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용 국제이해교육학회 고문
1961년 한국에서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 사업이 첫발을 내딛으면서 국제이해교육의 여명이 터오던 시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다수의 국제이해교육 관련 사업에 참여한 정두용 고문은 해당 분야의 초창기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서면으로 정 고문을 만나 한국 국제이해교육의 성장과 의미, 그리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196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시면서 한국에 국제이해교육을 알리고 관련 활동을 펼쳐 오셨습니다. 1967년 국제이해교육 연구협의회 개최부터 1971년 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 아시아지역회의 개최에 이르기까지, 초창기 국내 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의 보급과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 활동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960년 초 한국이 유네스코학교(당시 유네스코협동학교)네트워크에 가입하면서 국제이해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우선 이때의 시대적 배경을 잠깐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이념적, 정치외교적, 그리고 군사적으로 북한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시대였기에 인권이나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바탕을 둔 국제이해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문화, 특히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국제이해는 오로지 자유우방국가들의 문화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이해교육의 성장과 발전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시기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학교에 가입한 학교들은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했습니다. 그 동인(動因) 중 하나를 꼽자면 당시 국제교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한국에서 유네스코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국제교류, 특히 국제적 교육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1971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회의였던 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 아시아지역회의도 한국의 국제이해교육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이미 아시아 지역에 국제이해교육을 지원하고 조정할 지역센터가 설립되어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습니다. 한국에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이 설립되기 무려 30년 전의 일이었으니, 당시로선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논의들이 펼쳐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내 유네스코학교의 성장도 가까이서 지켜봐 오셨습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고문을 통해 유네스코학교가 “한국 교육에 ‘세계에서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적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의 교육에 있어 유네스코학교의 기여와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유네스코학교는 국제이해교육이란 이름으로 한국 교육에 독보적인 기여와 활동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유네스코 학교는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평화와 인권, 문화간 이해,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의미고, 인종과 언어, 문화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동시에 인류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 의식과 더 나아가 세계시민의식까지 고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 두 번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향점들은 세계가 우리 삶의 터전이자 활동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바로 지금, 한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규범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를 시범적으로 실천하며 이끌어 나가는 곳이 유네스코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네스코학교의 역할이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입니다.
유네스코학교는 공교육 체제를 통해 유네스코의 이념을 학교 현장에 확산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수 방법이나 교육과정 등 학교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강조하게 하는데요. 앞으로 유네스코학교가 우리나라 교육에서 불러일으켜야 할 ‘혁신’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혁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유네스코학교는 국제이해교육에 접근하는 기능적 능력과 태도를 육성함으로써 한국의 공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불러일으킬 기능적 능력과 태도란 다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입니다. 국제이해교육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상상하는 능력을 중요시하며, 이를 자극하는 창의적 활동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입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국제이해교육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참여와 협력입니다. 국제이해교육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평가하는 전 과정이 학습자들과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참여와 협력하는 태도는 바로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넷째는 자기주장과 갈등해소입니다. 집단 속에서 참여와 협력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 주장이 다른 사람과 달라 갈등을 일으킬 때도 이를 대처하고 해결하는 능력 또한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다섯째는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입니다. 국제이해교육에서는 ‘나’ 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 집단, 국가 간의 의사소통과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원만한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과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다섯가지 능력과 태도가 유네스코학교의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길러지고, 이들이 한국의 학교 교육으로 확산된다면 한국 공교육의 혁신적인 변혁을 불러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호 이해와 존중을 위한 유네스코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국가와 민족, 종교 간 오해와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혐오와 차별 문제도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국제이해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이상과 현실이 항상 따로 존재하며 그 사이에 언제나 큰 간극이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국제이해교육은 ‘평화의 문화’라는 이상을 추구합니다. 그 가운데는 상호이해와 존중이라는 핵심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국제이해교육이 직면한 현실 앞에는 언제나 엄청나게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관계는 그것이 국가적이든 민족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인간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겠다’고 하는 유네스코의 국제이해교육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까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의 국제이해교육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과업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는 주체를 꼽자면 한국의 600여 개 유네스코학교와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과 같은 곳일 것입니다. 그곳의 구성원들이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네스코는 지속가능발전교육, 세계시민교육 등 일면 국제이해교육과 유사한 실천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교육 분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이해교육은 이들 주제와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지, 어떤 효용이 있을지 쉽게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큰 주제를 가진 사업들을 쉽게 설명해 보라고 하니까 정말로 어렵네요(웃음). 우선 국제이해교육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국제이해교육은 평화의 문화라는 상위개념하에 평화와 인권, 문화 간 학습, 지속가능발전교육, 그리고 범세계적 관심사를 다루는 유엔 시스템의 역할이라는 하위 주제들을 통해서 세계시민의식을 고취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속가능발전교육은 국제이해교육의 한 분야로 되어 있고, 국제이해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세계시민의식의 고취 및 강화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지속가능발전교육 10년’을 설정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했으며, 국제이해교육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을 흡수해 유네스코에서 국제이해교육을 대신하는 주요 사업으로 떠올라 현재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주요 방점은 지속가능한 미래와 사회변혁을 위해 필요한 가치, 행동,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확산에 있습니다.
한편 세계시민교육은 2012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글로벌교육우선구상’을 통해 세계시민의식을 강조하고, 21세기 교육이 직면한 도전 과제를 해결할 사업을 실천하는 국제기구로서 유네스코가 지정됨에 따라 국제이해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주관했던 유네스코가 세계시민교육도 맡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업의 방점은 학습자들이 더 포용적이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배경과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세 교육 분야는 ‘세계는 하나’라는 관점에서 평화의 문화, 지속가능한 사회, 인류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세계시민의식 고취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네스코에 가입한 지 올해로 70년이 됩니다. 한국과 유네스코가 지금까지 함께 해 온 70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유네스코와 한국은 1950년 한국 전쟁이란 어려운 시기에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유네스코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고, 이후 유네스코는 한국의 교육, 과학, 문화 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업들이 국제이해교육과 평생교육, 해양과학, 과학과 사회, 지속가능발전, 세계문화유산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이제 한국은 오히려 유네스코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과 유네스코 관계 사이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정부가 하는 일들을 실질적으로 돕고 수행하면서 유네스코의 이상과 정신을 실현하는 수많은 민간사업들도 효율적으로 수행했고, 국내외 유네스코 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네스코는 정부 간 기구입니다. 정부의 정책과 입장이 반영되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유네스코의 관계, 그리고 한국위원회가 나아갈 방향을 원론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더 많은 회원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정책의제를 개발하고 이를 집행위원회 및 총회와 같은 의사결정기구에 반영시키고, 이를 국가적·지역적·세계적으로 실천해 나가도록 유네스코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성원 개개인으로서, 그리고 조직으로서 확실한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인터뷰 진행 홍보강 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