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등재가 성사되기까지
씨름은 2018년 11월 26일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공동 유산으로 인정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공식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다.
씨름 등재 논의는 2014년 7월에 처음 시작됐다. 당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무형유산보호 협력회의에서 남북한은 씨름의 공동등재 의사를 교환했지만, 2015년 3월 북한이 단독으로 씨름 등재를 신청하자 한국도 2016년 3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 국빈 방문 당시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남북 공동등재에 대해 논의했고, 이후 평양에 유네스코 특사가 파견되는 등 공동등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유네스코는 비록 씨름의 경기 방식이나 용어 등에 있어서는 남북한 간에 차이가 있지만,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이 많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결정이라는 의미도 더해져 정부간위원회 24개국 위원 국들은 만장일치로 씨름의 남북 공동등재를 결정했다.
씨름의 문화적 의미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조선시대 풍속화까지, 각종 문헌 자료에 등장하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인 씨름에는 크게 세 가지 문화적 특징이 있다.
첫째, 샅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샅바는 상대방이 잡을 수 있도록 허리와 다리에 둘러 묶는 끈을 말한다. 다른 문화권에 분포하는 씨름과 유사한 형태의 겨루기는 하의를 잡거나 허리에 두른 띠나 벨트를 잡는 등의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허리와 한쪽 다리에 낀 샅바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 씨름이 거의 유일 하다. 샅바를 지렛대로 삼아 힘과 기술을 다양하게 쓸 수 있기에 샅바씨름은 더 빠르고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체구가 크고 힘 센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반전의 기회가 크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쓰러뜨리는 그 순간의 짜릿한 쾌감은 샅바씨름이 주는 최고의 매력이다. 18세기 중국에서 한국의 샅바씨름을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撩跤)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한국의 씨름이 이웃나라의 그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였음을 잘 말해준다.
둘째, 공동체 의례의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씨름은 세시풍속의 하나로 특히 농사와 관련하여 발달한 의식이다. 씨름은 정월 초에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 위해, 가뭄이 심할 때 비를 기원하기 위해, 농번기에는 마을 주민의 단결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널리 이용되었다. 예를 들면, 모내기를 할 시기에는 어느 마을에 물을 먼저 댈 것인가를 놓고 마을 대항 씨름대회가 벌어졌다. 이때의 씨름은 개인의 힘과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인 동시에 마을 공동체 전체의 일, 즉 공동체 전체의 역량을 반영한 대동놀이였다. 남녀노소 마을 구성원 전체의 참여와 후원, 그리고 단결이 요구되는 씨름판에서 공동체는 저절로 하나가 되며, 현재에도 씨름은 소통과 화합, 그리고 축제의 한마당으로 한국인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셋째, 민족문화로서의 상징성이다. 씨름은 한국인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가장 오래된 무예요, 놀이이자, 스포츠다. 수천 년간 ‘몸’으로 한민족의 ‘언어’를 이어온 살아있는 유산이기도 하다. 씨름의 용구, 복장, 시합 법, 기술에서 우리 고유어를 많이 찾을 수 있으며, 씨름 용어들은 대부분 민중들의 몸짓과 재간을 순 우리말로 생생하게 표현한다. 식민지 시기에는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버팀목이자 구심점이 되었고, 2006년에는 국민들의 투표로 뽑은 ‘한국 문화를 대표 하는 100대 문화상징’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분단을 이은 무형문화유산
씨름은 한민족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살아있는 유산이지만, 70년 가까이 지속된 남북 분단은 하나의 씨름을 둘로 갈라놓았다. 왕래가 끊기면서 남북한은 각자 사회적 여건에 맞게 씨름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기술, 용어, 체급, 경기장 등 여러 부분에서 남북의 씨름에 차이가 생겼다. 그럼에도 샅바를 매고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똑같아서 여전히 남북한 간 기술의 차이는 거의 없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농사 절기와 관련된 농촌 공동체의 씨름이 약화되고 스포츠화된 씨름이 크게 발달한 점도 남북한 씨름의 공통점이다.
한편, 북한의 각 지역은 씨름의 기술적 특성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평안도의 ‘된샅바걸이’와 ‘망걸이’, 함경도의 ‘느즌샅바걸이’, 황해도의 ‘왼샅바걸이’, ‘개량씨름’ 등의 방식이 그 예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한국 씨름의 다양성을 되살리는 좋은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공동등재를 계기로 다시 만난 남북의 씨름은 그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더욱 발전할 계기를 마련했다. 남한에서는 북한 씨름에 남아있는 토박이말이나 옛 경기방식에 관심이 많고, 북한에서는 절기에 즐기는 남한의 씨름 문화나 국제 감각에 필요한 규칙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씨름의 자원을 풍부하게 만들어 씨름이 ‘몸짓으로 세계를 잇는’ 무형의 다리가 되기를, 더 나아가 남북의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심승구 한국체육대학교 한국사 교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