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 팬데믹: 세계 시민, 코로나와 부정의를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을 묻다
코로나19와 함께 지금 전 세계는 혐오, 차별, 불평등과 배타주의,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대량실업과 경제 위기, 허위정보 범람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겪고 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은 이를 ‘멀티플 팬데믹’이라 규정하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의 논의를 촉발하고자 『멀티플 팬데믹: 세계 시민, 코로나와 부정의를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을 묻다』를 출간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치료제와 백신도 없는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사회 속 깊숙이 깔려있던 다른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특정 국가나 지역, 인종, 직업군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퍼지며 사회 분열이 극심해졌고, 방역과 개인 정보 및 인권 보호 간 우선 순위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이 대치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과 인간 사이의 접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세계는 넘쳐나는 부정확한 정보와 뉴스로 인해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가히 ‘멀티플 팬데믹’(multiple pandemics)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을 세계 시민의 관점에서 논의해 보고자 기획한 이 책의 머리말에서 임현묵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장은 “시민의 연대와 협력이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 못지않게 시민의 생각과 행동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을 구성하는 9개의 장은 크게 감염, 방역, 연대의 관점에서 멀티플 팬데믹에 대해 논한다. 먼저 ‘감염’을 다룬 1부에서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의 역학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병 위기 상황이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다양한 생태학적 요인과 물리 환경 및 사회 환경, 정치·경제적인 여건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코로나19의 과학과 정치의 만남을 논한다. ‘방역’을 다룬 2부에서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K방역의 성공이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있다’고 보고 한국만의 특수성을 분석한다.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과 방역을 대립적으로 보는 사고에서 벗어나 면역을 함께 돌보고 가꾸는 ‘커먼즈’(Commons)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최종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영토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급속도로 퍼지는 코로나19의 양상을 통해 어디에 살고 있든 상관없이 ‘탈영토화’를 체험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코로나19의 당사자라고 역설한다. 또한 유현재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위기 상황 속에서 언론의 역할이 ‘심리적 방역’이라는 공공의 목적에 수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연대’를 다룬 3부에서 박순용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팬데믹 시대에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의 방식을 재정립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 세계시민교육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살펴본다. 손철성 경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는 다양한 윤리 사상을 살펴보고 ‘연대와 협력이 세계 시민의 도덕적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며, 조한승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신뢰성 위기를 진단하고 거버넌스의 회복을 위해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모든 세계 시민이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논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부상하는 문제들 속에서 세계시민교육에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시민교육은 차별, 혐오, 배타주의와 같은 부정의를 타파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동료 시민들과의 연대를 강조할뿐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치와 태도를 함양시키기 때문이다. “저희 학교는 전교생이 다문화가정 및 중도입국 청소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부 아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될까 두려움이 큽니다.” 이 책을 기획할 당시, 학교 현장의 의견 청취를 위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한 선생님의 고민이다. 녹록치 않은 학교 내 현실을 직시하며 학생들을 마주해야 하는 교사들이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을 들였고, 이 책의 논의를 바탕으로 교사용 수업 가이드도 개발하고 있다.
유네스코 본부는 멀티플 팬데믹 위기 속에서 ‘정상적인 것’(normality)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고 연대를 통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넥스트 노멀’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 캠페인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이전의 상태가 사실은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태도, 가치관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이름만 ‘뉴’ 노멀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 쓸 새도 없이 펼쳐진 새로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서로 연대하여 변화를 만들며 진정한 ‘뉴 노멀’을 개척해 나갈 것인가? 선택은 바로 우리 시민들의 손에 달려있다.
지선미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연구개발실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