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유엔이 정한 ‘세계 토착어 10년’(International Decade of Indigenous Languages, IDIL)이 시작됐지만, 2주에 한 개 꼴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토착 언어들의 운명은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촛불처럼 위태롭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문화 다양성을 위해서도, 3억 7천만 명에 달하는 원주민들의 안녕과 지속가능발전 달성을 위해서도 토착어의 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전환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토착어와 그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소멸하는 언어와 문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토착민 및 원주민 사회와 더불어 토착어 또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매 2주마다 한 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언급은 이러한 토착어의 소멸 현황을 압축해서 묘사하는 말이다. 호주 대륙에 유럽 이주민이 상륙한 뒤 불과 300년 만에 250개 토착어 중 205개가 소멸됐던 역사가, 각국에서 나름의 원주민 보호 정책이 시행중인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오랫동안 축적해 온 문화와 지식체계를 포함해 그 언어를 사용하던 집단의 사회문화적 기반 전체도 흔들린다는 점을 우려한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인류의 상상력과 삶의 방식의 풍부함은 곧 언어 다양성과 직결돼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흐름을 지금 멈춰 세우기 위해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갈수록 세계화가 심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토착어를 보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어렵다. 언어와 그 사회 고유의 정체성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은, 언어 보전을 위해 먼저 교육, 인권, 경제적 지원 등을 포함한 해당 집단 전체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하는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는 주류 문화의 영향력과 국가·지역 간 경제적 격차로 인한 이주의 압박 앞에서 원주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뉴질랜드나 캐나다, 페루 등 자국 내 교육이나 공용어 정책에 원주민 언어 보호방안을 포함시킨 몇몇 예외적 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보편적 공교육’의 확산을 위해 시행되는 정책은 국가가 지정한 주류 언어인 공용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렇게 공용어 위주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원주민 청년들은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좇아 도시, 즉 주류사회와 주류문화 속으로 편입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은 점점 늙어가는 원주민, 그리고 그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다.
사라지는 세상을 되살리기 위한 10년
‘원주민 문제에 관한 국제실무그룹’(IWGIA)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6.2%에 해당하는 원주민 인구가 전 세계 극빈층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고용 인구의 17%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인 데 비해 고용된 상태의 원주민 중에서 그 비율은 47%에 달한다. 원주민들의 수명은 전 세계 평균치보다 20년 정도 짧으며, 다수의 원주민 사회가 코로나19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그 격차는 더욱 커질 수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되고 후대로 자연스레 이어질 때만이 유지될 수 있는 언어의 생명력이 갈수록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원주민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은 몇몇 국가에서 보조금이나 공공 일자리 등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무너지고 있는 원주민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언어까지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빠듯한 지원금과 단편적인 지원책 대신, 원주민 커뮤니티의 경제, 문화, 교육, 환경, 보건 등 기본적 삶의 조건뿐만 아니라 언어를 포함한 원주민 문화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창출과 지적재산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며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이뤄 왔다. 유엔 총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아 지난 2007년 「원주민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UNDRIP)를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의 국가들은 원주민들의 언어와 전통을 비롯한 문화적 권리 보장을 위한 국제적 권고사항들을 여전히 자국내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관련 정책 동향 매거진 『더 트래커』(The Tracker)는 “(원주민의 기본적인 경제·문화적 권리를 규정해) 1989년에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채택된 「ILO 원주민·부족민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23개국 뿐이고 전체 원주민의 15%만이 이들 국가에 산다”며, “대다수 나라에서 원주민 문화와 언어 관련 법률 및 정책들은 여러 갈래로 분절돼 있고 원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거나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엔이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을 ‘세계 토착어 10년’(International Decade for Indigenous Languages)으로 지정한 것도 전 세계에 토착어와 문화 보존의 당위성을 알리는 것을 넘어, 원주민 사회의 활력을 되살리고 언어를 포함한 그들의 문화가 실질적으로 보호 및 전승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 개발과 관계자 간 대화 증진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간 동안 유네스코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포함된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원주민 언어와 문화 보전이 전 지구적 단위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 10년 동안의 사업을 위해 2020년 멕시코시티에서 채택된 「로스 피노스 선언」(Los Pinos Declaration)은 그 구체적인 전략과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지난 2019년 ‘세계 토착어의 해’에 진행한 여러 사업의 결과와 제안을 반영한 이 선언을 통해 유네스코는 ▲원주민 언어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교육 및 학습 환경을 조성하고 ▲공공서비스, 의료 및 사법 영역에서 원주민 언어 사용성을 높이고 ▲디지털 기술 활용을 통해 원주민 언어 및 매체 활용을 돕는 것 등에 관련 단체들과 회원국들이 힘써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교육, 다양성의 문을 여는 열쇠
토착어가 공용어의 지배적 영향력 안에 흡수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후대로도 이어지도록 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교육이다. 어린이들이 공용어 위주의 공교육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고유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레 익힐 권리가 교육의 틀 안에서 보장돼야 세대 간 단절로 인한 원주민 언어의 ‘예정된 소멸’(programmed extinction)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가능한 이른 시기의 영유아들에게 모어에 기반을 둔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언어 사용이 포용을 향상시키고 전 세계 교육계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교육’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주민 아이들에게 보편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내 어머니의 말과 우리 마을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에서의 다양성이 교육 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자문기구인 원주민 문제 상설포럼은 지난 2019년 3월에 열린 8차 회의에서 “어린이들에게 원주민 문화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해당 커뮤니티의 문화를 보전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과정 이탈과 일탈을 막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원주민 권리 전문가 집단(Expert Mechanism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은 구체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있어 양질의 교육이란 ▲학습에 필요한 자원이 충분하고 ▲문화적 감수성을 갖추고 ▲유산을 존중하는 한편 그것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소화하며 ▲문화적 결속과 안정을 주고 ▲인권과 소속 집단 및 개인의 발전을 아우르는 것이라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 따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는 뉴질랜드를 비롯해 캐나다, 미국, 호주, 파라과이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에서는 1994년에 2개국어 학습 및 ‘언어 둥지’(language nest)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는 원주민 언어를 쓰는 노년층 시민들이 해당 커뮤니티의 아이들에게 일종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이들이 자연스레 원주민 문화와 언어를 익힐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유네스코도 니카라과의 보사와스 생물권 보전지역(Bosawás Biosphere Reserve) 내 마양나(Mayangna) 부족이 정규 교육과정을 문화적 맥락에 맞게 고쳐 문화 간 다언어 교육(intercultural bilingual education)을 실행할 수 있도록 원주민 언어 학습 교구 제작을 지원한 바 있다.
