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네스코의 교육 분야 70년
지난 70년간 한국이 이룩한 눈부신 발전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국과 유네스코가 함께 걸어온 희망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일어선 한국이 이제 세계 곳곳에 교육의 씨앗을 뿌리며 인류 공동의 교육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유네스코와 한국은 서로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의 밑바탕 마련한 교육
유네스코 창설 초기부터 교육은 인간의 마땅한 권리이자 인류가 직면한 빈곤과 무지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열쇠로서 가장 중요한 사업 분야 중 하나였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 과거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들이 유네스코에 합류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자연히 유네스코의 교육사업 방향도 각국의 교육 개발을 지원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전쟁 직후 거의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유네스코 회원국 활동을 시작한 한국 역시 그러한 유네스코 교육 사업의 주요 수혜국 중 하나였다. 전쟁 와중인 1950년, 한국의 가입이 승인되자마자 유네스코는 운크라(국제연합한국재건단, UNKRA)와 협력해 한국에서 교육재건 및 지원사업을 추진하며 교육 지원의 첫 발을 뗐고, 1952년에는 유네스코-운크라 교육 사절단을 파견해 그 이듬해에는 한국의 교육 현황과 제안을 담은 보고서「Rebuilding Education in the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의 교육재건)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전후 교육 재건을 위한 최초의 정책보고서로서 당시 정부 당국이 새 교육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서울 영등포에 들어선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에서 인쇄 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던 순간도 한국 교육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정표였다. 유네스코가 10만 달러, 운크라가 14만 달러를 지원해 건립한 이 공장에서 찍어낸 연간 3천만 권의 교과서는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초등교육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해에 설립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초창기 사업 우선순위를 문해교육과 청년 교육 및 청년 운동을 통한 국가 재건 기여에 두어 미래 세대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활동을 펼쳤다. 한국위원회 설립 직후부터 1956년까지 대학생을 주축으로 농촌 지역 비문해 퇴치, 생활 개선, 영농 지도,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친 ‘유네스코 학생건설대’와 1956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 내에 설립해 농촌지도자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한 ‘신생활교육원’이 그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두 사업은 도시화가 진행되기 이전 한국의 농촌 지역사회를 재건하고 교육 기반을 마련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 한국이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기여했다.
단계적으로 뿌리내린 국제 교육 이슈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은 유네스코가 오늘날까지 시행해 온 교육 분야 사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유네스코는 세계 각국이 초·중·고등교육은 물론 이 모두를 아우르는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 전 단계에서 필요한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연구 의제를 제시하고 그 성과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 발전사는 이러한 유네스코의 노력이 효과적이며,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왔다. 1950년대 전후 복구와 재건을 위한 교육 활동에 이어 1960년대의 초등의무교육 기반 구축, 1970년대의 평생교육 논의,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국제이해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별로 한국 교육계에서 거둔 성과들은 그간 유네스코가 제시하고 장려한 의제들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8년 제정한 헌법에 초등교육 의무화를 명시했을 정도로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했지만, 수치상의 높은 초등학교 취학률에 비해 학교 시설과 교육의 질은 열악하기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1960년대 후반 아시아 지역 회원국들의 초등교육 기반 마련을 위해 수립한 교육계획 사업인 ‘카라치 플랜’의 국내 이행은 한국 정부가 초등의무교육의 내실을 다지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아시아 지역 모든 회원국에서 초등 무상의무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담은 카라치 플랜은 1963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카라치 플랜』 책자를 출간하고 같은 해 11월 ‘카라치 플랜 전국 연구협의회’를 개최하면서 국내 이행의 첫 발을 뗐다. 