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9곳이 연속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이 포함돼 있다.
한국의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의 세 번째 항목인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하여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에 해당되는 유산으로서 그 완전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교육적·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되었던 한국 성리학의 탁월성이 입증된 것이다.
조선시대 향촌 지식인들은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성리학 교육을 적합하게 수행하기 위한 교육체계와 건축물을 세웠으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서원들은 전국에 걸쳐 성리학이 전파되는 데 기여했다. 서원은 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들어섰다. 이에 서원 내부의 주요 공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관 중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할 중요한 부분은 모두 유산 구역이나 완충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는 600여 개의 서원이 있는데, 이 중 19세기 후반 대원군 때 훼철되지 않고 20세기 일제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유지한 서원 중 9개 서원이 이번에 등재된 것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서원으로, 주 제향인물은 고려 말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회헌 안향 선생이다. 선생은 한국의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하여 이후 건립되는 서원에 영향을 주었다. 1552년에 건립된 남계서원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주 제향인물은 일두 정여창 선생이다. 이 서원은 지역 사림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서원이자 한국 서원 건축의 정형적인 배치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곳이기도 하다. 옥산서원은 1572년에 세워졌으며 주 제향인물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다. 출판과 장서의 중심 기구로서 서원의 역할을 정립했고, 건축적으로는 서원 영역의 앞에 누마루를 도입하여 회합 및 유식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도산서원은 1574년에 건립되었고 주 제향인물은 퇴계 이황 선생이다. 이곳은 서원이 학문과 학파의 중심기구로 발전하는 과정을 입증하고 있으며, 자연친화적 경관의 입지를 구현한 한국 서원의 전형을 보여준다. 필암서원은 1590년에 건립되었으며 주 제향인물은 하서 김인후 선생이다. 이 서원은 한국의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 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하며, 이전의 서원들이 경사지형을 이용하던 것과는 달리 평탄한 지형에 적합한 건축물 배치 방식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도동서원은 1605년에 건립되었으며 주 제향인물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경사지를 활용한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하였고, 강당 기단부의 예술적 구현, 최소 규모의 계획, 흙담장 경관 등이 성리학 건축미학의 완성을 보여준다. 병산서원은 1613년에 건립되었으며 주 제향인물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다. 교육기관으로서뿐만 아니라 만인소 등 사림의 공론장으로도 확대된, 사림활동의 중심지로서의 서원의 기능을 입증한다. 특히 병산을 마주보고 지어진 만대루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유식공간으로 유명하다. 무성서원은 1615년에 건립되었고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주 제향인물이다. 이 서원은 흥학과 교화를 목적으로 마을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으며 그 발전과정에서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다. 돈암서원은 1634년에 건립되었고 주 제향인물은 사계 김장생 선생이다.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한국적으로 완성한 서원으로, 강당인 응도당을 정침이론에 맞추어 완성한 뛰어난 건물로서 서원 건축의 백미를 보여준다.
한국의 서원은 본래 전인(全人)교육을 표방하고 이를 유지하여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단순한 지식 위주의 학습이 아니라 도덕교육의 실천의 장으로서 전통을 지키고 있다.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으로 정신적인 빈곤이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심성의 수양과 성찰을 우선하는 서원의 전인교육 방식은 인류가 공유하고 지향해야 할 소중한 정신적 가치이자 교육 유산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나눔과 배려의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일깨워 주는 서원은 지나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힘이 될 수 있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의 서원이 한국의 문화유산을 넘어 인류가 함께 아끼고 보존해 나가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배용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