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0주년 맞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브랜드 정체성
국민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의 브랜드는 어떠한 것일까.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온 과정에서 각인됐던 한위의 브랜드와 앞으로의 브랜드는 어떤 점을 계승하고, 어떤 점을 바꾸어야 할까. 김유경 한위 문화·정보커뮤니케이션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이 그러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안한다.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인정투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인간의 삶과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 또한 현대 시장에서 브랜드(brand)란 고객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란 기업과 제품, 서비스가 고객에게 부여하는 본질적인 의미이자 그들에게 제안하는 약속이다. 지난 30여 년간 이러한 브랜드 관리의 기본 개념에 충실했던 몇몇 기업은 장부상의 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브랜드 자산을 통해 유무형의 가치를 축적했다. 이는 공공재가 사유재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다.
기업은 제품을 만들지만 고객은 브랜드를 산다는 오래된 명제가 있다. 이는 공공재와 사유재의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명심해야 하는 조직의 브랜드 관리 원칙이다. 공(公)과 사(私)를 막론하고 조직의 브랜드 관리에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정체성(identity)의 정립이다. 정체성이란 조직의 본질이자 핵심 가치로서 조직의 비즈니스를 견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고객에 기반한 브랜드 이미지이자 평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애플의 정체성은 혁신이며, SK는 행복, LG는 사랑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표방하며 고객에게 다가간다. 국가는 어떤가. 한때 한국의 국가 정체성으로 흔히 회자된 것은 ‘역동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이미지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대변되는 ‘조용함’의 가치에 머물러 왔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어느새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대체됐다. 이론적으로 조용함의 가치는 본질적 정체성이라고 하고, 역동의 가치는 전략적·잠재적 가치를 반영한 구성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의 정체성은 영속성과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때론 자유롭게 변할 수 있다. 혁신 기술의 등장, 시장의 판도 변화, 또는 경쟁 조직의 대응에 따른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에 따라 기존 정체성도 과감히 변해야 한다. 문제는 사유재는 이 같은 동향에 민감하지만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데 있다. 공적 영역의 브랜드 관리 실태가 어느 때보다 면밀히 검증되어야 하는 이유다. 차제에 한위의 조직 정체성은 ‘글로벌’ 브랜드와 ‘지역’ 브랜드로서 어떤 가치를 통해 표방해 왔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한편, 공공 영역의 브랜드 관리는 소속된 기관이 이해관계자 또는 고객의 마음속에서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다. 이제 공공재로서 한위의 브랜드 관리는 공간 개념과 주체에 따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그 첫걸음이 정체성을 관리하고 기존 브랜드를 재활성화 하는 것이다. 마케팅과 홍보와 같은 방법론적 수행에 선행하는 인문학적 고민이 바로 정체성 정립의 출발점이다. 유네스코에 대한 국민 인식의 실태도 점검해야 하나, 단순히 존재 가치와 전통적 지표에 의한 기능적주의적 세분화에 의존하기보다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지향적 가치와 접목하는 통합적 정체성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전통에 뿌리를 둔 문화유산과 국제적 연대에 의한 평화지향이 한위의 본질적 정체성의 중요한 축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대중문화와 현대문화를 포괄할 수 있는 영역 확장을 모색하는 차세대 문화—한류와 교류 등—에 방점을 찍어야 할 시점이다. 한위의 본질적 정체성은 베이비부머 등 기성세대의 인식에 편중되어 있는 반면, 소위 MZ 또는 알파 세대 등 차세대의 인식과는 유리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고객의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면 조직의 사명과 존재 이유가 점차 소멸한다. 최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청년 중심의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 온 점을 고려하면서, 향후 구성적 정체성의 발굴과 정립을 위해 이를 더욱 깊이 관찰해야 한다. 즉, 우리는 고객의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어떻게 자리잡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공공브랜드 관리를 공공기관의 성과나 외형적인 모습을 포장하거나 마케팅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공공브랜딩은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유지하고 사적 영역에서 활용되는 것을 막으면서, 국민이 공적 서비스를 통해 행복에 이르게 하는 전략 과정이다. 내부 구성원과 대외 고객 간 상호 소통을 통해 공공기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는 것이 공공브랜딩의 역할이다. 이를 관계지향적 관리라고 한다. 유네스코와 같은 공공기구가 추구해야 할 ‘활사개공(活私開公, 개인을 살려 공공의 이익을 얻음)’의 브랜드 관리방안이다.
최근 천문학적 부채와 적자에도 여전히 건재한 공기업들을 지켜보면서 역량 있고 책임 있는 공공경영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를 위해 먼저 공공 철학과 비전을 토대로 조직의 핵심 가치를 목표 고객과 공감하려는 전략적 모습으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70주년을 맞이할 올해에는 글로벌 공공 브랜드로서의 혁신적 정체성을 새롭게 찾길 기대해 본다. 변화에 긴밀히 대응하는 정체성이야말로 곧 조직의 운명을 가름한다.
김유경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한국공공브랜드 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