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파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과거가 아니라 21세기 들어서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말리 등 곳곳에서 계속되는 현재이다. 얼마 전 유네스코는 유엔대학과 공동으로 ‘21세기의 전쟁들(2001-2014)’이란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2.27)하기도 했다. 말리 반군이 팀북투 묘역 유적을 파괴하고는 “세계유산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네스코는 여기서 할 일이 없다”고 선언한 사례에서와 같이, 최근의 무력 분쟁 환경에서 문화가 국제 안보의 이슈로 부상하며 점차 주목받고 있다.
문화유산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경제 사회적 자산을 이루는 근본이기에 의도적인 군사적 공격의 목표가 된다. 알레포 고대 도시, 팔리마 유적 등 시리아의 세계유산과 다수 박물관들의 경우처럼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어 공방전에 쉽게 노출되고 불법 약탈과 거래의 대상으로전락하기도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공동 성명(3.12)을 통해 “과거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미래 세대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약탈하는 행위이며, 증오와 절망의 골을 깊게 할뿐더러, 화해를 위한 모든 노력을 약화시킨다”며 시리아 사태의 문화적 비극에 경종을 울렸다.
지난 주 미국 상주대표부는 영화 <모뉴먼츠 맨>을 유네스코에서 상영하는 행사를 주최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도난당한 예술품을 되찾기 위해 전쟁터에 나선 전담부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프란체스코 반다린 문화담당 사무총장보는 유엔 브리핑(2.5)에서 영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관심을 높이는 데 때론 할리우드가 유엔 조직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하다”며 영화를 통해 문화재 파괴와 약탈 이슈가 전면에 제기되기를 희망하여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21세기의 새로운 전쟁과 비극 속에서도 문화재 파괴와 약탈이라는 과거 전쟁의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국제사회가 세계대전 이후 문화재 보호에 국제법적 장치들을 구비했다는 점이다. 이제 ‘모뉴먼츠 맨’(Monuments Men : 1943년 연합군에 의해 결성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특별 부대)들은 1954 협약(전시문화재 보호), 1970 협약(문화재 불법거래방지), 1972 협약(세계유산 보호) 등으로 구성된 유네스코 문화협약 패키지로 사실상 대체되었으며, 협약들은 긴밀히 상호 직조되어 유사 전쟁의 전후 과정에서 유네스코만의 고유한 제도적 안전망과 지원책을 제공한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말리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여 3건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 냈다. 특히 무기류, 마약류와 함께 3대 불법 국제거래를 형성하고 있는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 최근 1970 협약의 이행 체계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평시에도 문화재의 수난은 계속된다.
세계화와 인터넷 혁명이 문화재의 불법 거래 시장을 급속도로 키우고 있으며, 여기에 범죄 및 테러 조직이 가담하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 하루 1점꼴로 앙코르 와트 인근 석상이 훼손되거나 약탈되고 있고,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이미 유산 95%가 소실된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쟁은 문화재를 노리는 이들에게 가장 큰 호재와 횡재를 동시에 제공한다. 문화유산은 인간 지성과 창의성의 보고이자 인류의 위대한 재생가능한 에너지이다. 영화 <모뉴먼츠 맨>이 들려준 바와 같이, “유산이 파괴되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 위대한 에너지는 우주에서 소멸될 것이다.
강상규 주 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