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유네스코는 인류에게 가치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하고자 세계기록유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록유산 등재 신청단계에서부터 기술적·인적 역량 부족을 통감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이들 국가의 등재신청서 작성을 돕고 체계적인 기록물 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0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을 진행해 오고 있다.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올해 워크숍에서도 세계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은 기록유산 등재와 관리에 관한 소중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류 공동의 기억’이라 할 수 있는 기록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더 많은 나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노력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이하 워크숍)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15년 동안 모두 74개국이 워크숍에 참가해 자국의 소중한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 워크숍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제도 개편 작업을 위해 2017년부터 잠정 중단되었던 신규 등재 절차가 올 5월부터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 신규 등재된 64점의 기록물 중에는 이번 워크숍 개최지인 우즈베키스탄의 기록물인 ‘부하라 칸국의 재상, 쿠쉬베기 기록 컬렉션’도 포함돼 있을 정도로, 실크로드의 허브이자 다양한 문명이 거쳐간 장소인 우즈베키스탄은 여러모로 워크숍을 개최하기에 어울리는 나라였다. 전문가 그룹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우즈베키스탄을 개최지로 선정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우즈베키스탄위원회와 사마르칸트에 위치한 중앙아시아국제학술연구소(IICAS)와 7개월간 긴밀하게 협력하며 워크숍을 준비했다. 보다 다양한 문화권의 기록물 등재를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아랍 지역의 과소등재국을 대상으로 참가국을 모집했고, 올해 11월 30일까지인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 접수 기간을 염두에 둔 여러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참가 의사를 밝혔다. 특히 내년에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과 함께 세계기록유산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인 나미비아는 해당 사업에서의 적극적인 활동 역량을 키우기 위해 추가 참가 인원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이번 워크숍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워크숍 규모가 한정적이므로 실무자 및 국제 전문가들은 열띤 논의 끝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 아프리카 지역 4개국, 아랍 지역 2개국을 최종 초청키로 결정했다. 10개국 12명의 참가자들은 9월 7일에 열린 사전 온라인 세션과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통해 등재신청 양식을 채워 나갔다. 이번에 참가국들이 제출한 기록유산 후보군은 우리가 평소 ‘기록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범주를 확장시켜 줄 정도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약 7세기에 걸쳐 방문자들이 벽면에 남긴 1800절 가량의 그라피티 시문(스리랑카)은 기록유산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들에게도 참신한 형식의 기록물이었으며, 고대근동 지역의 에덴 동산으로 불리던 딜문 문명의 금석문(바레인), 서아시아 전체의 이슬람화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소그드 문자 기록물(우즈베키스탄) 등도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투르케스탄 지식인들의 계몽정신을 전파한 신문 컬렉션(우즈베키스탄)과 인공 댐 범람으로부터 야생동물을 구출하는 영상기록(짐바브웨)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시사점이 많은 후보군도 있었다.
마침내 우즈베키스탄 국립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열린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각국의 기록물을 소개한 뒤 전문가들과 일대일로 등재신청서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렇게 신청서를 보완한 뒤 워크숍 마지막 날에는 보다 완성도 높은 최종 신청서를 발표했고, 전문가들은 올 가을에 제출할 신청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꼼꼼하고 구체적인 논평을 남겼다. 공식 일정 마지막 날인 9월 22일에는 우즈베키스탄 국가위원회의 친절한 협조 아래 알 베루니 동방학연구소, 국가기록원, 하즈라티 이맘 광장, 그리고 새단장한 이슬람문명센터를 돌며 우즈베키스탄의 다채로운 역사와 기록물 관리 및 보존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유효한 등재신청서를 작성하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 상호 간에도 깊은 유대를 쌓을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참가자들은 이번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기록물의 문화적 차이점을 접하는 한편, 각 기록에 담긴 인류 공동의 기억을 마주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모여서 유네스코가 염원하는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인류 화합이 존중되고, 문화 간 교류의 기반 위에서 한층 강화되는 단결’이 이뤄지리라 생각하니, 실무자로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마주했던 어려움과 피로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번 워크숍에는 올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산림녹화기록물’과 ‘제주4.3기록물’의 소장기관인 산림청과 제주 4·3 평화재단이 관계자들이 옵서버로 참여했다. 2022년에 문을 연 유네스코 카테고리2 센터인 국제기록유산센터(ICDH) 역시 문화재청과 함께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하며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국제학술연구소와의 연계를 주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토록 다양한 손길과 참가자들의 열정이 모여 열린 올해 워크숍이 기록유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참가국 간 단단한 협력관계를 다지는 자리로서, 그리고 인류 기록의 다양성을 더하는 자리로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서정수 국제협력사업실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