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만 6년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박흥순 선문대학교 국제·유엔학 명예교수.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유네스코와의 인연이 바탕이 되어 국제정치학에서 비교적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국제기구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박 교수는 6년간 맡은 집행위원직 역시 그 ‘특별한 인연’의 일부라고 회상했다.
그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위, 더 나아가 유네스코의 비전과 역할에 대한 조언을 <유네스코뉴스>가 청해 들었다.
2012년부터 6년간 집행위원 활동을 하셨습니다. 임기를 마친 소회가 어떠하신지요.
개인적으로 명예롭고 보람있는 기간이었습니다. 그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는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했고 많은 양적 및 질적인 변모가 있었다고 봅니다. 유네스코 본부와 한국정부 및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유네스코의 이상과 목적을 실현하는 한위의 역할이 잘 이루어지도록 기여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이 배우고 귀중한 경험도 얻었습니다.
6년간 여러 방면에서 유네스코의 활동에 참여하셨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례적인 분과 및 집행위 회의는 물론, 한위 창설 60주년 행사를 비롯하여 여러 대내외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침 2016년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 단장으로 약 100여 명의 교사들과 함께 일본 교육 정책의 내용과 다양한 각급학교 교육현장을 관찰하고 일본교사 및 관계자들과 대화한 것은 한일문화교류와 비교교육의 차원에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하여 유네스코 정책 및 사업의 실제 논의와 기구의 작동에 대하여 직접 살펴본 것도 국제기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의미가 컸습니다. 당시 한위 스태프들이 각자 전문성을 발휘하며 활동하고 다른 회원국 대표와 교류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하던 모습이 특히 인상깊었습니다.
박은경 부위원장은 유네스코 집행위원들과의 인연을 ‘유네스코 프렌즈’라는 모임으로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처럼 29대, 30대 집행위원들의 유네스코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입니다. 박 교수님께서도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유네스코와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곤 하셨습니다.
29대, 30대 집행위원들이 특별한 ‘동지의식’을 갖게된 것은 한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열심히 회의에 참석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봅니다. 특히, 박은경 부위원장의 원만하고 훌륭한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습 니다. 박 부위원장님의 제안으로 지난 3년간 집행위원회 회의를 가급적 유네스코 문화유산도시나 지역에서 개최하며 함께 여행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얻었고, 이것이 긴밀한 동지애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 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OB 위원들은 친교뿐만 아니라 그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서 한위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기꺼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1970년대 대학 1학년 당시 KUSA(유네스코학생회) 회원으로 가입하며 유네스코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KUSA 동아리는 학술, 문화, 친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학생동아리였습니다. 이천 훈련원(현 유네스코평화센터)에서의 MT, 하계 방학 농촌봉사, 전국연합회 체육대회, 그리고 명동 유네스코 빌딩에서의 모임 등, 당시 활동했던 내용이 아직까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또한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 한위에서 ‘유네스코 쿠폰’을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피자 레스토랑이 있던 명동회관에서 친구가 사준 ‘이상한’ 피자를 처음 맛본 추억도 있습니다. 우연이겠지만 제가 국제정치학의 비주류 분야이던 국제기구를 전공한 학자가 되고, 또한 한위 집행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정년을 맞이한 이 특별한 인연은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유네스코뿐만 아니라 주요 국제기구들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일방통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네스코와 한위는 어떤 전략으로 비전을 실행해 나가야 할까요?
유네스코는 유엔 조직 중 매우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성격과 구조, 그리고 내부 역학을 가진 국제기구입니다. 동시에 다른 기구들처럼 정부간 국제기구로서 그 활동 및 사업이 국제정치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1국 1표 주의’와 ‘주권평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주요 재정분담국 및 강대국의 파워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국제기구의 정체성 및 자율성과 국익을 내세운 회원국 사이의 갈등과 마찰은 영원한 딜레마입니다.
