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열린 제4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는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발표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교육”이라는 넬슨 만델라의 말대로, 기후위기와 계층 간 격차, 팬데믹 등 인류가 당면한 과제에 대처할 힘을 미래 세대가 갖추도록 하기 위해 교육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난 2년간 전 세계 전문가 및 백만 명이 넘는 인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작성된 이 방대한 보고서가 제안하는 새로운 교육 담론을 간략히 소개한다.
교육이 ‘계약’인 이유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내놓은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교육의 미래 보고서)의 제목을 보면서 ‘교육이 애초에 계약이었나’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과 촘촘한 공교육 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나 선진국의 시민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계약의 목적과 상호 책임관계를 살펴보고 합의한 뒤 ‘도장’을 찍어야 발효되는 일반적인 계약 행위를 떠올릴 때, 적어도 우리나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있어 교육이란 계약이라기보다는 공기처럼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권리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늘 우리 곁에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교육에 대해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번 보고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육의 많은 측면들이,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으며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만은 않다고 분석하고, “교육은 전 세계에서 교육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열망에 계속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 상태로는 교육이 여전히 교육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도, 인류가 함께 공정하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제대로 기여할 수도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냉철한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개인적·집단적 발전을 위한 기회를 창출하고 그 경로를 제공하는 학교와 교육시스템의 역할에 대한 믿음까지 회수할 이유는 없다. 교육은 여전히 “바람직하고 발전적인 성과를 만들고, 직업에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구축하고,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함양하도록 돕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우리 미래 삶의 모습을 규정할 핵심 요소로서 교육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기후변화와 불평등 심화 등 우리 모두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즉, “가르침과 배움을 수행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인간사회 전환의 기반이 되어 왔”기에,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전환을 만들어 낼 바탕으로서 먼저 교육의 전환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요청하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과거를 뒤로하고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전 세계의 가족, 지역사회, 정부가 그간 암묵적으로, 혹은 명확한 법과 제도를 통해 합의해 왔던 내용을 바꿔야 할 정도로 현재 우리의 교육은 한계에 이른 것일까? 이에 대해 보고서는 지난 반세기에 걸친 경제발전과 신기술의 등장에 힘입어 기본권으로서의 교육 보급이 분명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교육에 남아있는 불평등과 배제의 역사가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양질의 교육 제공’이라는 오래된 약속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 지식, 학습에 대한 낡은 사고방식이 우리가 새로운 길을 열어 바람직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교육발전 모델을 확장하는 것은 진전을 위해 선택할 만한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다른 모든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권리라고 인정한 이후, 인류 전체의 교육 접근성은 분명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1948년 당시 전 세계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인구는 전체 24억 명 중 45%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80억 명 중 95% 이상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아동·청소년들의 학교 등록률은 초등학교 90%, 중학교 85%, 고등학교 65%에 이른다. 문제는 이러한 ‘전체 평균’으로서의 추세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때, 현재 인류의 교육 시스템이 과연 공정하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초등학교 등록률 90% 달성’은 물론 대단한 성과로 보이지만, 반대편에 드리워진 그늘에는 아직도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2억 5천만 명의 어린이가 남겨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저소득 국가에 속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서 교육받지 못한 10명 중 1명의 아동은 곧 ‘저소득 국가 아동 5명 중 1명’이기도 하다. 또한 고소득 국가에서 중학교 등록률은 98%로 거의 보편적 수준에 도달한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청소년의 3분의 1 이상이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 전체가 아닌 세부 사항을 보면 볼수록 교육에서 나타나는 격차는 더욱 극단적이다.
