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유네스코 창의도시네트워크 미식도시 가입
10월 31일, 유엔 ‘세계 도시의 날(World Cities Day)’를 맞아 2023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CCN)’ 신규 지정 발표가 있었다. 이날 강릉은 미식분야 창의도시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가입에 성공하기까지 강릉시가 기울인 노력을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연대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 시작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7개 분야(문학, 디자인, 영화, 미디어아트, 음식, 공예와 민속예술, 음악)를 중심으로 각 도시의 문화적 자산과 창의력에 기초한 문화산업 육성, 이를 통한 문화다양성 증진 및 지속 가능한 발전 달성에의 기여를 목표로 운영된다.
창의도시의 개념은 유럽 국가들이 후기산업사회로 변해가면서 제조업의 쇠락, 대량 실업 등의 문제가 나타나자 보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서면서 등장했다. 국가 주도 경제 성장 중심의 개발이 아니라, 문화가 근간이 되어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도시 발전과 이를 통한 시민들의 삶의 개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도 이번 신규 가입 도시들이 도시개발 전략의 일환으로서 문화와 창의성을 활용하면서 혁신적이고 강력한 인간 중심 도시 계획에 대한 의지를 보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은 이미 강릉의 신규 가입 이전부터 7개 전 분야에 가입 도시를 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였다. 서울(디자인)을 비롯해 진주·이천·김해(공예와 민속예술), 광주(미디어아트), 부산(영화), 대구·통영(음악), 원주·부천(문학), 전주(미식) 등 11개 도시가 이미 창의도시로서 활동하고 있다. 강릉시는 일찍부터 유네스코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단오제(2005)와 강릉농악(2014), 그리고 관노가면극(2022)을 등재한 경험이 있다. 2008년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협력하여 무형유산보호 도시 간 네트워크(ICCN)를 조직하여 2003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협약 이행을 장려해 오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저개발 국가의 무형유산보호제도 보급을 위한 유네스코 신탁기금을 출연하였고, 유네스코 본부와 대한민국 정부에 유네스코 카테고리2 기구인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의 설립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이 있었기에 미식분야 창의도시 도전을 결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가입을 추진했을 때만 하더라도 창의도시에 대한 막연한 개념뿐, 진정한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혼선이 있었다. 이후 차츰 창의도시 개념에 익숙해지면서 음식을 중심으로 강릉에서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 그리고 그 문화를 가능케 한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강릉의 미식문화가 도시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중요했다.
강릉은 산과 바다가 펼쳐진 관광도시로, 특히 올림픽 이후 접근성이 개선되어 서울에서 당일 여행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자연환경만을 강조하는 관광도시로서는 그 한계가 분명했다. 한옥마을, 음식, 서핑과 같은 문화를 즐기는 최근의 여행 트렌드에 맞춰 강릉도 변해야 했다. 옹심이와 감자전, 두부, 막장 등으로 대표되는 강릉의 전통 음식문화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 한정적인 식재료에서 나온 훌륭한 유산이다. 여기에 더해 요즈음에는 커피, 짬뽕과 같은 음식들이 나름의 변용과 적응을 거쳐 강릉을 대표하는 미식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강릉 커피의 변화를 지켜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분명 커피는 강릉의 음식문화와 관계가 없다. 다만 1세대 바리스타가 강릉에 정착한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커피를 배우고 즐기는 시민들의 문화가 시너지를 내며 관광객들이 강릉을 찾도록 만들었다. 커피로 대표되는 강릉의 미식문화는 기존 전통음식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의 미식문화를 만들어냈고, 강릉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즐길거리가 되었다. 최근 강릉의 미식문화는 그저 관광자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산업화되고 브랜드화되며 강릉 미식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창의도시로서 모습일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음식이 어우러지고, 인적·물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문화가 되어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해 가는 곳이 지금의 강릉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이후 강릉에 주어진 과제가 많다. 미식문화를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 등 기존 멤버 도시들과의 교류를 통해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고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전 세계 도시들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강릉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강릉만의 것으로 재탄생시켜 발전시키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우리 생활 속의 평범한 미식문화를 창조적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고 잠재력을 갖춘 자원을 발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강릉의 미식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융복합적인 활동도 시도해야 한다. 그동안 유네스코와 강릉시가 협력해 왔던 다양한 사업과 경험을 바탕으로 강릉시민과 함께 협력하여 나아간다면 미식도시 강릉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최선복 재단법인 강릉문화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