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주간을 맞이하며
2014년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2015년부터 매년 5월 21일(문화다양성의 날)부터 1주일간을 ‘문화다양성 주간’으로 정해 다채로운 행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정보커뮤니케이션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건수 교수가 꽃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다양성의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일 년 사계절 중 봄은 특별한 계절이다. 추운 겨우내 회색빛 암울한 빛깔로 추위를 견뎌낸 나무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살아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봄날의 절정인 5월에 문화다양성 주간을 맞이하는 것은 문화다양성이야 말로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에 꽃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문화다양성은 인류가 창안해 낸 가장 놀라운 문화적 성취이다. 레비스트로스(C. Lévi-Strauss)는 한 문화의 진정한 공헌은 그 문화가 개별적으로 생산해 낸 문화의 발명 목록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라 했다. 모든 인류가 획일적이고 동질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이를 토대로 역사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역사적 경험 속에서 집단별로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헌이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문화다양성은 문화의 보편성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인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문화를 창안하고 그 틀에서 생존하고 발전해 온 종(種)이다. 가족을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며 다양한 분업체계와 권력의 집중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모든 창의적 발상이 인류의 보편적 문화 역량을 통해 발휘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보편적 역량을 발휘하는 집단마다 획일적 발상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논리, 그리고 의미의 망을 형성하며 고유한 문화체계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문화다양성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 이유는 한국의 문화다양성 정책이나 담론이 자의적 정의를 내리며 문화다양성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 개념이 어렵거나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나 담론 생산자가 자신의 기호에 따라 문화다양성을 정의하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문화정책이나 문화다양성 논의에서 사용하는 문화의 개념은 ‘보고타 문화정책회의(1978)’와 ‘멕시코시티 문화정책회의(1982)’에서 합의되어 명확하게 정의돼 있다. 문화란 “예술과 문학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생활양식과 기본적인 권리들을 포함하여, 한 사회나 사회집단을 설명해 주는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정서적 특질들의 복합적 전체”이고, 문화정책은 이러한 개념을 근거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다양성 선언」(2001)은 이러한 문화 개념의 정의에서 출발한다. 이 선언은 좁은 의미의 문학과 예술의 다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그러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인류의 문화적 성취를 지키고 확산해 나가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회원국이 함께 실천해 나가기 위해 구속력 있는 협약을 제정한 것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2005, 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다. 협약의 각 조문은 협약에 가입하고 이를 비준한 국가들이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할 내용을 특정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새로운 무역질서의 정립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자유무역 기조에서 ‘문화적 표현(문화상품)’의 예외성을 인정하자는 구체적 의무 사항을 넣었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협약이 좁은 의미의 문화 개념, 즉 문학과 예술 및 문화상품에 관한 것으로 축소되었다는 오해의 여지가 생겼다.
그 결과 일부는 문화다양성에 대해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 개념에 기반한 광범위한 정책적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문학과 예술에서의 장르적 다양성과 예술가의 권리, 문화산업의 보호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가 합의한 문화다양성 개념과 내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개념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책에 부담을 주거나 충돌할 여지가 있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용과 상관없이 문화다양성 용어를 남용하는 문제도 있다. 소외계층이나 노년 복지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문화다양성 정책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정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용어는 아니다. 문화다양성 용어와 개념을 만병통치로 남용하는 사례들도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다양성을 어렵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유엔은 2002년 5월 21일을 문화다양성의 날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하고 있다. 한국도 2015년부터 문화다양성의 날인 5월 21일부터 일주일을 문화다양성 주간으로 기념하며 문화다양성의 의미와 가치를 새기고 있다. 한국사회가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서는 이제 의도적인 회피와 혼선을 넘어서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가 합의한 개념과 내용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해당 내용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에 어렵다는 핑계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이란 인류의 문화가 성취해 낸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자산이다. 봄날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번 5월은, 모두가 문화다양성의 이러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각자의 주위에서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알리고 실천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한건수 문체부 문화다양성위원회 위원장,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