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유네스코 뉴델리사무소 문화섹터 과장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꺼릴 만한 일을 기회로 여기기란 웬만한 열정과 애정, 용기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4년간 유네스코 문화유산국 및 세계유산센터에서 근무한 한준희 유네스코 뉴델리사무소 문화섹터 과장은 파키스탄, 북한,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히말라야 오지에 이르기까지 결코 녹록지 않은 곳에서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어 왔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중순부터 유네스코 뉴델리 사무소의 문화 섹터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무형유산을 상업화하는 사업과 역량 강화 교육 및 체계 정비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문화 교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저는 미술과 사회, 역사가 융합된 실크로드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유네스코 본부에서 진행하던 실크로드 프로젝트 인턴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담당 부서 국장님의 추천으로 유네스코 공식 채용 프로그램인 YPP(Young Professional Program)에 지원해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93년 정규 직원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본부의 문화 섹터에서 일하면서 맡았던 프로젝트들이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었나요?
지금은 유네스코 지역사무소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대다수 문화유산 프로젝트가 본부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본부의 여러 프로젝트들을 담당하면서 지역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됐었죠. 처음 담당했던 프로젝트는 파키스탄 문화 보존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어서 간다라 지역의 불교 보전 사업에도 참여했고, 북한에서 고구려 벽화 보전 지원 요청이 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전에 주도적으로 구체적인 필요를 파악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문화재청에 직접 제안을 해서 ‘고구려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정부의 첫 번째 유네스코 문화분야 신탁기금 사업이 되었어요.
파키스탄부터 북한까지, 결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본부에서 저를 ‘어려운 곳에 가서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이라 인식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프로젝트도 맡게 되었습니다. 치안 문제로 2006년부터 중단된 사업을 제가 2008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헤라트라는 지역에서 13-14세기의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는 미나레트(모스크의 부수 건물, 예배 시간 공지를 할 때 사용되는 탑)들이 파괴되거나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업이었죠. 지금의 서남아시아는 전쟁 등으로 인해 낙후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이 지역은 과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융성한 문화를 누렸던 곳이에요. 주니어 때부터 이런 지역에 진입하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혜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계신 지역사무소에서 하고 계신 일을 좀 더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뉴델리 사무소는 서남아시아 6개국(방글라데시, 부탄, 인도, 몰디브, 네팔, 스리랑카)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곳 인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공예기술을 갖고 있는데, 개인이 가진 정교한 기술을 경제성을 가진 사업체로 연계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시장을 형성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인도는 산업 유산의 등재에 앞장선 나라이기도 해요. 1999년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히말라야 레일웨이(Darjeeling Himalaya railways)’라는 철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이곳에 부임한 이후 해당 철도 관리 계획 수립의 마무리를 맡았습니다. 동적인 유산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관리와 다른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굉장한 문화적 다양성을 몸소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서벵갈 지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880km를 달려 네팔인들을 태우고, 그 다음에는 티베트인을 만나게 되니까요. 인도 북쪽의 문화가 고스란히 기차 안에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인도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렵지만 많이 배우는 경험이죠.
마지막으로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 대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제가 맡았던 사업들은 모두 여러 분야에 걸친 프로젝트들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업처럼 엔지니어, 건축학, 지리학 등 여러 영역의 협력이 필요하거든요. 아울러 일에 대한 신념도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도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기 때문에 조직에서 이를 알아보고 다른 프로젝트를 또 맡기곤 했어요. 그렇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란 건 직접 그 일을 해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죠. 그러니 무엇보다 한번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한 ‘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세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방법은 다르니까요. 전문가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본인이 사무국에 진출하느냐, 아니면 프로젝트 단위로 함께 일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심수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