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는 유발 하라리의 시선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가 걸어온 길을, 『호모 데우스』를 통해 인류가 나아갈 길을 깊은 통찰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준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그가 찾은 기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네스코 『꾸리에』와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요약해 전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류가 맞고 있는 위기는 과거의 다른 위기와 어떻게 다르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이번 사태가 인류가 경험한 최악의 전지구적 보건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1980년대 초에 에이즈에 걸린 이는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4세기의 흑사병은 감염자의 1/4에서 절반 가량의 목숨을 앗아갔고, 1918년의 독감으로 몇몇 국가는 인구의 10% 이상을 잃었습니다. 그에 반해 코로나19의 사망률은 5% 미만입니다. 위협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어떤 국가에서도 코로나19 때문에 인구의 1% 이상이 사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 큰 차이는 과거의 인류와 달리 우리는 이 전염병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지식과 도구들을 이미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죽는지도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 대학의 의학 교수는 전염병의 원인을 “물병자리의 세 별이 겹쳐짐으로써 지구의 공기에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킨 것”이라 진단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과학자들은 불과 2주 만에 바이러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완전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얻어냈습니다. 시민들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1-2년 안에 백신 개발도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단지 공중보건의 위기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위기도 불러오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자라나는) 증오와 탐욕, 그리고 무지라는 인간의 마음 속 악마들이 더 두렵습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소수자와 외국인을 비난하고, 욕심 많은 기업이 오로지 수익만을 챙기고, 바이러스와 관련한 온갖 음모론이 퍼져 나간다면, 이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은 훨씬 어려워질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우리는 증오와 탐욕과 무지라는 감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가 전 지구적 연대와 관용으로 이 위기에 대응하고 음모론보다는 과학적 지식을 신뢰한다면, 저는 인류가 이 위기를 이겨내는 동시에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요?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궁금합니다.
위기가 지속되는 한 일정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인간만이 가진 가장 특별한 습성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 접촉하길 좋아하고, 어려움이 닥칠 땐 더욱 그렇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이 아플 때 우리는 그들을 돕고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모이기 마련입니다. 바이러스는 바로 이런 때 확산됩니다. 우리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마음’보다는 ‘머리’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바이러스와 달리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위기가 인간의 고유한 습성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동물로 남을 것이고, 여전히 만나고 교류하며, 함께 모여 어려움을 나누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에이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에이즈는 무시무시한 병이었고 (당시 동성애가 에이즈 전파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성소수자들은 국가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커뮤니티는 와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 일어났지요. 위기가 가장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LGBT 자원봉사자들은 여러 단체를 조직해 아픈 사람들을 돕고, 믿을 만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정치적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지나가고 1990년대가 되자, 여러 국가에서 LGBT 커뮤니티는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져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는 2차 세계대전 후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해 지적·과학적 협력을 증진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이번 위기가 국가 간 협력과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능력이야말로 바이러스에는 없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협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정보의 공유일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 없이는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로부터 효과적인 격리를 하기 위해서도 정보가 필요합니다. 병을 일으키는 것이 바이러스인지 박테리아인지,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지 비말 확산을 통해 전염되는지, 어린이에게 위험한지 노인에게 위험한지, 한 종류의 바이러스인지 변이를 일으킨 여러 종의 바이러스인지 등과 같은 정보가 정확히 알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몇몇 권위주의 국가나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인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전파를 차단할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훼손하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을 부도덕한 엘리트로 몰아세워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기후변화나 심지어 예방접종의 효용 등에 관한 과학자들의 주장을 불신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포퓰리즘적인 주장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정보는 투명하게 전파되도록 하고, 사람들은 정치적 선동이 아닌 과학적 지식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다행히도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과학을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도 예배를 취소하거나 예배 장소를 폐쇄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설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는 과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류가 이번 사태가 끝난 뒤에도 믿을만한 과학적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이러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평소에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튼튼하고 독립적인 대학과 병원, 언론과 같은 곳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탐구할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진실을 자유롭게 대중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이러한 기구들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일이 필요하고, 그러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믿을만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각국 정부 간 상호 협력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각국은 특정 의학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경제 충격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신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어느 한 나라가 지금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 정책 시행을 검토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정부는 질병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봉쇄가 야기할 시민들의 경제적·정신적 비용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백지 상태에서 추정치만을 갖고 정책을 도입하기보다는 먼저 중국에서, 한국에서, 스웨덴에서, 이탈리아에서 시행해 본 정책들의 결과물을 분석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그저 감염자와 사망자 집계만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자료를 공유해야 하겠지요.
국제 신뢰 체계의 급속한 붕괴에 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다자간 협력 체계의 미래에 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 선택이 현재의 위기뿐만 아니라 향후 국제 질서의 향방을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가 연대와 협력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이 전염병은 협력 없이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몇 국가가 잠시나마 자국 영토 내에서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내더라도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 있는 한 재발을 막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에서 더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한다면 전 인류가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해지는 단 하나의 방법은 모든 인류가 안전해질 때까지 함께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경제 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유한 나라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어떻게든 극복하겠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완전히 붕괴하고 말 것이므로 전 지구적인 경제 구제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그러한 것들을 실현할 만한 세계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습니다. 2014년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세계의 리더를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그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직 자국의 이익만 챙길 것임을 분명히 하며 서유럽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조차 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소위 ‘글로벌 계획’을 들고 나오더라도 어느 나라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틈날 때마다 “내가 먼저”를 외치는 리더를 과연 누가 따를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든 위기가 곧 기회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번 위기로 인해 분열이 인류에게 가져다 줄 위협을 모두가 깨닫게 된다면 말이지요. 만약 인류가 전 지구적 협력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승리일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나 핵전쟁과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도전에 대한 승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향후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선택이란 무엇이며 누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말한 선택은 단순히 국제적 연대냐 고립이냐의 선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독재자의 출현을 용인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일 수도 있고, 정부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경제를 회복시키려 할 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바로 우리의 정치적 선택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요구받는 선택이 단지 공중 보건 위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에 관한 것임을 알고, 전염병 때문에 자칫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몇 명이 감염되었고 몇 명이 죽었는지 등의 최신 뉴스를 챙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감시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 해도 우리는 정치인들이 인류적 연대에 입각한 행동을 취하고, 타국을 비방하는 대신 타국과 협력하도록 만들고, 재원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압박해야 합니다. 그 일을 바로 지금 해야만 합니다. 2021년까지 미루지 마십시오. 정치인들이, 지도자들이, 바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원문]
· unesco.org “Yuval Noah Harari: “Every Crisis Is Also an Opportunity”
번역 및 정리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