유네스코도 1964년 한국에 조사단을 파견해 정부와 공동 조사를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는 종합교육계획과 초등의무교육 확대를 시행함으로써 해방 당시 전 인구의 80%에 달하던 비문해자 비율이 1980년대에 이르러 10% 아래로 떨어지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유네스코는 초등의무교육 기반 마련과 더불어 ‘교육은 전 생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치 아래 평생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학교라는 제도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애 전체를 교육의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평생교육의 개념은 1970년 ‘세계 교육의 해’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72년부터 유네스코의 평생교육 관련 자료들을 수집·번역해 국내에 보급했고 1973년에는 각 분야의 교수 및 언론계 인사 30여 명이 참석한 ‘제1차 평생교육 발전 세미나’를 개최했다. 1974년과 1978년에는 한국 사회교육기관에 관한 현황 조사와 연구를 실시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평생교육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 마련에도 힘을 보탰다. 이렇게 교육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평생교육의 개념은 1980년 한국이 개정 헌법에 세계 최초로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하면서 그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경제 발전이 성과를 내고 교육 시스템도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서, 1990년대 이후 한국 교육은 문화 간 이해와 환경 등 전 지구적인 주제로 그 지평을 넓혀갔다. 이른바 ‘국제이해교육’의 본격적인 비상이었다. 이미 1974년에 유네스코는 ‘국제이해, 협력, 평화를 위한 교육과 인권, 기본 자유에 관한 교육 권고’를 발표했고, 한국 역시 유네스코학교 활동을 통해 1970년대부터 국제이해교육 활동을 펼쳐 왔지만, 1991년 한국이 마침내 유엔에 가입하고 정부가 세계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국제이해교육에 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교육부는 1995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국내 국제이해교육 센터로 지정해 관련 교육 활동을 장려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겼다. 2000년에는 한국 정부와 유네스코 본부 간 협정을 토대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APCEIU)이 설립돼 국내는 물론 아태지역의 47개 유네스코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제이해교육 연구, 연수, 자료개발, 교사교류 등의 다양한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97년 한국유네스코문화교류센터(Korean UNESCO Cultural Exchange Services, KUCES)를 설립해 급증하는 주한 외국인과 한국 청소년 간 상호 이해를 돕는 문화교류의 창구 역할을 했고, 1998년부터는 전국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인 ‘외국인과 함께 하는 문화교실’을 열어 국내 학생들에게 국제이해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교육현장 속의 유네스코
유네스코의 활동이 의제 제시와 이슈 소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실도 한국의 교육 발전에 의미가 있다. 유네스코가 선제적으로 제시한 굵직한 의제들이 법안과 정부의 교육 관련 정책에 반영되어 교육의 밑그림이 되었다면, 일선 학교와 교육 현장에서 시행된 일련의 사업들은 교사와 학생들이 학습의 질을 높이고 세계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시각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경제 발전 초창기에 유네스코가 펼친 국내 외국어 교육 활동과 1961년 이후 지금까지 대표적인 국내 유네스코 학생 관련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유네스코학교’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57년 유네스코가 운크라를 통해 지원한 자금으로 서울대학교 내에 설립된 한국외국어학원은 해외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어학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제무대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초역량을 키우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 외국 자본과 기술 도입이 본격화되던 1960년대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국내 영어교육 발전을 위한 교수법 도입에 나서 1966년 교육 주무부처인 문교부 장학관과 각 시·도 교육위원회 영어담당 장학사, 영어교육 전문가, 영어 교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영어교육 개선을 위한 연구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협의회에서 논의된 중등교육 영어 교수·학습법과 학습자료는 1969년부터 국내 중·고등학교에 보급되어 영어교육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유네스코청년원(현 유네스코평화센터)에서 개최한 하계영어학교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에 걸쳐 개최된 ‘한국-호주 지구촌 영어교사 합숙 연수’도 국내 교육 현장의 외국어 학습 및 국제 교류 역량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유네스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꾸준히 발전해 온 학교 대상 프로그램인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UNESCO Associated Schools Project Network, ASPnet)도 교육 현장 속으로 다가간 유네스코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업이다. 1953년 16개국 33개 학교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만 1500여 개 학교가 가입해 활동 중인 이 사업에 한국은 1961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국내 유네스코학교는 2020년 4월 현재 610개(예비교 73개교 포함)에 달하며, 각 학교에서는 학생 및 교사가 주체적으로 나서 ‘모두를 위한 교육’과 국제이해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 세계시민교육 등 유네스코의 주요 이념과 가치를 교육 현장에 확산시키고 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2013년에 아시아 지역 최초로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 60주년 기념 국제포럼을 열었다. 10년 단위로 개최되는 이 국제포럼을 통해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는 평화와 지속가능발전을 가능케 할 세계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학교 현장의 역할을 모색했고, 한국은 해당 활동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또 다른 교육의 기적을 꿈꾸며
