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평화구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평화구축을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좋지 않은 결과를 치유할 수 있다.
요즘 정세를 보면 ‘전쟁과 평화’라는 고전 영화가 떠오른다. ‘고교얄개’라는 영화가 유행이던 7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이던 나는 극장에서 ‘전쟁과 평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전쟁영화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영화는 지루했다.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훗날 아내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날에 ‘오드리 헵번이 울고 가겠네’라며 아내를 기분 좋게 하는데 써먹었다. <전쟁의 사회학>에 나오는 말도 떠오른다. 인류 역사에 있어 평화는 예외였고, 전쟁이 규칙이었다는 말이다. ‘피로 물든 팔레스타인’이라는 오늘 신문 기사 제목을 보며, 여전히 평화는 인류의 숙원임을 절감한다.
전쟁과 평화는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전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변란에 대비해 너나없이 생존배낭을 준비했다. 하지만 4월 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이에 5월 14일 <뉴욕 타임스>는 ‘북한과 트럼프: 적에서 친구로'(Trump on North Korea: From Foe to Friend)라는 비디오 클립을 선보였다. 해당 비디오는 ‘그때(then)와 지금(now)’ 을 대비시켜 최근 몇 달간의 상황을 담아 코미디 같은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지금 전 세계는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북미 회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평화’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런 때일수록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가 얻은 교훈이자 기념비인 유네스코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유엔 헌장> 제1장 1조에 담긴 유엔의 창립 목적은 “국제 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며”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한 유엔의 창립 목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기구인 유네스코 역시, <유네스코 헌장>에 다음과 같은 창설 취지를 담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중략) 문화의 광범한 보급과 정의, 자유, 평화를 위한 인류의 교육은 인간의 존엄에 불가결한 것이다. (중략) 이 기구의 목적은 (중략)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한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에 공헌하는 것이다.”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하여 세계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유네스코의 사명을 우리의 마음에 다시금 새겨본다.
2년 전에 열렸던 한국평생교육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주제로 ‘평화, 공존, 그리고 학습’을 내걸었다. 당시 일부 회원들은 ‘갑자기 웬 평화냐’며 다소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차에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평화’라는 영문 단어를 중심으로 한 그림 한 점을 찾았고, 우리는 이것을 당시 학술대회 포스터로 활용했다. 이 그림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대화, 문화적 다양성, 비폭력, 관용, 표현의 자유, 상호 이해 등 우리 인간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간 활동들이 모두 평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웅변한다. 평화가 삶의 중심이라는 이야기다. 이 내용을 회원들에게 전달하자 설득이 되었다.
당시 “평화와 공존을 위한 평생교육과 학습”으로 주제 강연을 맡았던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은 “지구촌과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할 때 평생교육은 무엇보다도 ‘평화와 공존’을 주요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자연, 그리고 북한과도 평화 공존하는 평생교육을 주문했다. 평생교육 또한 유네스코의 중요한 주제다. 해당 강의를 들으며 그간 평생교육 분야가 평화교육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평생학습 본연의 모습으로서 지속가능발전목표 16번(SDG 16)과 교육의 역할을 되새겨 본다.
SDG 16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사회 증진을 목표로 하는 평화, 정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다. 여기서 교육은 평화와 관용, 건강한 시민사회 건설의 선도자 역할을 한다. 평화는 SDG의 5대 강령인 사람(people), 지구(planet),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파트너십(partnership) 중 유난히 돋보이는 단어다. 여기서 평화란 정치 참여, 정의에 대한 접근을 말한다. 교육은 평화 구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평화 구축을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좋지 않은 결과를 치유할 수 있다. 유네스코의 창립 목적인 ‘교육을 통한 평화’를 구축할 때 그 평화는 지속가능하다. 평화가 무르익어가는 오늘, 유네스코의 평생교육과 평화교육은 세계평화를 향한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임을 확인한다.
이희수 중앙대학교 대학원장·교육학과 교수
이희수 교수는 평생학습과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펼치며 <각국의 평생교육정 책>, <한국의 문해교육> 등을 펴낸 교육학자다. 지속가능발전목표의 교육 분야 정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 1회 유엔 지속가능발전 교육목표 이행(SDG4-교육 2030)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