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노벨 평화상에 카일라시 사티아티와 말라라 유사프자이 선정
2014년 노벨평화상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과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해 온 카일라시 사티아티(60)와 말라라 유사프자이(17)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사티아티와 유사이자이는 인류의 기본권인 교육의 보급을 위해 헌신하고 남다른 용기를 발휘한 것을 높이 평가 받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두 명의 열정적인 교육 수호자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은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약 5800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여자 아이들이다. 또 이와 같은 규모의 아이들이 중등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학교에 대한 공격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을 시한으로 정한 유엔 새천년개발목표와 모두를 위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의 교육 여건 악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두 사람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노벨평화상은 평화를 위한 교육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를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은 70여 년 전 유네스코헌장에 명시된 항구적 평화의 토대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실현, 더 유연한 사회, 모두를 포함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교육은 빈곤을 퇴치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관용을 가르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대화의 다리를 만드는 동력”이며 “평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토대는 모든 소녀와 소년, 모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인식에 있으며 이 때문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는 두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사티아티는 1990년부터 아동 노예와 아동 노동의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 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해 왔다. ‘글로벌 교육 캠페인’과 ‘아동 노동에 반대하는 세계 행진’의 설립자인 그는 모든 아이들의 교육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열정과 용기를 갖고 일해왔다. 유네스코는 모두를 위한, 특히 소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활동을 지원해왔다.
소녀들의 교육을 증진하는 것은 사회를 보다 더 공정하고 포용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긍정의 힘으로써, 모든 유네스코활동의 우선사항이다. 이는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유네스코와 파키스탄 정부가 설립한 말랄라 재단의 목표이기도 하다. 말랄라 재단은 교사 교육, 사회 운동과 소녀들의 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한 성 인지 교육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 분쟁지역 학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지난 2011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98호의 이행을 지원하고 있다.
보코바 총장은 “나는 이것이 교육을 위한 노벨평화상이자 여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강제결혼과 노동, 인신매매에 내몰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과 평생교육은 모든 발전의 지속성과 평화의 토대를 위한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기 때문에 교육이 2015년을 목표로 각국이 논의 중인 지속가능발전 의제의 핵심이 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티아티는 단순히 복지나 자선의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서 아동노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1990년대에 아동 구호 운동단체인 “바차판 바차오 안돌란”을 설립했다. 그는 아동 구호 운동을 모두를 위한 교육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연결시켰다. 지금까지 이 단체는 8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도와 주고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해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될 수 있게 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인도 전국 1만5000km를 행진하며 교육의 기본권을 위한 캠페인을 펼쳐 헌법 개정과 아동 무상 의무교육권을 명시한 법률 제정을 이끌었다. 그는 유네스코와 함께 오랜 시간 일해왔고 글로벌 교육 파트너십 이사회에서 봉사했다.
유사프자이는 특히 파키스탄 탈레반이 소녀들의 등교를 금지해온 파키스탄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소녀들의 교육권 보장 운동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2009년 11살의 나이에 교육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총기를 소지한 사람이 학교 버스에 올라타 그녀의 이름을 묻고는 세 차례 총격을 가했으며 이 때 총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그녀는 재활치료를 위해 영국 버밍엄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현재 이곳에서 거주하며 학교에 다니면서 전 세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