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
유엔과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허위정보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디스인포데믹’(disinfodemic)이라 규정하며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 및 사회적 측면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IL)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전문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아미 박사를 만나 MIL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증가하고, 동시에 늘어나는 허위정보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몇 년 전부터 SNS상의 소위 ‘가짜뉴스’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중들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에 대해 차츰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생소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요.
제가 어딜 가나 늘 받는 질문인데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 잘 읽고 쓰는 능력 및 소통과 참여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미디어에 접근하고, 미디어를 분석·평가하고, 창조하고, 나아가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미디어 리터러시’와 ‘정보 리터러시’를 그동안 조금은 다르게 다루었는데, 처음에 미디어 리터러시에 편중되던 경향이 지금은 도서관 등과 협업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어가는 추세입니다. 저는 이러한 융합이 굉장히 중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미디어 제작자나 전문가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 누구나 갖춰야 하는 능력이라는 게 조금 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등을 활용한 개인 생성 미디어의 대량 배포와 소비가 가능해진 오늘날, 대중은 더는 미디어·정보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단순히 미디어·정보를 소비하는 개인 차원의 역량을 높이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때, 그 답이 이 두번째 질문 안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초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중들이 직접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생활 속에서 엄청난 양의 미디어와 정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내야할 것인가 하는 기준점이 없습니다. 그 기준점을 세워주는 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입니다. 말씀하셨듯 이는 개인적인 역량만을 강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량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리터러시’가 읽고 쓰는 능력이니, 내가 정보를 잘 판단하고 잘 만들어 내면 우리 사회는 참 좋은 미디어 사회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하는 부분이 있고, 산업이 책임을 가져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비록 내가 좋아도 남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태도, 즉 시민성이 필요합니다. 온라인상으로 퍼지는 혐오 표현 같은 것들을 접할 때마다 ‘내가 생산하는 정보가 어떤 사회적 여파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내용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담론의 장을 형성해주는 게 사회의 역할이며, 이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사회의 역량입니다. 산업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아무리 성숙되더라도, 이를 수집해서 다른 곳으로 넘기는 산업적인 매커니즘이 변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은 데이터 투명도를 높이고, 개인은 사회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교육에서부터 정보 생산과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의 특성상, 부처·기관 간 협력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한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사실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하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야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평생학습처럼 유아부터 노년까지 쭉 이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협력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정규과정 안에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다루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연결해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지원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디어 센터를 통해 지역 소외 계층이나 일반 성인 및 노년 대상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부처별 강점들을 모아 체계화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부처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현 단계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의 우선순위를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미 20년 이상 각계 각층에서 그러한 논의를 해 온 것으로 압니다. 미디어 교육 관련 세계적인 학자인 영국의 데이비드 버킹엄은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에 대해 “합의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미디어는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념을 유연하게 열어두고 계속 소통하고 협의해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그 과정을 지금 거치고 있습니다. 각 기관이 생각하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미디어 교육의 정의 및 방법론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협의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유네스코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핵심역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년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를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주간으로 정하고 국제회의 개최, 관련 커리큘럼 및 출판물 발간, 전문가네트워크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국내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과의 연결고리는 약했던 것 같은데요, 국내에서 앞으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분야에서 유네스코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유네스코에서 어떤 주장을 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수긍하는 것 같습니다. 국제기구가 하는 역할이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지향점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유네스코가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분야에서 추구해야하는 지향점을 발굴·공유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통해 소외계층까지 포함하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지원한다든지, 세계시민교육을 이야기하며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디어는 경계가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데 반해 관련 논의는 굉장히 지역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유네스코가 할 수 있습니다. ‘청년’에 주목하는 것도 유네스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스웨덴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주간 대표회의 및 청년포럼에서 채택한 ‘청년들의 편지’를 온라인 상에서 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사회 문제를 안고 가야하는 주체로서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유네스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례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 유네스코가 #LearningNeverStops 캠페인을 펼치며 각국의 아이들이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My Covid-19 Story’를 진행한 것도 상당히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이 비록 어른보다도 미디어를 잘 쓴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어렵고 무서운 게 많습니다. 갑작스럽게 누가 나에게 음란물을 보낼 때, 온라인 공간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와 같은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법제처에서 나온 『디지털 소통 law』라는 자료를 접했는데, 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상당히 유용한 자료였습니다. 유네스코도 이처럼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자료를 더 많이 만들어 확산하는 역할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세계시민교육, 성교육, 유아교육, 리터러시 교육 등과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연결하는 역할도 유네스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유네스코뉴스』 지난호에 소개된 유네스코 성교육 보고서에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이슈를 미디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볼 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와 다른 분야와의 연결성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아미쌤의 미디어가 왜요?’라는 제목의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관련 칼럼을 연재하신 경험도 있으시지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일반 대중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네스코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강화 방안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의 핵심은 ‘비판적 성찰’입니다. 그래서 미디어를 접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접한 콘텐츠나 정보를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관점에서 왜 만들었을지를 생각해 보면 그 정보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비판적’이라는 말을 ‘비난’이나 ‘싸움’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지만 비판적 성찰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말과 남이 한 말을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 보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우리 눈앞의 미디어도 이전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떤 채널인지, 크리에이터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만의 필터’를 만드는 습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영은 커뮤니케이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