유네스코의 교육 수혜국에서 출발해 70년 만에 대표적인 공여국 중 하나로 올라선 한국은 이제 유네스코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교육지원 사업을 펼치는 회원국 중 하나가 되었다. 이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2의 ‘교육의 기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 등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교육 의제를 널리 알리고 목표를 앞당겨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989년 한국 정부의 제안과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유네스코가 제정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은 국제사회의 도움 속에 교육을 재건하고 이를 토대로 발전을 이룬 한국이 이제는 후발국의 교육 지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은 결과물이었다. 비문해 해소를 위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고 동참을 이끌어내고자 마련된 이 상은 매년 9월 8일 ‘세계 문해의 날’에 문해 활동에 큰 역할을 한 개인 또는 단체에 수여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세종대왕 문해상의 취지를 높이고 저개발국에서 ‘모두를 위한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 해외 교육지원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에 아태지역 유네스코 회원국을 대상으로 ‘세종프로젝트’(현 유네스코 브릿지 아시아 프로젝트)가 출범했고, 2010년 9월부터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유네스코 브릿지 아프리카 프로젝트’가 출범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이들 사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해당 국가에서 교육 소외계층의 기초문해교육을 지원하는 동시에 주민들 스스로 경제적 자립과 지역 개발을 이룰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 국민의 숙원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교육적 측면에서의 활동 역시 21세기 한국의 유네스코 교육 사업이 지향해 온 분야 중 하나다. ‘윤전기 및 인쇄 용지 북한 공급 사업’은 그 대표적 사례로, 2002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 본부와 함께 유네스코 신탁기금을 활용해 영어교과서를 인쇄할 수 있는 용지 200톤을 북한에 보낸 데 이어, 2006년에는 대한교과서주식회사가 기증한 중고 윤전기를 유네스코본부를 통해 북한에 전달함으로써 남북 교육협력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제는 지구촌 국가들의 공통된 관심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 달성을 위한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 그리고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 GCED)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의 주요 유네스코 활동 영역으로 확고히 자리잡을 주제들이다. 이에 2009년에 설립된 지속가능발전교육한국위원회(ESD한국위원회)는 국내외 지식 자원과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일종의 기관 간 협업 체제를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 인증제’는 교육 현장에서 지속가능발전교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작·발굴하는 창구가 되었다. 국내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은 한국이 2020년부터 시작되는 차기 국제실천프로그램인 ‘2030년을 위한 ESD(ESD for 2030, 2020-2030)’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이어가는 데도 중요한 바탕이 될 전망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이 21세기 이후에도 인류가 지구상의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더불어 발전하기 위한 목표를 교육적 측면에서 일깨우는 것이라면, 세계시민교육은 인류가 상호 이해와 존중,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역량을 길러줄 교육적 밑바탕이다. 이에 한국은 교육2030의 세부목표(SDG 4.7)에 포함되어 있는 이 두 가지 주제가 교육 각 분야에 성공적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환기시키며, 그 실천을 돕는 데 앞으로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 70년간 우리의 교육 분야 발전사가 보여주었듯, 유네스코와 모든 회원국들이 서로를 이끌며 교육 사업을 이어간다면 모두의 앞날에도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
[참고자료]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에서 지구촌 나눔의 주역으로』(2014),
『교과서 한 권의 기적: 유네스코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꿨나』(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