빈곤으로 인한 이같은 불평등 문제와 더불어 차별과 배제 역시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들을 괴롭힌다. 빈곤한 국가일수록 여성과 소녀들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적 이유로 교육으로부터 배제되며, 장애, 성별·민족·문화적 정체성, 재난이나 분쟁에 기인한 이주 등은 또다른 배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일부 완화하려는 노력마저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난 2년간 주춤하는 양상이다. 팬데믹은 원격교육 등 그간 미래의 일로 여겨졌던 교육 방식들을 많은 나라에서 앞당겨 구현하게 해 주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나라에서 학교를 이탈한 학생들은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교육적·사회적 배제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기존의 교육 내 ‘불평등의 그물망’을 직시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지금 우리가 교육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가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의 시한으로 삼은 2030년, 그리고 21세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오는 2050년을 바라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함께 그려보는 교육의 모습이 우리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한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가 중대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공동의 도전과제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교육이 이같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금 교육을 다시 구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환경과 기술, 거버넌스 시스템, 그리고 직업 세계의 변화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하고, 그 각각의 도전에 대응해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의 미래 모습을 결정지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기후변화와 자원 남용 등으로 임계점에 도달한 환경문제 ▲기회와 위기의 양면성을 가진 기술발전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등으로 인해 후퇴하고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 ▲기술 및 환경 변화와 더불어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될 미래의 직업세계 등은 하나같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고, 또 우리 미래에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도전들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러한 도전에서 이미 혁신적 전환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청년들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전의 그 어느 세대보다도 강하고 분명하게 어른들을 질책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고, 교육계에서도 경제성장 위주의 근대적 개발 패러다임 대신 생태지향적 교육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서로를 연결하기도, 서로 간의 격차를 벌리기도 하는 디지털 기술이 지식 다양성과 문화적 포용성, 투명성, 지적 자유 등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그 대응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새로 그려질 교육은 지금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혼란과 도전을 예측하고, 현재 싹트는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들을 포착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집단적 노력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함께 그려보는 미래 교육의 모습
보고서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그저 ‘교육의 새출발’을 알리는 흔한 구호를 외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동시에 기존의 모든 것을 다 버리자는 뜻도 아니라고 말한다. 수많은 제안과 혁신에 대한 요청들을 담고 있는 이 보고서가 스스로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초대장’이라 일컫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그 초대장을 받아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고의 교육학적·교육적 전통들을 검토하고, 그 유산을 혁신하며, 그 위에 우리 인류와 살아있는 지구의 서로 연결된 미래를 형성하도록 도울 바람직한 새 요소를 덧붙이는 일”이며, 그 대상은 ▲교육학 ▲교육과정 ▲교수활동 ▲학교 ▲교육의 시간 및 공간이다.
지난 100여 년간 교육의 이 다섯 가지 요소들은 의무적 학교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전 세계에서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잡아 왔다.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에 기반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개인적 성취를 목표로 삼고, 분리된 개별 과목으로 구성된 미리 짜여진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교수활동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교사 한 명의 책임하에 진행되고, 그 형태와 기능이 유사한 학교 공간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특정 연령대의 학생이 특정한 장소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교육을 받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교육’이란 단어에서 자연스레 이러한 모습을 떠올렸고 이러한 모습을 기대해 왔다. 이러한 표준화 혹은 획일화는 분명 20세기의 보편적 교육 보급에 큰 역할을 했지만, 교육이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환경적으로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21세기의 인류에게 적합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 보고서는 이 모든 요소들을 다시 검토해서 버려야 할 것, 계속 유지해야 할 것, 그리고 새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해 보자고 요청하며, 지난 2년간의 분석과 협의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미래 교육의 모습을 제안한다.
우리가 다시 그려낼 교육에서 먼저 교육학은 협력, 협동, 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근거로 제시했던 과거의 불평등과 배제를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도전과제들에 우리가 ‘함께’ 대처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과 지식이라는 고전적인 교육의 세 꼭짓점의 관계를 규정하는 교육학이 협력과 협동, 연대를 대원칙으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교육학의 중심에 놓인다면 우리가 배우는 방식, 즉 교육과정 역시 그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서로가 연결돼 있음을,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 생태적이고 상호문화적이며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양성이 교육과정의 중심에 놓이게 될 때, 교사 한 명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지금의 교수방식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교사는 그 역할과 권한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받는 가운데 협동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21세기에도 포용, 형평성, 개인과 집단의 웰빙을 지원하는 교육 장소로서 강력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학교의 물리적 공간과 시간, 시간표, 학생을 그룹화하는 방식을 다시 디자인함으로써 변화된 교육과정과 교수활동을 유연하게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교육이 더는 아동과 청소년 및 청년에 이르는 인생의 특정 시기와 특정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교육 기회는 평생에 걸쳐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공간에서 펼쳐지도록 확대되어야 하고, 누구나 인생의 모든 시기에 의미 있고 수준 높은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원문링크
다시 30년을 내다보는 대화의 시작
이 모든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고서가 수 차례에 걸쳐 강조하듯 이 제안들이 단 하나의 정답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중 일부만 실행에 옮기게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반발이나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을 이루어 내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지금은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할 때라는 사실이다. 1972년에 ‘평생학습’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포르보고서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평생학습의 싹을 틔우고 그 결실을 맺고 있듯, 이번 교육의 미래 보고서 역시 2050년이 되기 전에 변화와 전환에 필요한 싹을 틔워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점으로서 이 보고서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화와 국제적 연구 및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지난 2년간의 노력과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