언어에 숨결을 불어넣을 기술
언어와 문화는 사용되고 또 영유될 때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원주민 언어와 문화가 보호를 명목으로 그저 박물관 속 유물처럼 ‘박제’된 채로 머무르게 하지 않도록 돕는 것도 이번 세계 토착어 10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21세기 이후에도 토착어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지금 아이들이 모어를 익힐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성장한 이후에도 관공서에서, 은행과 병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디지털 세상에서 그 언어를 쓸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한다. 유네스코가 디지털 기술의 활용과 접목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정부와 민간 단체에서 그러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결과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Māori) 어로 구글 검색이 가능해졌고 캐나다에서는 크리(Cree) 어 온라인 사전을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훨씬 더 많은 원주민 언어들이 디지털화돼야하고, 웹사이트와 온라인 콘텐츠, 전자책 등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는 또한 전통 지식과 문화에 신기술을 접목하고 그것을 혁신함으로써 살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토착어 존속의 전제 조건, 즉 원주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진단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적 신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은 ‘전통 훼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의 역동적 성장을 증명하는 일이다. 예컨대 오늘날 바누아투의 어부들은 나일론 그물에 자신들의 전통 어업 기술을 접목해 물고기를 잡고, 솔로몬 제도의 어부들은 고티(gothi) 나무로 만든 카누에 모터를 달고 질주한다.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의 시아 샤네나와(Siã Shanenawa) 부족은 무선전화망도 보급되지 않은 곳에서 숲의 사막화를 감시하기 위해 드론과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한편, 신기술과 관련해 코로나19 이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입된 교육 현장의 온라인 학습 인프라가 원주민 언어 교육 증진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주목할 만하다. 팬데믹으로 대면 수업에 차질을 빚은 주요 국가들이 정보통신기술에 바탕을 둔 여러 대안을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현장에 도입했고, 이것이 언어 다양성을 보장하고 죽어가는 원주민 언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하버드 인터내셔널 리뷰』는 지난 1월 19일자 기사에서 “(비록 선진국 위주의 분석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모든 교육 단계에서 온라인 교육 여건을 향상시켰다”며 “(단일화된 교육 과정에 집착하지 않고) 원주민들의 시각을 반영해 교수 방법을 다양화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원주민들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오롯이 담은 학습 과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유엔이 올해 세계 모어의 날(2월 21일)의 주제를 ‘기술을 활용한 다언어 학습의 도전과 기회’(Using Technology for Multilingual Learning: Challenges and Opportunities)로 정한 것도 이러한 희망과 무관치 않다. 유네스코는 “현재 인류의 40%가 교육을 자신이 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이 잊혀져 가는 언어를 공동의 유산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세계 모어의 날 행사에서 유네스코는 “당신이 상대방이 알고 있는 언어로 말을 건다면 그 말은 상대방의 머리로 들어가지만, 상대방의 언어로 말을 건다면 그 말은 가슴으로 가 닿을 것이다”라는 넬슨 만델라의 말을 소개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국가 간 새로운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다수가 알고 있는 언어’가 필요하겠지만, 나의 꿈과 마음을 표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하는 데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말’이다. 앞으로 10년, 사라져 가는 어머니의 말과 그 세상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혁신, 그리고 교육 정책의 변화를 모두가 함께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 hir.havard.edu “The Death and Revival of Indigenous Languages”(2022)
· un.org “Using Technology for Multilingual Learning: Challenges and Opportunities”(2022), “Our Values, Beliefs and Identity Are Embedded within Language, UNESCO Says on Mother Language Day”(2018)
· unesco.org “Cutting Edge — Indigenous Languages: Gateways to the World’s Cultural Diversity”(2022), “Los Pinos Declaration (Chapoltepek) Lays Foundations for Global Planning for the International Decade of Indigenous Languages”(2020)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