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후원한 제2회 세계사회과학포럼 캐나다 몬트리올서 열려
사회과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언제일까? 사회과학의 손길이 미치는 곳은 어디까지일까? 사회과학이 사회변동과 정치발전과정에서 기대만큼 의제 설정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금융위기나 중국의 부상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혹시 현실의 문제에 둔감하고 무기력한 사회과학의 모습을 포럼을 통해 재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제2회 세계사회과학포럼이 열린 캐나다 몬트리올의 팔레 데 콩그레로 가는 길에 머릿속을 채운 이런저런 생각들이다.
국제사회과학협의회(ISSC)가 캐나다 학술단체· 기관 콘소시엄과 공동으로 주최하고 유네스코 등이 후원한 제2회 세계사회과학포럼이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제1회 포럼은 2009년 5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하나의 행성—갈라진 세계(One Planet― Worlds Apart?)”를 주제로 열렸다. 80개국 800여명의 사회과학자들이 참가했고, 아마르티야 센 등 노벨상 수상자도 자리를 같이 했다.
제1회 포럼 이후 4년 만에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전 세계 사회과학자 및 관계자 1,000여명이 모여 “사회변동과 디지털 시대”(Social Transformation and the Digital Age)를 주제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변동이 사회과학과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했다.
세계사회과학포럼은 사회과학의 존재 의의와 권위를 널리 드러내는 행사다. 분과학문의 경계,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현안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교환하고 사회과학의 여러 개념적 기틀을 마련한다. 또, 주최기관인 ISSC는 1952년 유네스코가 설립한 단체로서 인류의 복리를 위한 사회과학지식의 생산과 활용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유럽에 이어 미주 지역 도시 몬트리올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세 차례에 걸쳐 서로 다른 주제로 진행된 전체회의와 100개를 훨씬 넘는 세부 주제별 패널 발표, 비교 사회과학과 학제간 연구에 기여한 학자에게 수여하는 세계사회과학 상 시상식과 영화 상영 등으로 꾸며졌다. 논문 공모를 실시해 좀더 많은 신진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했고, 후원기관으로 참여한 유네스코와 유네스코캐나다위원회, 유엔환경계획 등이 정보화와 과학기술윤리,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표현의 자유 등을 주제로 각각 자체 세션을 구성·진행한 것은 지난 제1회 포럼과 다른 점이다.
100개 이상의 패널 세션 가운데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주최한 세션도 포함됐다. 포럼 2일째 오후에 서울대 박찬욱(정치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디지털 시대 공공정책과 거버넌스 변동’을 주제로 진행한 이 세션에서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엄석진 교수,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의 제인 파운틴 교수 등이 행정정보의 공유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을 중심으로 각자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밖에 ISSC의 회원기관인 대한민국 학술원의 강신택 전 서울대 교수가 10월 15일 오전 한국의 전자정부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주제 면에서 이번 포럼은 사회변동이나 사회운동 및 참여 등 이른바 사회과학의 전통적 주제에서부터 디지털 게임 담론, 노인의 사회정서적 안정을 위한 게임의 역할, 3D 프린팅의 사회적 의미, 소셜 미디어와 성 정체성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회과학이 감당해야 하는 영역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충분히 예상한 바이겠지만, 학자들의 출신 지역에 따라 다루는 주제도 차이를 보였다. 아프리카나 개도국 출신 학자들은 자국의 현실을 고려해 디지털 기술이나 미디어를 시민참여, 청년, 사회발전,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역량강화 등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경제와 사회발전이 국가적 관심사였던 1970-80년대 한국에서도 사회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진 바가 있었고 유네스코의 사회변동관리 프로그램에도 남미 국가들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제발전의 수준과 사회과학의 방향 간의 모종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시각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선진국 학자들이 선택한 주제는 조금 달랐다. 선진국들은 고령화, 성 정체성, 게임, 디지털 환경에서의 연구, 디지털 시대 인간학 등 지금까지 사회과학의 손이 충분히 미치지 않은 영역이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사회과학 방법론 등을 주로 다루었다. 한편 개최지인 캐나다 학자들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했다. 또, 캐나다 학자들로 구성한 패널이 전체 패널 수의 반 정도를 차지했다. 이는 세계사회과학포럼이 개최국의 사회과학 진흥을 여러 목적 가운데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개도국과 선진국 학자들의 연구주제가 상이한 측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었다. 두 개의 국가 집단 모두 좁은 범위의 주제를 놓고 통계적 기법을 사용한 연구보다는 사회과학의 역할 중에 하나가 사회변동에 기여하는 것임을 드러내 보이는 연구 결과들을 많이 발표했다는 점이다. 이를 영미 사회과학계와 유럽 사회과학계의 차이가 노출되는 지점으로 풀이한다면 아주 황당한 얘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번 포럼 참가자 가운데 경제학자는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경제발전을 주제로 한 소수의 몇몇 세션이 전부였다. 사실, 경제학은 사용하는 학문 언어나 분석 도구 면에서 사회과학 내 다른 분과학문에 비해 학자가 속한 지역이나 나라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대상을 국내총생산 등 지역적·문화적 특색이 그다지 많이 반영되지 않는 보편적인 지표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계에서는 다른 분과학문보다 서로 다른 나라나 문화권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기가 훨씬 용이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 포럼에서 경제학자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뒤따라야겠지만, 이런 현상은 세계사회과학포럼이 지닌 특성과도 관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사회과학포럼은 보편적인 학문언어, 보편적인 학문방법 못지않게 나라별, 문화권별 특수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이처럼 소위 학문 세계의 문화다양성을 인정하는 포럼이 마뜩찮을 수도 있고, 이것이 경제학자들의 저조한 참여로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사회과학포럼이 경제학자의 활발한 참여 없이도 앞으로 계속 ‘사회과학포럼’을 자처할 수 있을지는 좀더 고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번 포럼 참가자들이 폐회식에서 “2015년 남아공 더반에서 만나요!”라며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한 제3회 포럼은 2015년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남아공 더반 등지에서 ‘공정한 세계를 위한 국제관계의 변화’(Transforming Global Relations for a Just World)를 주제로 열린다. 제3회 포럼이 아프리카에서 열린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중간계층이 성장하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발전 도상에 접어든 아프리카가 제3회 포럼을 계기로 ‘공정한 세계’를 내세우면서 국제사회에서 일정한 역할과 지분을 챙기기 위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예술과 디지털 미디어 그리고 사회과학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첫 번째 전체회의로 시작한 이번 포럼은 폐회식에 앞서 열린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지식의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다루었다. 꽤 의미 있는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이 세션에서 역사학자 로버드 단턴은 올해 4월 출범한 미국의 디지털 공공도서관을 예로 들면서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가 지식의 민주화와 상업화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주장했다. 단턴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사회과학의 성패는 다름 아닌 지식의 수요자인 대중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사회과학이 나아갈 바 그리고 사회과학이 현실 세계에 대한 무기력과 둔감함에서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종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과학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