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꿈을 갖고 출발한 인류의 집단적 노력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유네스코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70년간의 연구와 성과를 담은 보고서 <평화를 향한 긴 여정: 예방의 문화를 향해>(Long Walk of Peace: Towards a Culture of Prevention)를 펴냈다.
유네스코와 유엔의 32개 관련 기관이 협력해 펴낸 이 보고서는 최근의 평화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서 접하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평화정착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평화의 방정식
오랫동안 인류는 평화를 곧 ‘전쟁 없는 상태’와 같은 뜻으로 해석해 왔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서 전 세계가 평화로웠던 시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거나 극히 짧았다는 사실을 되돌아볼 때, 평화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일리가 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평화는 더없이 드물고,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보고서는 전쟁이 없는 상태, 즉 국가와 국가 간, 혹은 사회 내에서 직접적 폭력이 해소된 상태를 평화로 간주하는 개념을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로 정의한다. 이 정도 수준의 평화를 달성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마치 ‘x+y=z’ 라는 공식을 풀듯이 평화는 몇 가지 조건만 달성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가령 핵무기를 없애고 비무장을 달성한다면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듯, 비무장과 비폭력을 상호 합의로 달성한 사례는 인류사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호 합의를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서로 총을 겨눈 상태에서 부르짖는 상호 신뢰란 한없이 공허하다. 이 때문에 인류가 현실 속에서 소극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해 온 방식은 ‘세력의 균형’, 혹은 ‘힘에 의한 평화’다.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주요 열강들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는 핵무기에 의한 평화가 전자에 해당하고, 압도적인 강자가 약자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평화를 유지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달성한 평화를 진정한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문서상으로는’ 1953년 이후 60년 넘는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누구도 그간의 세월을 평화로운 시대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은 여전히 불안하며, 아무도 전쟁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으로서의 평화
힘에 의한 균형과 힘에 의한 평화가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는 평화라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정치 지도자들과 평화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평화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추구해야 하고, 사회의 훨씬 다양한 부분에서 다듬고 가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 개념의 탄생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과 유네스코가 탄생한 배경도 평화에 대한 이같은 인식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평화의 정의에 대한 인식 변화는 그저 단어의 해석을 둘러싼 학자들간의 논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고서는 새로 정립한 평화의 개념 속에는 커다란 세계사적 변화가 들어있다고 본다. 소극적 평화가 전쟁과 폭력을 인류사의 ‘상수’로 보는 반면, 적극적 평화는 전쟁과 폭력을 일탈, 더 나아가 ‘미친 짓’(aberration)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1969년에 <폭력, 평화, 평화연구>라는 논문에서 적극적 평화 개념을 처음 내세웠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우리 인류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상태’임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은, 우리 앞에 나타나는 데 이처럼 오랜 세월이 걸렸다.
적극적 평화 개념 속에서 전쟁이나 폭력은 인류 존재를 위협하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조직, 혹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신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구조적 폭력(structure-generated harm)이다. 구조적 폭력에 관심의 초점을 맞출 때, 평화란 국가 대 국가, 조직 대 조직의 평화조약 정도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구조적 폭력은 전쟁여부와 관계 없이 사회 곳곳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빈곤, 성차별, 아동 학대, 교육, 환경, 보건, 문화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 중에서 구조적 폭력에 대한 논의를 생략할 수 있는 분야는 별로 없다. 이 지점에서 평화는 바로 사회 정의(social justice)의 또다른 말이 된다. 교육, 과학, 문화 등 유네스코가 인간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쌓기 위해 왜 그토록 방대한 비군사적 사업에 힘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평화 구축을 위해 설립된 유엔이 ‘지속가능발전’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고 있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보고서는 존 폴 레더라흐(John Paul Lederach)가 주창한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를 소개하며, 평화가 사회 내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없애고 인간 관계를 정의롭게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사회구조(dynamic social construct)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한층 더 넓어진 평화 개념을 받아들일 때, 정부 혹은 사회가 평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범위가 대단히 넓어진다. 이제는 불량국가에 대한 대규모 제재조치나 군사적 압박만이 평화를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전부라 할 수 없다.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청소년 대상교육을 확대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예술적 접근을 고민하는 것까지 모두 평화를 위한 적극적 행동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풀뿌리 주민들부터 지역 전문가까지, 지역 지도자부터 국가 지도자까지 사회 전체가 함께 실천하도록 시스템화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평화의 지속가능성
