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SSM이 강조하는 물과 성평등
물 문제는 인류의 지속가능발전 달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물은 우리 인류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자원과 관련된 문제는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복잡다단한 경우가 많고, 국가와 지역, 경제·사회적 조건, 연령, 성별 등에 따라 각자가 물 문제에 노출되는 정도도 서로 다르다. 이에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위험 보고서는 “물 위기는 단일 위험요소로서는 향후 10년간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라고 적기도 했다. 한편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육체적 성별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고 부여되고 학습된 성별 역할이 물 문제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물 문제를 단순한 성별(sex)이 아니라 젠더(gender)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는 담론이 확산하고 있다.
수도시설이 보급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물을 긷는 일은 주로 여성이 맡는다. 가정에서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며,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하는 등 물과 관련된 거의 모든 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유니세프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여성 혹은 여자 아이가 물을 긷기 위해 하루 동안 소모하는 시간은 평균 5시간, 나르는 물의 양은 3리터 정도라고 한다. 이는 그저 단순한 시간 소모와 노동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일로 인해 여성과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빼앗긴다. 물 관련 노동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시간의 빈곤’을 안기고, 그것이 기회의 빈곤으로 이어져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물과 관련된 의사결정이나 정책수립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는 배제된다. 이는 젠더 격차로 인해 여성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혹은 사회구조적 이유로 인해 의사 표명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물의 주요 사용자이자 공급자인 여성의 역할을 고려해 볼 때, 물을 관리하고 재분배하는 모든 단계에서 여성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인권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물 관리의 효율성과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1992년 물과 환경에 관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더블린 선언’을 통해 물과 젠더 문제를 처음 언급한 이래 물과 성평등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워터(UN-Water)는 ‘생명을 위한 물’(Water for Life)이란 구호 아래 물 관리에 대한 여성의 참여를 강조해 왔으며, 전 세계 국가 및 관련 기관들도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중에서 성평등(SDG5) 및 깨끗한 물과 위생(SDG6)과 관련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유네스코 역시 성평등을 2대 글로벌 우선전략의 하나로 선정해 꾸준히 추진 중이다. 특히 유네스코의 세계물평가프로그램(World Water Assessment Programme, WWAP)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물 분야 성평등 달성을 위한 정책 의사결정을 위한 데이터 수집 툴킷(Toolkit)을 마련하고 각 국가별 지지선언을 독려하고 있다. 이 지지선언은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서 보다 안전하게 물을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성평등과 모두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핵심임을 인지하고, 전 세계가 물 관련 정책과 의사결정에 있어 안전한 물 이용과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호소다. 유네스코 물 안보 국제연구교육센터(i-WSSM) 역시 해당 선언의 전파와 확대를 위한 이행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세계물포럼, 스톡홀름 국제물주간, 아시아 국제물주간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특별세션을 개최하고 관련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물 문제에 있어 성평등의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를 기반으로 물 문제 해결과 물 관리와 관련된 의사결정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물과 위생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역량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여아들이 물을 긷는 대신 학교에서 교육의 기회를 갖고, 여성은 인권을 보장받고 역량을 높여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각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서도 실수요자와 공급자의 의견을 반영해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물 문제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다해
유네스코 물 안보 국제연구교육센터
(i-WSSM) 대외협력팀 선임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