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의제’(일명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의 부제는 ‘세계의 전환’(Transforming Our World)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지배해 온 기존의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가치와 제도를 완전히 바꾸기 위해 2030의제에서는 ‘통합’, ‘포용’,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구조적으로 구현한 것이 매년 7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되는 ‘고위급 정치포럼’이다. 이는 여성, 아동/청소년, 농민, 노동자 및 노조, 시민단체, 기업 및 산업계, 지방정부, 과학기술계, 원주민, 장애인, 노인, 재단 및 자선단체, 교육계 등 13개 사회주체그룹이 매년 유엔에 자신의 목소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이슈를 학습하고 교류하는 장이다. 참가자들은 각 주체그룹별로 공동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1년 내내 진행하는 공개 온라인 숙의토론과 협업과정을 거치면서 이슈 통합 역량과 포용성을 키우는 동시에 책임있는 행동주체로서 거듭나고 있다.
유엔 SDGs 교육목표 내용을 보면, 교육의 보편성 및 포용성을 강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갈 행동하는 시민주체 양성을 교육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계는 이러한 2030의제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 비전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2030의제가 채택된 지 4년째인데, 교육부는 SDG 교육목표를 ‘국제협력사업’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담당부서가 국제교육협력담당관인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교육부가 SDG 교육목표 이행을 위해 마련한 공론화 장인 ‘교육 2030 포럼’의 운영협의체가 학계와 연구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생, 학부모, 교육시민단체 등 교육 이해관계자의 주도적 의제 설정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태인 점도 문제다. 국가 교육비전 수립을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의 민간위촉위원도 학계 및 연구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애특수교육, 시민사회 등 비형식·비공식 교육에 대한 고려도 부족한 상황이다.
통합적이고 포용적이며 혁신적인 교육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문가와 학교 등 제도교육 중심의 교육 거버넌스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거버넌스 구조에 변화가 없다보니 기존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민을 ‘대상화’하는 교육방법과 정책만이 나올 뿐이다.
건강한 시민사회활동이 어떻게 행동하는 시민 주체를 양성하고 사회를 바꿔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지난 2009년 인천의 7개 풀뿌리민간단체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이자 갯벌과 논 등 습지의 건강성을 대표하는 깃대종인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저어새네트워크’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저어새네트워크는 저어새 최대 번식지 중 하나인 인천 남동유수지를 매일 오전, 오후 방문해 저어새 개체수를 모니터링하고, 저어새 및 습지에 대한 시민인식을 증진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 결과 인천광역시에서도 2014년부터 저어새 모니터링 보고서를 공식 발간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자연환경 관련 정책의 기본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저어새 번식지인 남동유수지 일부를 매립해 하수처리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저어새 모니터링 결과에 의거해 철회되기도 했고, 나아가 인천광역시는 현재 남동유수지를 특별야생동물보호구역 지정을 추진 중에 있다.
지난 10월 15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회 동북아 SDGs 이해관계자 포럼’(NEA Multi-Stakeholder Forum on SDGs)에서 동북아 장애운동그룹의 발표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발표는 각 나라의 공무원, 국제기구 및 기업 관계자들, 심지어 시민사회운동 관계자들에게도 관념적이었던 ‘포용성(inclusiveness)’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한 외국 정부 관계자는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그동안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봐왔던 장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 자국의 장애정책에 대해 다시 살펴보려 한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 주체는 강의나 시험으로 양성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초등교육에서부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운동 영역을 주요한 교육정책 영역으로 포괄할 때, 통합적이고 포용적이며 책임있는 시민 주체가 자라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 변화의 첫 걸음으로, 교육부가 SDGs 교육목표 수립과 이행점검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숙의 공론화 장’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공론화 장은 단순히 정부의 정책 의견수렴을 위한 장을 넘어, 그 자체로 주체적인 시민이 길러지는 평생 ‘학습’과 ‘성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윤경효 (사)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무국장 / 한국시민사회SDGs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