최근 미국이 보여준 일방주의 행태는 분명 유감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도 다자주의로 서서히 복귀할 것으로 봅니다. 개별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기후변화, 테러, 난민, 인종갈등, 종교분쟁 등 전지구적인 난제는 국제사회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이러한 협력은 문화, 교육 등의 활동에서 전문성 및 역량과 권위를 가진 국제기구의 장치와 수단에 의해서 촉진될 수 있음을 미국도 새삼 인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유네스코는 무엇보다도 집행부를 중심으로 능률성과 투명성,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국제기구로서의 신뢰와 권위를 구축하는 개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임 사무총장의 취임에 따라 새로운 개혁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의례적인 개혁 이상의 성과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세계적 저명인사로 개혁자문위원회 등을 구성·운영하고, 회원국 전문가에게 의견을 수렴해 독립적인 개혁구상을 발굴·추진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유네스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국제사회의 참여를 촉진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유네스코에 상당한 분담금을 내고 있는 우리나라와 한위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내부의 개혁 추진과 함께, 유네스코의 활성화와 국제적 기여에 관심을 갖고 있는 회원국들, 특히 중견국들을 중심으로 연대를 구성하고 공동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네스코는 매우 유용한 국제사회의 다자 외교의 틀이기에 동지국가들의 연대는 큰 힘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한국은 국제사회는 물론 유네스코에서 충실하고 모범적인 중견국의 위상을 자임하고 있고, 실제로 인정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유네스코는 그 어느 국제기구보다 많은 실적과 신뢰를 쌓은 일종의 ‘선점기구’입니다. 외부 요인으로 유네스코에서 리더십의 불안정성이 생기는 이 때, 중견국으로서 중재 및 가교 역할(bridging role) 혹은 틈새 역할(nicheing role)을 찾아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위는 그동안의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네스코의 취약점을 식별하고 미래지향적 개혁방안을 모색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지적(intellectual)이고 경영가적(entrepreneurial)인 리더십을 촉진하는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함께 다른 회원국 및 국가위원회와 연대를 구축하고, 동시에 한위 위원은 물론 국내외 학계, 연구소, 시민단체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인 유네스코 발전 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합니다.
집행위원으로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조직의 국내외 활동을 지켜보고, 주요 사안의 의결에도 참여하셨습니다.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조직으로서, 앞으로 한위가 개선하거나 좀 더 힘써야 할 측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위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인원, 조직, 재정, 업무 분야에서 과제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조직 활동의 요체는 결국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위의 발전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정책적 측면에서 국가 및 사회 변화 속에서 유네스코 한위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존재가치를 가질 것인지를 검토하고 ‘도전적 발상’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과연 어떠한 사업 및 활동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펼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가령 조직의 투입 비용 및 인원 대비 성과 및 효과에 대한 검토, 그리고 비슷하거나 중복된 사업을 하는 타 기관이나 NGO의 역할을 비교 검토하여 과감히 새로운 설정을 하는 것 등입니다.
둘째, 유네스코 현직 위원은 물론 각 분야별로 사회의 다양한 인적자원을 활용하여 한위의 전문 인력풀을 확대·가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관장을 비롯한 각 기관위원이나 국회의원 등, 한위에 참여하는 위원들의 적극적인 기여를 촉구해야 합니다. 더불어 한위 OB 그룹을 비롯해 전문가와 학계, 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연구, 정책개발, 사례연구를 하는 한편 공개포럼, 토크 콘서트 등을 통해 유네스코 관련 지식과 담론을 국민들에게 더욱 확산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셋째, 정부 및 관련 부처가 보다 체계적이고 과감하게 대 유네스코 정책을 개발하고 가이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한위가 촉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성숙한 중견국가로서 유네스코를 통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쌍방향 협력, 즉 정부의 ‘하향식’(topdown)과 한위 주도의 ‘상달식’(bottom-up) 소통 협력을 결합해 체계적이고 적절한 유네스코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러한 국가적 정책 및 전략 개발과정에서 한위의 축적된 역량과 네트워크, 그리고 광범위한 인력 풀이 함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한위가 가진 국제적 위상이나 축적된 성과에 대해 한위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신감 있게 업무에 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사무총장님을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필요하며, 스태프 각자가 전문가라는 입장에서 한위 위원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는 것이 한위 발전에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분위기와 기회가 많이 이루어지도록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한위와 〈유네스코뉴스〉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교육자로서 젊은 세대가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는 것이 우리의 중차대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글로벌 시민교육은 유네스코의 이상과 목적에 부합하는 매우 중요한 교육 과정이기에, 한위가 주도하여 국내에 이 교육을 확산 하는 것은 국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사실 글로벌 시민교육의 다양한 내용은 단순히 세계화되고 다원화된 세상의 문제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거나 혹은 도덕적 측면에서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깨우치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한국처럼 선진국을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선진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소양으로서 글로벌 시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유네스코의 전반적인 이상과 목표가 결국 글로벌 시대의 ‘선한 시민의식’(good citizenship)을 배양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위가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에 사명감을 갖고 더 많은 발전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유네스코뉴스> 독자들도 보다 큰 애정을 가지고 유네스코 활동에 참여하고 성원해주시기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