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언론인 안전의 파수꾼
지난 3월 15-16일 긴급 소집된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특별회의에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언론인에 대한 공격을 규탄했습니다. 3월 3일에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키이우 소재 TV송신타워 폭격과 언론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진실’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언론인들의 안전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유네스코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2020년에 발간된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나흘에 한 명 꼴로 언론인이 살해됐고, 이들 사건 10건 중 9건이 미제로 남겨짐으로써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네스코는 언론의 자유, 나아가 우리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론 활동의 안전을 보장하고 언론인을 향해 가해지는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총회 결의에 따라 언론인 살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 성명을 발표하여 이를 규탄해 왔습니다. 19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해당 결의안은 언론인 살해 및 언론인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을 사회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사무총장이 이를 규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는 국제커뮤니케이션개발사업(IPDC) 정부간이사회에 격년으로 언론인 안전과 언론인 대상 범죄 불처벌에 대한 사무총장 명의의 보고서를 제출해 오고 있습니다.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에 대한 공격이 전쟁이나 내전 등의 무력 분쟁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분쟁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조직 범죄, 뇌물 수수, 환경 및 인권 문제 등을 취재하는 많은 기자들이 단지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언론인의 입을 막기 위한 공격은 살인 외에도 납치, 협박, 희롱, 불법 체포 및 임의 구금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언론인 대상 범죄에 대응해 유네스코는 각국 정부와 언론 단체, 시민사회와 협력해 폭넓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피살 언론인 관측소를 운영하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를 출간하기도 합니다. 특히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에 더욱 취약한 여성 언론인의 안전을 위한 조치도 취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5월 3일을 세계 언론 자유의 날, 11월 2일을 세계 언론인 대상 범죄 불처벌 종식의 날로 제정하여 언론인 안전에 대한 대중의 인식 증진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기예르모 카노 세계언론자유상을 통해 매년 언론 자유를 수호해 온 개인 또는 기관에 상금 2만 5천불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언론인에 대한 공격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론인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거나 언론인에 대한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결국 대중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평화를 향한 유네스코의 노력, 그리고 유네스코 헌장의 기본 정신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네스코는 2012년 ‘언론인 안전과 언론인 대상 범죄 불처벌에 대한 유엔행동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유엔 내 선도기구로 지정된 이래 동 분야 유엔협력의 조정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습니다. 유엔행동계획은 전 세계적으로 평화, 민주주의 및 발전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인에게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유엔행동계획의 틀 안에서 ▲기준 설정 및 정책 수립 ▲인식 제고 ▲모니터링 및 보고 ▲역량 강화 ▲학술 연구 ▲연대 결성 등의 축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올해 11월 2일 세계 언론인 대상 범죄 불처벌 종식의 날에는 언론인 안전에 대한 유엔행동계획 1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에서 고위급 회의를 열어 언론인 안전과 관련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볼 계획입니다.
십 수년간 유네스코 일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평화의 의미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내에서 언론인 안전 우호그룹 활동을 해 왔고, 작년 11월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IPDC 정부간이사회 이사국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진실을 찾아 총 대신 펜과 카메라를 들고 용감히 현장으로 뛰어드는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이 더욱 절실한 지금, 우리 각자의 작은 관심과 행동이 부디 언론 자유와 세계 평화를 향한 행보에 보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임시연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