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모를 때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이 너무 두렵고 어려웠어요. 길거리 표지판이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여기가 어딘지를 묻고 싶어도 한참을 끙끙거리다 헤매기 일쑤였죠. 내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부끄러웠고, 다른 사람과 말할 기회도 많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데 그때는 모르는 사람과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요, 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몰라요. 만주라는 학습자와 전에는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이제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요. 누굴 만나는 게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심지어 한국에서 오는 당신을 만나는 설렘에 어제 잠도 잘 못 잤다니까요.”
조금은 수줍지만 신나는 목소리로 소녀처럼 재잘재잘거리는 반다나(Vandana) 씨. 인도 여성 학습자들은 긴 사리를 입고 입을 가리며 말을 아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인터뷰 내내 학습자들은 아주 큰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까르르 웃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감에 넘쳤고, 눈이 부시게 행복해 보였다.
필자는 지난 3월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파견되어 브릿지아시아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광주광역시교육청 공무원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교육지원 사업을 맡아 지난 4월 7일부터 4월 12일까지 인도 러크나우 및 카이라바드로 2018년 사업을 점검하는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여정을 통해 우리 기관에서 지원한 현지 15개 기능문해센터 중 3개 기능문해교육센터에서 학습자(28명)와 기능문해센터 교사(15명)를 인터뷰하고 이해관계자 워크숍에 참석했으며, 사업협력기관인 사바기교육센터와 2018년 사업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2019년 사업 발전방향을 공유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학습자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탁푸르와(Takpurwa), 아소다르(Asodar), 파르세라(Parsehra) 기능문해센터의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온 외국인 손님들을 위해 전통 환영방식으로 꽃을 뿌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고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주며 반겨주었다. 10분 정도의 수업 참관 후, 학습자들로부터 수업 참여 시 어려운 점, 수업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 2019년 수업에서 개선했으면 하는 사항 등을 듣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습자들은 바닥에 빙 둘러 앉거나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 질문에 열심히 답변했다.
먼저 학습자들의 수업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시간이었다. 6명에서 10명 가량의 대가족에 속한 여성들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수업을 들을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집안일은 주로 여성들이 도맡아 하며 남편이나 다른 가족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과, 주변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편견(“여자가 배워서 뭘 할 것인가”)과 멸시도 수업 참여를 막는 요인으로 언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참여한 여성 학습자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시간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학습자들은 차츰 수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스스로 익혔고, 문해교육 및 실생활 교육 덕분에 관공서나 은행 업무를 자신의 힘으로 척척 처리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족 안에서만 형성되었던 폐쇄적 인간관계를 확장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이에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진취적인 자세도 갖추게 되었다. 4개월이라는 단기간 교육의 효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들은 그저 ‘문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올해에는 14개 기능문해센터 근처에 학습자들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꾸밀 계획이다. 학습자들과의 인터뷰 중 가장 많은 건의사항은 4개월의 단기 교육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인도 협력기관인 사바기교육센터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주변 관공서(학교, 시청, 지역아동센터 등)의 협조를 받아 공공시설물 내에 도서관을 만들고 학습자들뿐 아니라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마을 전체의 교육 접근성 확대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광주에서도 행정적으로 교사와 학생들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보여준 변화에 보람을 느껴 왔지만, 이번 인도 프로젝트에서 글자 한 자 한 자를 배우며 희열을 느끼고 삶의 변화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학습자들을 보며 진정한 교육의 가치와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잠 잘 시간도 아껴 가며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인도의 여성 학습자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박수를 보내며, 내년에 또 이들이 얼마만큼 성장할지, 기대와 설렘을 갖고 지켜보고 싶다.
정지은 브릿지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