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야명 벨딱 벨딱 일어사도
물결 아무리 성내며 일어서도
제주 빌덜은 바당 소곱에도 뜨메
제주 별들은 바다 속에도 뜨네
곤 누이 실껍ᄃᆞᆯ 도들오름에 진 후제
고운 누이 초승달 도들오름에 지고 나서
새비꼿 층층이 불 ᄇᆞᆰ힌 질 걸엉
찔레꽃 층층이 불 밝힌 길 걸어
사라오름에 오르민 나도 빌이메
사라오름에 오르면 나도 별이네
양전형의 시 ‘사라오름’ 중에서
언어는 파문처럼 번져 나간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수면에서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나가듯 사방으로 이동한다. 나뭇가지나 퇴적층이 쌓인 장애물이 있으면 번짐이 가로막힌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강원도로 이동할 때 대관령이 장애물이 되고, 이를 기준으로 강원도는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으로 나뉜다. 또 이들 지역의 언어는 각각 ‘영동방언’, ‘영서방언’이라 불린다.
언어가 제주도로 이동할 때는 ‘제주바당’이라는 제주해협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의 바다를 일컫는 제주해협은 물살과 바람이 거세어 파도가 심하다. 조선시대 제주 여행을 했던 임제(林悌, 1549~1587)는 배가 ‘제주바당’을 건너는 상황을 “마치 그네 위에 있는 것 같다(如在秋千上, 『남명소승』) 라고 표현했고, 제주도가 배경인 고전소설 『배비장전』에서는 이를 ‘조리질’(조리로 쌀 따위를 이는 일. 몹시 일렁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비유했다. 배는 북풍이 불지 않으면 제주도에 이르지 못하니, 추자도에서 정박하면서 북풍이 불기를 기다렸다. 추자도를 후풍도(候風島), 즉 바람을 기다리는 섬이라 했던 연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발원하는 쿠로시오 해류의 한 지류가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더욱 거세진 것도 제주해협의 바다가 거칠어진 데 한몫 했다. 이 물살은 서귀포 지역에 아름다운 단애를 만들었고, 문주란, 선인장, 신사라/신사락(뉴질랜드삼)이라는 식물을 선물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 이동을 가로막아 결국 ‘제주어’라는 독특한 언어를 남겨주었다. 말하자면 제주어는 ‘바람과 물살이 가른 언어’인 셈이다.
우리나라 종합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1481)의 ‘풍속’에서 언어에 대한 언급은 제주도 기사인 ‘이어 간삽’(俚語艱澁)이 유일하다. ‘이어간삽’은 ‘토박이말이 어렵다’는 뜻이다. 옛날 어휘들이 많아 알아듣지 못하니, 한결같이 제주어는 ‘간삽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전복을 ‘전복, 점복, ᄌᆞᆷ복’이라 한다. 합성어에서는 ‘비’ 또는 ‘빗’으로도 나타난다. ‘비’와 ‘빗’ 그리고 ‘비바리’의 ‘비’는 고려 때 언어다. 고려시대 어휘를 모아놓은 『계림유사』에 ‘복왈필’(鰒曰必)이라는 내용이 있다. “(고려 사람들은) 전복을 ‘必’이라고 한다.” 는 것이다. 문제는 ‘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있다. 그 해결의 실마리는 『계림유사』의 ‘소왈필음필’(梳曰 苾音必)과 『조선관역어』의 ‘우필우’(雨必五)가 좋은 참고가 된다. 이들은 각각 “(고려 사람들은) 머리 빗는 도구를 ‘苾’이라 하는데, 그 음은 ‘必’이다”, “조선 사람 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必’이라 한다”는 내용에서 우리말 ‘빗’과 ‘비’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복왈필’은 “(고려 사람들은) 전복을 ‘비’ 또는 ‘빗’ 이라 한다”로 읽히는 것이다. ‘전복 따는 도구’를 ‘빗창/ 비창’이라 하고, 수전복을 ‘수핏’, 암전복을 ‘암핏’이라 하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수핏’, ‘암핏’은 ‘수ㅎ +빗’, ‘암ㅎ+빗’ 구성으로, ‘수ㅎ+닭’이 ‘수탉’, ‘암ㅎ+돼 지’가 ‘암퇘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바리’는 ‘전복 따는 사람’을 말한다. ‘비+바리’ 구성으로, ‘-바리’는 ‘어떠한 사람이나 물건’ 또는 ‘어떠한 성질을 가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바리’의 쓰임은 ‘군바리, 악바리’ 등에서 확인된다. ‘비바리’는 ‘전복 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어휘인데 이제는 그 뜻이 확대되어 ‘처녀’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이처럼 고유의 어휘를 간직한 제주어를 유네스코는 지난 2010년에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로 분류했다. 이대로 사라지도록 내버려두기에는 가치가 크고 문화적으로 소중하다는 의미다. 진정 제주어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정신유산이자 문화 유산이라면 그 유산을 지켜야 할 임무가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우리는 제주어를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해야 할 것이고, 자라나는 세대들에 게도 언어 사용의 권리를 보장하여 말하게 해야 한다. 제주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로 원활하게 기능하고, 더 자주 쓰일 때 제주어의 가치는 선양될 것이고, 소중한 제주의 언어유산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강영봉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