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인세 기부한 경복고등학교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1학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배움의 즐거움을 늦게나마 다시 느끼고 있는 학생인지 모른다. 그러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경복고등학교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학교장 유석범) 1학년 학생들은 만학도의 즐거움과 감동을 담아 시집 『백 마디 고마움』을 펴냈고, 지난 2월 16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그 인세를 기부했다. 1학년 학생 113명을 대표해 기부금 전달식에 참여한 기부자들을 만나 배움에 대한 갈망과 교육을 통해 새롭게 꿈꾸게 된 희망, 그리고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만 이 감동을 간직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어요”
먼저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재서(73) 어려서는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그 뒤로 배움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어요. 안 겪어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이제라도 그런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만학도들의 방송통신고등학교 생활은 어땠을까요?
이도환(69) 그 시절,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 다 해 보는 것이잖아요. 학교 가는 날 아침부터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몰라요. 학교 생활이 삶의 활력소이자 원동력이에요!
박경옥(67) 저는 학교에서 옛날 교복을 빌려 다 같이 입어 보았던 교복 체험을 특히 잊을 수 없어요. 어려서 빨래줄에 널려있는 교복이 얼마나 부럽던지, 동생 교복을 몰래 입어보기도 했었거든요. 그런 교복을 직접 입어보고 그 시절 노래인 ‘여고시절’을 함께 들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목이 메어요.
학생들의 그런 느낌과 감성을 모아 시집을 출간하셨는데요. 그 소감이 어떠셨나요?
김명희(67)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죠. 이렇게 내 이야기를 담아서 시를 쓰고 그걸 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어 영광이에요. 정말 특별한 선물이자 기회였어요. 그 정도로 큰 감동이었기에 그 느낌을 우리만 간직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져서 이렇게 의미 있는 기부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를 쓰고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선생님께서 이런 수업을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인영 교사 이분들의 인생을 칭찬해 드리고 싶었어요. 우리 인생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일로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곤 하는데, 저는 정말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고 생각해요. 원망하고 좌절하기보다는 더 열심히, 행복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선택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그런 점에서 방통고 학생들은 정말 위대한 분들입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에 꺾이지 않으셨고, 이렇게 뒤늦게나마 공부하고 계신 그런 삶을 칭찬하고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여러 기부처 중에 특별히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기부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강성귀(58)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맨 앞에 나오는 문구를 읽어주셨어요. “교육을 통해 꿈꿀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해 주세요.” 그 문구가 마음을 움직였죠. 유네스코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솔직히 자세히는 몰랐는데 오늘 사무총장님의 말씀을 듣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유네스코는 한국 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식량이 아닌 책을 보급함으로써 교육에 힘썼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 인세도 그런 일에 쓰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 가수활동을 하면서 저작권료를 받고 있는데, 그것도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의미있게 쓰일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이번 기부를 계기로 유네스코에 하실 말씀을 여쭙고 싶습니다.
김도기(66) 저는 제때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책도 냈으니 자신감을 갖고 떳떳하게 살려고요. 오늘 한경구 사무총장님께서 새로운 숙제를 내주셨잖아요. 그 말씀처럼, 지금은 시 한 편을 썼지만 졸업할 때는 제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최인영 교사 저희 늦깎이 학생들에게 귀한 경험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걸 시로 쓰는 과정에서 ‘고마움’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렇게 출간한 책의 인세를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함으로써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부를 계기로 저희 학생들과 유네스코의 아름다운 인연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후원홍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