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임기를 마치며
2019년부터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ICHCAP)를 이끌어 온 금기형 사무총장이 2021년을 끝으로 3년 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재임 중 올해 국내에 설립될 예정인 유네스코 카테고리2 기관인 세계유산국제해석설명센터의 설립단장직도 맡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금 전 사무총장의 소회를 전한다.
2018년까지 몸담았던 문화체육관광부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즈음, 조직 규모나 대우와 보수 면에서 괜찮은 곳으로의 전직 여부를 두고 여러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의 3대 사무총장직 공모를 접했고, 유네스코에 근무한 경력을 아는 이들의 권유에 따라 공모에 응해 사무총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처음 부임해 보니 직원들의 품성도 훌륭하고 전문성도 있어 보였지만, 한편으로 조직 내 의사소통이 활발하지는 않아 보였다. 정보가 단절되고 제각각 성을 쌓고 있는 모습이랄까. 이에 갈등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이직과 긴장도가 높은 등, 이른바 ‘신뢰비용’이 많이 드는 조직문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아태지역 문화관광 전문가로서 유네스코 방콕사무소에서 근무할 시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개개인은 경력도 좋고 능력이 있지만 연대감이 부족했고, 팀워크보다 개인기를 앞세우는 등의 모습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 기억을 반면교사 삼아 ‘독과점은 부패하고, 창의성은 존중과 연결에서’를 구호로 내세우며 조직 내에서 영역 허물기를 시작해 보았다. 보고 계통을 줄이고 순환보직 원칙을 세우는 한편, 부서 및 직원 간 접촉면을 넓히도록 사업체계도 조정하고 회의 등 업무 관련사항을 모두 공개하고 공유토록 했다.
막힌 곳을 트고 물길을 여는 약간의 노력 덕분에 소통과 결정이 빨라졌고 조직에 생기가 돌았다. 직원들은 업무를 하는 데 자신감을 보였고, 센터를 바라보는 외부 시각도 더 호의적으로 변했다. 사업 예산 확보와 정원 확충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 결과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가 규모나 사업성과 면에서 세계 100여 개 유네스코 카테고리2 기구 중에서도 모범적인 조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센터 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공적개발원조(ODA) 성격을 지닌 업무 특성상 해외 협력이 필수적인데, 하늘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통과 행사를 온라인 방식으로 돌렸지만 지구촌 곳곳의 인터넷이 취약한 지역과는 접속 자체가 어려웠다. 이들 지역의 아쉬움을 해결하는 것이 실질적인 역량강화 지원 사업이라 생각하고 하나씩 풀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도 적지 않았다. 오프라인 회의는 주요인사 일정조정, 초청경비, 청중확보 등에서 제약이 많은 반면, 온라인 회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원하는 인사를 원하는 시간에 초청하고, 각 지역의 청중에게 온-디맨드(on demand) 송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물론 시차, 다국어 통역, 스트리밍 서비스, 통신기술 지원 문제를 해결하느라 직원들의 고생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직원이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과 웨비나, 유튜브, 메타버스 등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숙련자가 되었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은 유네스코 파리본부, 지역본부, 카테고리2 센터, 회원국가로도 확산되고 있다.
임기 중에는 새로운 카테고리2 센터인 세계유산국제해석·설명센터(이하 해석센터) 설립 업무도 병행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해석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는 토대를 세우는 것으로, 세계 전 지역이 업무영역이다보니 직원들은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 역시 주중 3.5일은 아태무형유산센터가 있는 전주에서 1.5일은 해석센터 추진단이 위치한 세종에서 근무하면서 각각 필요한 업무를 처리했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전체 인원의 절반은 재택근무를 하는 제약 속에서도 직원들의 헌신으로 무탈하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제 설립에 필요한 제반절차는 대부분 마친 상태로, 해석센터는 2월 중에 세종에서 공식 출범 예정이다. 이로써 국내에는 이 두 기관과 더불어 국제무예센터(ICM), 아태국제이해교육원(APCEIU), 국제기록유산센터(ICDH), 물안보국제연구교육센터(i-WSSM)까지 교육·과학·문화 분야별로 총 6개의 유네스코 카테고리2 센터가 활동하게 된다. 또한 각 영역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명성도 높은 카테고리2 기관들을 모두 엮어서 협업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아태센터와 국제이해교육원, 국제무예센터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카테고리2센터 협의체가 발족됐고, 정기적인 대표자 만남 등을 통해 공동사업 발굴 등을 논의하고 있다.
유네스코 일을 해 나가면서 항상 염두에 둔 것은 역시 지속가능발전이다. 필자는 문화콘텐츠가 창조산업으로 연결되어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관여주체 간 공정한 이익공유가 보장될 때 문화유산의 보존과 발전이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도모코자 아태지역 국가 문화유산 공유플랫폼인 ‘아이씨에이치링크스’(ichLinks)를 구축했고, 분산화 및 개방과 공유, 지속가능성에 공감하는 회원국가의 참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전통놀이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서 보았듯, 아태지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의 성공 모델도 언젠가 만들어질 날을 기대한다.
아태무형유산센터와 세계유산해석센터에서의 임기를 마치면서, 미래의 행보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그간 운 좋게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과분하게 받은 혜택을 미력하나마 갚아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영역에서 비영리 법인을 운영할 생각이다. 우선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소재로 하여 창업을 원하는 대학생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창제작 전문가를 연결시켜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구상하고 있다. 이후 성과에 따라 자기 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 노정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카테고리2 기관, 그리고 공인 NGO 등 유네스코 가족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금기형 전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 겸 세계유산국제해석설명센터 설립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