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 차별·혐오 대응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보를 습득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결되어 글로벌 연대를 실천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공간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허위정보의 범람, 그리고 차별과 혐오의 유통과 확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는 그 방안으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edia and Information Literacy)를 강조해 왔다. 2022년 발간한 이슈 브리프 제1호 『사이버 공간에서 차별·혐오 대응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특히 차별 및 혐오표현과 관련하여 한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혐오표현 경험 정도를 조사하는 각종 조사 연구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의 어떤 특성들은 차별·혐오표현의 유통과 확산에 기여한다. SNS가 차별·혐오표현을 쉽게 유포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네트워크화된 SNS의 특성 때문이다. 지인을 통한 연결과 이를 확산하는 ‘주목경제’ 메커니즘은 기존의 다른 매체나 플랫폼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들에게 해당 표현을 전달한다. 온라인 환경은 차별과 혐오로 인한 인권 침해의 영향력을 확산하고 영속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익명성이라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은 차별·혐오의 발화자를 특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게 만들면서 차별·혐오표현의 양적 증가를 이끈다.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의견의 극화가 더 쉽게 일어나며 사회적 소수자를 고립시키고 발언권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차별·혐오표현의 양이 폭증하는 데에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공간의 차별·혐오 표현은 어떤 효과를 갖는 것일까? 온라인을 통해 차별·혐오표현이 아무런 규제 없이 사회적으로 유통될 때, 그 결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차별의 정당화다. 여러 연구들은 온라인 혐오표현에 노출된 사람은 그 표현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 혐오를 당할 만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혐오표현의 형식으로 유머가 채택될 때는 혐오가 사소화되기도 하며,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유머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 차별·혐오표현에 노출되면 집단에 대한 경멸을 인식하고 이것이 허용된다는 규범 감각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표적 집단이 된 피해자가 경험하는 피해를 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차별·혐오표현의 대상이 된 소수자 집단은 정서적 위기를 경험하기도 하고, 특정 온라인 공간을 피하게 되거나 행동을 바꾸는 등 자신에 대한 자책이나 위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의 차별·혐오표현의 부정적 효과가 지적됨에 따라, 온라인 표현의 규제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 표현의 규제에 대한 논의는 종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담론과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입장과, 혐오표현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차별·혐오표현이 온라인 공간에서 유통되는 것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공간을 떠나거나 활동을 하지 않게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공론장의 왜곡을 낳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시민은 모든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추상적인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수많은 차별과 폭력의 맥락 속에 놓여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소수자가 위축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 공간의 차별·혐오표현 규제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규제의 틀이 형법상 규제로 이루어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플랫폼 기업이 구축한 공간에서 차별·혐오에 대한 공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자율규제가 강조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과 반차별 교육을 연계하여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유네스코의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패러다임은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혐오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다. 온라인상에서 정보 편향이 존재하며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정보가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고, 성별과 인종, 종교 등의 범주에 대한 재현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목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일차적 전제는 반차별 관점이다. 혐오표현을 단순한 단어의 문제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여기에 함축돼 있다. 사회의 권력 구조를 분석하고 이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구상해볼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성찰성이 미디어 재현, 그리고 온라인 공간의 차별·혐오 표현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된다.
이슈 브리프에서는 이와 같은 교육적 대안 외에도 종국적으로는 차별금지법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언어의 문제이거나 감정적 과도함, 말하는 방식의 문제 등으로 축소될 수 없는, 소수자에 대한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 법이 혐오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법적 한계를 보완하면서 우리 사회가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슈 브리프는 온라인 공간의 차별·혐오표현을 줄여나가려는 목표가 단순히 나쁜 말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차별 금지에 근간한 타인 존중에 대한 관점 정립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교수 (여성학협동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