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
지난 2015년 유네스코의 ‘긴급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목록(긴급보호목록)’에 오른 몽골의 무형문화유산이다. 몽골에서는 어미 낙타가 갓 태어난 새끼 낙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어미를 잃은 새끼 낙타를 자신의 새끼로 받아들이도록 어미 낙타를 몸짓과 찬팅(chanting, 독송하듯 연이어 반복적으로 같은 소리를 내는 것 혹은 노래)으로 구슬리는 ‘달래기 의식’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달래기 의식’을 하는 가창자는 어미 낙타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선율을 바꾸어 노래하는데, 어미 낙타가 아기 낙타를 거칠게 거부하는 행동을 하면 시간을 두고 부드럽게 어미를 달래어 갓 태어난 새끼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의 전통적 삶에서 낙타는 단순히 ‘탈 것’ 그 이상의 동물이었다. 달래기 의식은 유목민 가족들과 그들의 공동체에게 사회적 유대를 만들고 유지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매개체이기도 했다. 몽골의 가혹한 봄철에 어미 낙타의 젖을 구할 유사한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달래기 의식은 오늘날까지도 역사가 오래된 낙타 목축 기술 중 하 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낙타는 교통수단이나 화물 운송의 용도로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이제 목축가들은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가축을 돌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서 의문 하나.
낙타 대신 자동차가 초원을 달리는 요즘시대에 세계인에게, 아니 범위를 더욱 더 좁혀 오토바이를 타고 가축을 모는 몽골인에게 ‘새끼 낙타를 달래는 의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대체 유네스코는 왜 이런 ‘해묵은 문화’를 보호하려 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뿌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문화적 획일화·종속화를 경계하고, 지구촌 여러 사회의 다양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는 그대로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시공을 이어오며 지금의 우리 모습이 만들어지도록 한 ‘뿌리’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민족이나 사회의 정체성 문제이자,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지속가능발전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을 채택(2003년)하고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형문화유산이야말로 문화 간 이해와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필수 요소이자 문화적 다양성의 원동력이요,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해주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과 사회가 지닌 다양하고 독특한 무형문화유산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시각을 교류하게 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개 선시키며,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또한 다양한 무형문화유산과 만나며 우리가 갖게 되는 이해와 관용의 힘은 ‘문화 간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해준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무형문화유산과 지속가능발전의 상관관계다. 세대간에 잘 계승되며 발전해가는 무형문화유산은 지구촌의 화두인 지속가능발전의 모범이 될 수도 있다. 2011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뢰번의 동갑내기 모임 풍습’(벨기에)을 한번 보자.
벨기에 뢰번(Leuven) 및 그 주변 지역에 사는 남성들은 40세가 되면 ‘동갑내기 모임’을 만들어, 50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사회·문화 및 자선 활동을 함께 한다. 각 동갑내기 모임에는 10년 앞서 만들어진 선배 동갑내기 모임의 일원 중 하나가 ‘대부’(代父)를 맡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조언한다.
이 모임은 지역사회와 동갑내기 모임에 대한 관대함·우정·단결·헌신 등의, 세대를 넘나드는 가치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가문·계층·사회적 지위의 차이는 물론이고 정치·철학·종교 등도 중요하지 않다.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뿐이다. 모임이 형성된 이후에는 여성들도 참여해 대모(代母)와 지지자 역할을 한다. 동갑내기 모임 풍습은 모임 구성원 모두에게 정체성과 연대감을 높여주며, 뢰번의 도시문화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몽골의 무형문화유산과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벨기에의 무형문화유산, 두 가지 대조적인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제 제주해녀문화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눈길을 돌려보자. 대한민국은 모두 19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무형문화유산 강국’이다(참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산 관련 웹사이트 heritage.unesco.or.kr/ich/ich_ko/). 이를 뒤집어 보면, 우리가 보호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 있는 무형문화유산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산 강국’ 여부는 한 나라가 보유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개수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은 물론 세계의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갖는 태도로 가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유산 강국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키를 쥔 주인공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는 사실이다.
송영철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