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세계시민교육과 지속 가능한 평화에 대한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평화를 중심에 두고 세계시민교육을 생각할 때, 2019년은 뜻깊은 해다. 바로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다. 유럽에서도 100년 전인 1919년에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파리 평화회담이 열렸다. 2천만 명의 희생을 치른 엄청난 파괴 이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가 힘을 받을 때였다. 바로 근대적 의미의 평화, 세계평화가 이때부터 공론장에 등장했고, 유네스코의 ‘평화의 문화’도 그 기원을 이시기로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들의 전쟁, 기존의 제국과 제국이 되고자 했던 국가들 간의 전쟁이었다.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제국들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시아·아프리카에서 탈식민 운동이 시작됐다. 여기서 한반도의 3.1운동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3.1운동은 독일, 미국과 함께 후발 제국이었던 일본 제국의 식민지 에서 일어났다는 특수한 환경적 요소가 있다. 베트남, 중국, 인도, 이집트 등 동시대에 아시아 여러 곳에서도 3.1운동과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식민주의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3.1운동은 만국의 움직임에 동참한, 글로벌 역사 속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3.1운동의 역사를 논할 때 종종 ‘남녀노소 모두’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아주 교과서적이고 상식적인 표현이 지만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3.1운동은 또한 ‘평화적 시위’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가 섞인 군중이 급조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광장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익숙하다. 다양한 의식과 지향성을 가진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모두 함께 광장에 참여했음을, 따라서 앞서 언급한 공간적 동시성이 3.1운 동의 글로벌 영역뿐만 아니라 이 운동 안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월 1일, 경북 포항에서 열린 3.1절 기념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3.1운동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3.1운동이 형성한 광장은 20세기 정치이론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학자 중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가 1958년『인간의 조건』에서 논한 ‘공공의 세계’와 아주 흡사하다. 남녀노소가 평화적 방법으로, 그들의 언어 행위를 매개로 자신들의 주권을 주장하는 행위. 그렇게 광장이라는 공간을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광장으로 만들고, 나아가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행위를 통해 광장을 국가와 제국의 점유물에서 자유로운 정치적행동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러한 과정은 아렌트가 상상하고 주장했던 ‘정치적 행동’에 매우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 즉 ‘말을 하는 행위’다. 이때의 말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지 능력으로서의 말이 아니다.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말이나 수사학적인 말과도 다르다. 여기서 말이라 함은 현실을 재현하는 의미의 말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내가 내뱉은 말에 따라 바꾸는 지극히 능동적인 의미 이자, 근대 민주정치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정치적 인간’의 기본 조건을 구성하는 말이다. 두 손을 뻗는 자유로운 몸짓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군중의 목소리가 되면서 현실 세계에 구현되고, 제국의 점유물이었던 공간을 자유로운 정치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가 정치인 ‘말’이다. 그래서 3.1운동은 내가 내뱉는 말이 곧 내가 되고 그 말로 인해서 내가 광장의 주인이 되며, 그 광장 속에 있는 수많은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인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 ‘말하는 자들의 축제’였다.
1919년 종로 탑골공원, 혹은 제주 관덕정의 평화는 그해 파리에서 권력 세계의 지도자들이 논한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로부터의 평화와 아래로부터의 평화, 혹은 외교 행위로서의 평화와 사회적 실체로서의 평화로 차별화할 수 있다. 후자가 오히려 18세기 계몽주의 전통(특히 루소의 그것)에 더 가깝고 오히려 그 전통에 적자(嫡子)의 모습을 보이는 평화이다. 오늘날 유네스코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세계시민적 평화 혹은 평화의 문화로서의 평화와 아주 흡사한 평화이다.
1919년의 광장은 열린 광장이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자유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을 발현했다. ‘대한독립만세’를 언어화하면서, 그 순간 자신이 세계시민임을 선언한 우리의 할머니들의 말 속에 주권의 당위와 함께 평등의 당위가 있었음이, 즉 국가와 제국은 물론 민족의 틀조차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존재적 지평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들의 정치적 주체의 지평을 어떤 정치이론의 언어로 자리지움할 수 있을까?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지피다 뛰어나와 얼떨결에 광장에 참여한, 그러면서 그녀 자신이 광장이 된, 또 실천하는 한나 아렌트가 된 그 여인에게 우리는 3.1운동 백주년을 맞아 오늘날 어떤 경의를 표할 수 있을 까? 그 여인의 자유로운 혼, 환희에 찬 표정을 어떻게 재현하여 이 땅의, 나아가서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간직할 수 있을까? 민주질서가 세계 곳곳에서 도전 받고 있는 지금,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미래가 너무나 절실한 오늘, 백 년 전의 세계시민들 그들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다.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