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한국의 연등회가 지난해 12월 14~19일에 개최된 제1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8년 씨름에 이어 한국의 21번째 유네스코 무형유산이 된 연등회의 역사와 등재 의의를 전한다.
연등회의 역사적 가치
연등회는 세계적으로도 역사가 오래된 축제 중 하나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축제 가운데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축제는 찾기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축제들의 기원을 조사해 봐도 그 역사가 길어야 2-3백 년에 불과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866년(경문왕6)에 “왕이 황룡사로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황룡사가 569년에 창건됐음을 감안하면 연등회가 길게는 1600년, 짧게는 1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등회는 고려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지키라는 유훈을 남겼고, 《고려사》에는 연등회에 관련한 기사도 많이 보인다. 1073년(문종27)의 기사에는 “왕이 대궐에서 흥왕사를 행차할 때 좌우로 채붕(彩棚)을 배설하고 등산(燈山)과 화수(火樹)를 설치하여 대낮처럼 밝았으며, 백희연희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는데 3만여 개나 되는 연등을 밝혔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렇게 민간에 깊이 뿌리내린 풍속으로 자리 잡은 연등회는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조선 후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집집마다 높은 장대를 세우고 가족 수대로 등을 매달았으며, 그 형태도 수박, 사슴, 연꽃, 마늘 등 다양하다고 나와 있다. 심지어 일제침략기에도 연등회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결국 총독부에서 주관하여 연등회를 열 수밖에 없었으며, 해방 후에 부활한 연등회는 1970년대에 KBS에서 연등행렬을 중계방송할 정도로 온 국민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무형문화유산 등재의 의의
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인정한 가치는 어떤 것일까? 우선 유네스코가 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조건으로 요구하는 유산의 가시성 측면에서 연등회는 인간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고취시키는 동인을 충분히 갖고 있다. 해마다 개최되는 연등회에 참여하는 사찰과 신행단체들은 전통과 변화의 조화를 이루며 고유의 창의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등회 때 개최되는 창작등 만들기 대회는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 이 대회를 통해 해마다 새로운 등이 출현하며 창조적 발전도 이루게 된다. 공동체 및 단체와 개인 간의 상호존중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도 연등회는 가치가 있다. 연등회는 종파를 넘어서는 여러 종단과 사찰, 그리고 신도들 간의 존중을 통해서 연출해내는 문화현상으로, 이 행사를 통해 참가자들은 연대의식을 높이고 상호 존중하는 공동체적 관습을 더욱 돈독히 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와 같은 창의성과 공동체적 관심이 연등회를 1천 년이 넘는 민족의 축제로 승화시켜 온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밝히는 등불 되길
사실 연등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단지 우리나라만의 행사는 아니었다. 《고려사》에는 의종(1147-1170)때 왕이 연등을 꾸미고 행차하는데, 서역의 안국기(우즈벡) 40명, 고창기(투루판) 16명, 천축기(인도) 18명이 참가해 가두행렬을 벌이며 다채로운 공연을 펼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연등회 문화마당에는 스리랑카, 몽골, 네팔, 티베트, 태국, 라오스, 미얀마, 인도, 베트남, 일본 등 10여 개의 나라가 부스를 마련하여 자국의 불교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수한 문화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이므로, 조상이 물려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를 더 잘 가꾸고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연등회와 같이 이미 신앙을 초월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로 굳어진 지 오래인 문화는 종교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져 왔으며, 우리 민족의 애환과 꿈과 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연등회가 앞으로도 종교를 넘어 한국의 대표적 축제로서, 또한 세계인의 축제로서 지구촌에 희망의 빛을 널리 퍼뜨려 주기를 기대한다.
김용덕 한양대 명예교수, 불교성보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