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함께한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지난 1년
일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5만 명. 프랑스는 새로운 변이로 인한 코로나 확산세가 가속화되며 5차 대유행기에 접어들었습니다. 12월 말 샹젤리제 일대에서 개최 예정이던 불꽃놀이와 각종 행사가 금지되는 등, 파리는 또다시 기쁨과 설렘보다는 걱정 속에서 연말연시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달 주재관 서신은 지난 4월 파리 주재 근무를 시작한 이래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현지와 유네스코 본부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코로나 5차 대유행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영롱한 조명 아래 뱅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다른 쪽에서는 백신 접종과 보건패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파리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보건패스를 백신패스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백신을 맞지 않으면 일상생활의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보건패스 없이는 다중시설은 물론 동네 카페나 레스토랑조차 출입할 수 없기에, 3차 접종 대상자가 지정된 기한 내에 접종을 받지 않으면 이 보건패스가 무효화된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저 역시 부랴부랴 추가접종을 예약했지만 3차 접종이 여러모로 더 아프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벌써부터 팔이 욱신거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파리에 온 지 반 년 만에 처음으로 대면 회의에 참가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 흥분은 잠시, 이제 다시 프랑스와 유네스코가 ‘비대면의 소강기’로 접어들 거라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어 아쉬움은 더욱 크기만 합니다.
처음 주재관 근무 발령을 받고 파리 땅을 밟은 지난해 4월 당시에는 저녁 7시면 통행이 금지됐고 거주지에서 반경 10km 이상 떨어진 곳에 갈 때는 이동증명서까지 필요했었습니다.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을 제외한 모든 식당과 주요시설들은 문을 닫았고 많은 시민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낮에도 거리는 고요했습니다. 저녁 7시에 슈퍼마켓들마저 문을 닫으면 파리의 거리는 기묘한 적막감에 둘러싸였습니다.
당시 주유네스코 대표부는 격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시스템 접속 등을 위해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있었는데, 유네스코 사무국은 주4일 재택근무와 주1일 사무실 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사무국 로비는 언제나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집행이사회와 여러 정부간 이사회를 화상으로 참여할 때면 제가 한국에 있는지 파리에 있는지조차 도통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5월이 되어 프랑스 정부가 단계적 완화조치를 발표하며 식당 일부가 영업을 재개했고 통금 조치도 7시에서 9시로, 이후 11시로 서서히 완화됐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런 완화 분위기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비대면 회의를 고수했는데, 8월에는 그래도 코로나 상황이 많이 호전되어 11월 유네스코 총회가 대면으로 열릴 것이라는 풍문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엔 서서히 사무국의 재택근무 일수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한 기대대로 유네스코는 10월 집행이사회의 대면 개최를 전격 선언합니다. 회의장마다 국가별 참석 인원수가 2명으로 제한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온라인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회의장 출입증을 만들고 출장단을 맞이하는 과정 속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11월 유네스코 총회 역시 대면으로 개최되면서, 부임 6개월이 넘어서야 비로소 국제기구다운 사무국의 현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 정부 대표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중요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논의하는 현장에서 다시 호흡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국제기구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국제협력을 달성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곳입니다. 함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만남’이 빠져버린 악조건 속에서도 유네스코는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코로나19 대응책을 모색하며 목소리를 냈고, 특히 팬데믹 위기 속에서 혐오와 차별, 국가 이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시민교육을 비롯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갈수록 커지는 국민국가의 힘 앞에서 국제기구가 무슨 소용이냐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감염병과 기후변화 등의 전 지구적 난제들은 국제 공조와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연대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금이야말로 유네스코가 국제기구로서의 진정한 힘을 발휘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지난해 오픈 사이언스와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권고문을 채택하고 교육의 미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규범설정자이자 의제설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굵직한 이정표를 세워 나가는 유네스코의 모습을 보면서 그 믿음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위기는 도약의 기회라는 익숙한 말을 하지 않아도, 유네스코는 75년 전 창설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디지털 시대에 혁신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략적 전환 등의 기치를 내걸고 변화를 모색해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유네스코가 그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며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중요한 행위자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22년 임인년에도 파리에서 새로운 소식을 들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유네스코뉴스』 독자와 유네스코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임시연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