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과학교육 현장에서 얻은 교훈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2011년부터 동티모르 과학교사 역량강화를 위한 훈련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11월과 12월 2차에 걸쳐 각각 1주일간의 훈련워크숍이 예정되어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이동현 팀원은 훈련워크숍 사전 준비를 위해 동티모르를 방문하였고, 마침 현지에서 서울/인천 지역 과학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과학교육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
“동티모르 딜리를 가려고 하는데 항공편이 어떻게 되나요?”
동티모르 출장을 준비하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보는 순간 막막함이 앞선다. 직항이 없는 관계로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발리, 호주 다윈을 경유해야만 하는데, 어느 노선 하나도 주어진 출장기간에 적합한 시간대가 없다. 예산 절감을 위해 선택한 발리-딜리 간 운항노선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현지 상황에 따라 운항이 돌연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출장을 가기에 앞서 무언가 큰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동티모르 현지사정을 제대로 접할 기회조차 없으리라는 절박감 때문에 자주 있지도 않은 항공스케줄에 맞추어 몇 번이고 번복한 끝에야 겨우 동티모르 출장일정표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7월 30일 동티모르로 향했다.
동티모르는 1975년 인도네시아가 점령하기 전, 무려 450여 년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지내왔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인권유린행위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유엔을 필두로 국제사회가 적극 동티모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후 2002년이 되어서야 독립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제 독립한지 10년이 조금 넘은 동티모르는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곳이다. 동티모르 재건을 위해 파견했던 우리나라의 상록수부대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축구를 향한 동티모르 유소년축구팀의 열망을 화면에 담았던 영화 「맨발의 꿈」 정도로만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강원도 정도의 크기에 약 110만 명이 사는 이 나라는 그나마 남아있던 사회기반시설들이 크고 작은 내홍을 겪으면서 파괴되고, 20%에 달하는 높은 국내실업률 수치가 보여주듯이 대낮에도 적지 않은 딜리 사람들이 맨발로 할일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제조업 기반이 전무한 이 나라는 일본산 중고차들과 집안 가재도구를 장악하다시피 한 중국산 제품들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인이 타면 일단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인 딜리 시내의 노란색 택시를 타면 영어를 조금이나마 하는 택시기사는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한국인임을 이야기하면 경계를 조금 풀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중국과 일본 자본에 잠식되고 있는 자기네 삶을 푸념처럼 읊조린다. 포르투갈 유학파인 레지스탕스 출신이 정부의 요직을 점하고 포르투갈어 우선의 학교 교육정책을 제시하였지만, 정작 박봉에 시달리는 학교 교사들 중 포르투갈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단어 수가 극히 제한된 현지언어인 테툼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나라.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썼던 할아버지 세대와 인도네시아 바하사어가 더 편한 아버지 세대를 거쳐 테툼어를 구사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모국어가 될지 말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아들 세대가 공존하는 나라. 이것이 내가 본 동티모르의 현주소였다.
다행히 티모르 섬 근방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아 이를 미국이나 호주 등 해외기술을 빌려 채취하고 이를 팔아 모은 석유기금으로 동티모르의 향후 미래를 새롭게 정비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와 같이 해외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네스코동티모르위원회는 한국과 협력하여 학교과학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과학교사 역량강화 워크숍을 지난 2011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험 및 실습에 기반한 과학교육이 다른 교과에 비해 그나마 언어소통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점도 작용했다.
한국과 협력중인 26개 협력중점대상국 가운데 동티모르는 국별 수요조사에서 과학교사 역량강화와 과학 교과과정 정비를 제시한 바 있다. 과학기술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에 관심이 있는 여타 협력대상국과 비교하여 동티모르가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인다. 그만큼 이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초적인 인프라 및 제반요건이 열악한 실정이다. 산유국임에도 수도 딜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스팔트가 다 벗겨진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제2의 도시 바우카우까지 직선거리로 80km정도임에도 편도 네 시간은 걸리니, 천혜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관광사업에도 의지를 표명한 바 있는 이 나라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이 많은 동티모르이지만, 과학 교육을 활성화하여 인재를 길러내고 미래를 개선해나가려는 의지는 출장기간 내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동티모르에는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서울/인천 지역 과학교사모임 등에서 자발적으로 동티모르 현지 교사 역량강화를 위한 과학교육 세미나를 진행해오고 있다. 우리 위원회가 하고 있는 활동과 연계하여 과학교사 역량강화 워크숍을 보다 풍성하게 기획할 수 있도록 이번 출장기간 중 유네스코 네트워크와 과학교사모임 간 공식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동티모르 출장기간의 성과 중 하나였다. 불편한 도로교통을 감수하고 과학교육 세미나에 참석한 40여 명의 현지 교사들의 눈망울에서 적도 근방의 이글거리는 태양보다 더 강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김홍석 석관고 선생님의 말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동티모르 지원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동티모르로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왔던 지난 5년간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도 막막함이 먼저 앞섰는데, 5년이 지나고 나니 동티모르 현지 교사들이 알아서 세미나에 찾아오고 널리 성원해주더군요. 그래서 협력사업은 길게 보고 꾸준하게만 진행한다면 소기의 성과는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동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과학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