평화라는 주제가 국가 간, 사회 간, 개인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빈곤이나 교육, 나아가 자연재해와 기후변화까지도 다룰 수 있게 될 때, 평화의 개념은 ‘시한을 정해두고 달성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언제 어디서든 따라야 할 정의’에 훨씬 가까워진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개념 변화에 따라 유네스코를 비롯한 유엔 각 기구들의 활동 양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유엔은 파란 헬멧을 쓴 군인들에 의존해 온 기존의 평화유지(peacekeeping) 활동 외에도 분쟁 지역에 평화를 구축하고(peace building) 평화의 문화(culture of peace)를 만드는 데 더 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실행되는 총체적인 과정(process)을 통해 완성시킨 평화야말로 진정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956년 수에즈 운하 분쟁 때 ‘유엔 응급군’(UN Emergency Force)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평화유지군은 냉전이 끝난 후 전 세계에서 터져나온 지역 분쟁에 투입되어 서로 총끝을 겨눈 집단 사이에서 완충 지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보고서는 198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평화유지군의 이러한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분석한다. 초기에 두 적대 집단 사이에서 물리적 장벽 역할을 하는 것에 집중했던 평화유지군은 이제 양측의 휴전을 확인하는 고전적 개념의 평화 유지 활동에만 그 영역을 한정하지 않는다. 대신 힘에 의한 평화보다는 평화 구축 활동에 더 포커스를 맞춰, 해당 지역의 사회 각 분야 전반에 내재돼 있는 분쟁 요소를 다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 4개 대륙에서 펼쳐지고 있는 16개 평화유지군 활동에 종사하는 11만 8000여 명의 군인과 전문가와 민간 참여자들은 분쟁 당사자간의 대화와 타협을 중재하고, 무장 해제와 비무장 협상을 주도하고, 인권 보호를 위한 법치를 확립하며, 민주적인 선거를 감독하는 역할까지 맡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깨지지 않도록
유엔이 이전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평화 구축 활동에 나서고 있는 한편, 많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외부의 개입이 언제나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분쟁의 근본 원인을 뿌리뽑기 위해 해당 지역의 개발과 경제 발전에까지 외부의 힘이 개입할 때, 그것이 오히려 지역내 그룹간의 새로운 긴장이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보고서는 유니세프의 기술 노트를 인용하며 “(평화 구축을 위한) 외부 개입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면밀히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니세프는 인도적 지원이나 자원개발 등 외부 세계의 개입 과정에서 촉발될 수 있는 지역 분쟁 가능성의 정도를 ‘분쟁 민감성’(conflict sensitivity)이라 명명하고, 이를 외부 개입시 고려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보고서는 유엔을 비롯한 외부 관계자들은 분쟁 민감성을 비롯해 해당 지역에서 분쟁과 폭력의 뿌리(root causes)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원의 희소성, 한정된 기회와 재원, 조직 범죄, 정부 정통성 결여 등, 평화를 위협하는 잠재적 요소는 특히 저개발국의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뿌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시행되는 평화 구축 사업은 오히려 분쟁을 악화시키거나, 없던 분쟁을 만들 수도 있다. 평화란 그 정도로 깨지기 쉬운 대상이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평화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을 때, 평화 구축 활동이 비로소 해당 지역에 보다 단단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쌓아올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중단’이 아닌, ‘시작’으로서의 평화
지난 70여 년 간 평화를 쌓기 위해 걸어온 유엔 각 기구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평화란, 폭력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평화 구축을 위한 유엔 활동의 목표가 분쟁 종식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으로 역동적으로 재구성되어 온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유엔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을 때,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1946년에 한 이 말이 그저 비폭력주의자의 만트라가 아니라 평화 구축을 위한 현실적인 제안이 될 수 있음을 유엔은 그간의 활동으로 증명해 나가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그러한 유엔의 시행착오와 연구 성과, 그리고 각 기구들의 세부 활동의 요약 내용을 폭넓게 담아냈다. 총을 거두고 핵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또한 복잡한 현실에 발 딛고 서서 평화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제기구라는 조직의 특성과 과제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보고서가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