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학과 SDGs의 만남, 남양주시 지원으로 첫걸음 내딛다
다산 해배 200주년을 맞이하여 2018년 4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유네스코와 남양주시는 국제사회의 화두인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해답을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로 한 것이다. 과거의 다산에게 현대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 자체가 ‘넌센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오늘의 고민을 역사가 열어준 바 또한 많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 질문은 다산의 해배와 그의 학문을 기리는 회의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이면서도 시의적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는 무차별적인 개발을 중지하고 인간다움을 간직한 채 자연과의 조화를 모색 중이다. 이른바 SDGs(지속가능발전 목표)의 핵심인 ‘그 무엇도 낙오시킬 수 없다’는 모토에는 인간주의를 넘어 생태에 대한 관심이 적실하다. 이는 다산학의 핵심과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동시에 사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문명의 주체적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산의 주장이다. 다산은 인간 사이의 관계, 나아가 사물에 대한 진심 어린 환대를 강조했다. 서로를 환대하고 환대받는 대동(大同)의 공동체가 그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야말로 다산이 말하는 ‘인’(仁)의 요체였다. SDGs의 ‘모두를 위해’(for all), 그리고 ‘어디에서든’(everywhere)에 다름 아니다.
학술대회의 기조발표에서 임형택 교수는 평소의 지론대로 민본과 민주의 공공성을 역설했다. 다산이 추구한 ‘바른[正] 정치’는 SDGs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보데왼 왈라번 교수는 국가의 역할 이외에 시민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헌신적인 관료와 시민들의 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수길 교수 역시 SDGs가 단순한 정치구호가 아닌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것임을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이후의 세션은 각각 교육과 과학, 그리고 경제와 인권의 문제를 다루었다. 진지한 발표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첫 세션에서 정순우 교수는 다산이 성인(聖人)을 지고지순한 존재가 아닌 후회와 뉘우침, 그리고 실수의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그려냄으로써 모든 이들을 위한 인학(仁學)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노자 교수는 현재의 요청이 아닌 역사 속의 다산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토론자로 나선 박명규 교수는 현재와 역사 속의 다산을 넘어 ‘왜, 오늘 그리고 미래의 다산인가?’ 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의 다산은 과학기술과 연결되었다. 데니스 홍 교수의 발표는 감동적이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제작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애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실패를 반성하고 마침내 자동차를 완성했을 때, 자신의 과학에 ‘인간에 대한 정성’이 흐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과학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포용적 성장은 현실정치에 참여했던 이정우 교수의 다산 토지개혁론을 통해 모색되었다. 다산의 정전제(井田制)는 국가 재정을 투입해 사적 토지를 국유화하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재정확보의 비현실성과 봉건적 토지소유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산의 사상은 오늘날 토지공개념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질만한 혁신이 분명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앤더스 칼슨 교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오늘날, 다산의 복지정책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역설했다. 마지막 세션의 발표자 한경구 교수는 다산을 통해 문화상대주의와 성급한 보편주의 모두를 경계하고 ‘문화간 다양성’(intercultural diversity)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술에 배부를까’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번 모임은 그야말로 첫술이었다. 그럼에도 이틀간의 회의를 마친 후 많은 이들이 만족했다. 다소 도전적인 제목, 지속 가능한 미래와 다산이라는 과거를 연결하는 쉽지 않은 회의임에 분명했다. 잘 될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생각 보다 많은 기대와 격려 속에서 앞으로 이같은 회의를 지속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보았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김호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