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 전문가에게 듣는다 ➋
고대로부터 침략과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앗아갔고, 더불어 지구 환경에도 타격을 입혀 왔다. 일제 수탈과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됐던 우리 민족에게 이는 더욱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화를 구축하는 일이 곧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2022년 6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센터가 발간한 『조선도품종일람』은 일제 강점기인 1911-12년에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전역 13개 도 329개 시군에 위촉해 조사한 조선의 논·밭벼의 주요 특성과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시 조선에서는 논 메벼 및 찰벼, 밭 메벼 및 찰벼 등의 구분에 따라 다양한 벼가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쌀을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신품종 보급을 확대함으로써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에서 재배하는 벼의 약 90%가 신품종으로 대체되었고(홍금수, 2003), 자료에 따라서는 토종 벼가 고작 50여 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벼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는 다양한 육상과 해양 생물자원이 수탈을 피하지 못했고, 이는 곧 한반도 생태계 전체의 생물다양성과 회복탄력성이 큰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전쟁이 어떻게 환경을 극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1991년에 있었던 걸프전일 것이다. 한천수(2003)의 글에 따르면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면서 전국 유정의 70%에 해당하는 7백여 곳에 불을 질러 매일 6백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불타올랐다. 페르시아만 하늘은 온통 시커먼 연기와 검댕으로 뒤덮였고, 쿠웨이트는 물론 주변국들까지 기온이 4도에서 10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때 유출된 타르와 기름 찌꺼기는 걸프 해안 수백 킬로미터를 뒤덮어 바닷새 3만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는가 하면, 바다거북을 비롯한 세계적 희귀동물도 죽어갔다. 걸프 지역의 오염된 물이 완전 순환하려면 앞으로 2백년이 더 걸린다는 연구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기후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채텀하우스 자료(Oli, 2023)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전과는 달리 에너지 공급과 기후 자체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재정·정치적 지원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럽 각국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했고, 우크라이나 전역의 발전소와 난방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전쟁 첫 7개월 동안 대기 중으로 방출된 탄소는 약 1억 톤으로 추산된다. 2022년 9월에 일어난 가스공급관인 ‘노드 스트림 파이프라인’에 대한 방해 행위로 인해 이산화탄소보다 20배 강력한 온실기체인 메탄이 사상 최대로 방출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전쟁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주요 작물인 밀의 수출이 끊기면서 밀을 주식으로 하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대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WFP, 2022).
이처럼 전쟁의 피해는 단지 사람과 사회에 그치지 않고 환경과 생태계에까지 미치며, 오늘날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토다 키요시가 저서 『환경학과 평화학』에서 “환경학의 목표인 환경보전은 환경평화, 생태평화이며 지구와의 평화이고, 평화학의 관점에서 환경보전은 적극적 평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환경안전보장은 인간의 안정보장, 민중의 안전보장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쓴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전쟁 분쟁을 극복하고 평화와 환경을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줄리 안드르제예프스키(Julie Andrzejewski, 2009) 등은 사회정의, 평화, 그리고 환경교육을 위한 새로운 변혁적 표준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환경적 책임성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적 토대를 상상하고 ▲사회정의와 평화, 환경적 정의는 불가분하며, 서로에게 의존적이고, 동시에 서로를 강화시킨다는 것을 주지하고 ▲사회정의, 평화, 환경정의를 포용하는 보다 확대된 책임성 개념으로 교육 방향의 담론을 전환하고 ▲교사교육의 틀을 개혁함으로써 교사가 변혁적 변화의 중심축이 되어야 하고 ▲환경, 평화, 사회정의, 인권, 다문화, 성평등 등 수많은 쟁점과 가치들이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도록 돕는 교육을 중심에 두어야 하고 ▲자기정체성의 중심을 ‘개인-국민’에서 ‘마을사람-지구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6가지 공통 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약 2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인류는 끊임없이 굶주림과 전쟁, 질병, 자연재해와 싸워왔고, 그 결과 현재의 인간 문명의 모습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과 지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지난 1만여 년 동안 겪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전환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는, 종말과 지속 사이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이재영 공주대학교 교수, ESD한국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