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활자 시대를 연 이후 6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미디어가 발달해 왔지만, 요즘처럼 미디어의 정의와 역할을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적도 없었다.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과 미디어의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유네스코는 지난 5년간 현대 미디어가 직면한 기회와 도전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발전 경향에 관한 유네스코 보고서>(UNESCO’s World Trends in Freedom of Expression and Media Development)를 공개했다.
규제와 자율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
미디어 자유, 미디어 다양성, 미디어 독립, 언론인 보호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급변’이다. 2012년부터 작년까지, 전세계 미디어 환경은 급변이라는 단어가 딱 맞을 정도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급속도로 보급된 스마트폰과 더불어 뉴스나 정보를 소비하는 개인의 미디어 환경은 그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고, 이러한 변화가 미디어 업계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신문과 방송의 시대였던 20세기에 적어도 몇 시간에서 하룻밤 정도는 걸려야 대중에 전파됐던 뉴스는, 이제 실시간으로 전파되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기존 매체들은 그 속도전을 좇아가기 바쁘다. 지금 미디어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은 역시 인터넷 매체이며, 그 중심에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가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기존의 법률과 규제가 새로운 유형의 매체들이 갖는 파급력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들 신매체의 영향력에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그 영향력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대단히 낡은 방법으로 단속하려 한다. 그 낡은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지에 대한 의문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공공성과 시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내놓는 정부의 대응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있는 경계를 넘나들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구글과 페이스북 등 주요 사업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제기한 콘텐츠 삭제 요청 건수는 최근 몇 년 새 큰 폭으로 늘었다. 음란물이나 혐오물,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콘텐츠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일까? 보고서에서 제시한 <그림 2>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구글이 자사 투명성보고서를 통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접수된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삭제 요청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 안보’였다. 안보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이나 인권 같은 이유에 비해 정부 성향이나 정책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요인임을 볼때, 이러한 추세가 전반적인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보고서의 지적은 분명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내 눈으로 보고 읽은 것, 어디까지 믿을까
넘쳐나는 뉴스와 정보, 막강해진 온라인 미디어의 파급력 앞에서 방황하는 것은 정부와 관계 당국뿐만이 아니다. 뉴스 소비자 역시 지난 5년간 뉴스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뉴스와 정보의 절대적인 양에 비해, 그 내용이 ‘진짜’인지, 늘어난 양만큼이나 다양한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그렇다’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매일 수백 개씩 쏟아지는 뉴스를 다 처리해 낼 수 없다. 뉴스 생산자로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다수 뉴스 생산자는 막대한 양의 뉴스를 어떻게 선별해 소비자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했다. 보고서는 그 결과 뉴스 알고리즘이 너무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일반인들이 주요 뉴스를 온라인으로 얻는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뉴스나 정보의 선별을 알고리즘에 맡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인터넷에서 ‘독자의 주목’(attention)이 갈수록 희소한 자원이 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은 정보 선별과 제공에 큰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는 독자의 현실을 왜곡할 위험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 제공자의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뉴스 선별 작업을 시작 한다. 소비자의 취향을 알아야 소비자가 해당 기사를 클릭할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은 차츰 소비자의 취향에 딱 맞는 정보만을 보여주게 되고, 해당 소비자는 자연히 자기가 보고 싶은 뉴스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 갇히게 된다. 바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많은 미국 시민들이 2016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목격했듯, 필터 버블은 특정 이해관계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폭발적으로 유통되는 배경이 됐다. 이러한 현상은 온라인 뉴스 획득 비중이 높은 젊은 층에서 특히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있다.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 젊은 뉴스 소비자들의 뉴스 획득 경로는 점점 온라인, 특히 소셜네트워크로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단 1초라도 더 오래 자사의 콘텐츠에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아두려는 공급자의 욕망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주체적으로 뉴스를 선별하고 소비하기가 점점 힘에 부치는 소비자의 사정이 맞물려 왜곡된 모습으로 세상이 ‘재구성’되는 것을 막을 현명한 대책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그 대책 중 하나로 미디어 정보 문해력(Media and Information Literacy)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뉴스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뉴스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현 시대에 꼭 필요한 미디어 정보 문해력 교육은 지금까지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논의가 집중됐다. 하지만 보고서는 가짜뉴스를 비롯한 최근의 사례를 이유로 들며 앞으로는 그 대상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지만 다양하지 못한 뉴스의 딜레마
21세기로 접어든 지도 한참 지난 이 시점에, 특히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이 종사한다는 미디어 업계에서 성평등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가 ‘젠더 격차’를 미디어 업계의 특히 큰 문제점 중 하나로 꼽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미디어 생산 및 소비 환경이 좋아지고 접근성이 향상되었음에도, 보고서는 여전히 여성이 뉴스 생산과 소비 과정 전반에서 심각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림 4>에서 보듯, 여성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직책이나 콘텐츠 생산 직에서 남성에 비해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뉴스의 정보원이나 뉴스 대상으로서 차지하는 비중도 남성에 비해 대단히 낮다. 보고서는 “대중 매체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을 처음 분석한 1970년대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성별 편중 문제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며 개선 속도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1995년 조사에서 17%를 차지했던 여성의 미디어 콘텐츠 노출 비중은 2015년에도 24%에 머물렀다.
양적인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 미디어에서 젠더 격차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다. 뉴스가 이야기를 다루는 대상과 이를 전달하는 주체,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물 구성을 모두 바꾸지 않는 한, 여전히 세상의 젠더 격차는 줄어들기 힘들다는 뜻이다. 여성 차별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스포츠 중계’를 예로 들면, 세계 주요국에서 스포츠 관련 중계의 12%만 여성 리포터가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유네스코, 세계 라디오의 날 기사). 이는 50여 개 조사 대상 뉴스 카테고리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미디어가 조명한 여성 스포츠인의 숫자 역시 전체의 7%에 그쳤고, 그중에서도 오로지 여성 스포츠인만 다룬 기사는 4%에 불과했다. 그나마 여성 스포츠인을 다룬 기사조차 그 대상이 기계체조나 비치발리볼 등의 종목에 국한돼 매우 정형화된 (stereotypical) 여성성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보고서는 성평등 분야 외에도 성 소수자, 이민자, 타 문화권에 대한 내용을 미디어가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디어가 양적인 팽창만큼의 다양성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힘없고 주변화된 사람, 인터넷 접근조차 어려운 사람, 그리고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여성이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한다.
창을 닦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
미디어를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비록 미디어의 모습이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지만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우리의 눈은 앞으로도 미디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 같은 새로운 기술은 그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유네스코의 이번 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을 확인시켜주는 한편, 개선을 위한 실마리도 보여준다. 그 실마리란 다름 아닌 뉴스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번에 제시한 방대한 자료와 분석 결과가 미디어가 열어갈 미래를 향한 바르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근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가짜뉴스나 개인 정보 유출, 미디어의 편향성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고려할 때,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
참고자료
유네스코 글로벌 리포트 2017/2018 “World Trends in Freedom of Expression and Media Development”
journalism.org “News Use Across Social Media Platforms 2016”
fortune.com “Why Facebook Won’t Admit It’s a Media Company”
diamundialradio.org “Is Sports Broadcasting ‘Dropping the Ball’ on Gender Eq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