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이 공동 작성한 「세계장애보고서」(World Disability Report)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약 10억 명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전 세계 10억 명의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때만 달성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와 자아 실현은 제쳐두고라도, 단지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도 몸부림을 쳐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 모른다. 유네스코가 삶을 영위하고 내일을 열어갈 기본적인 도구인 교육의 기회를 모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곁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10억 명이 장애인’이라는 통계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같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장애의 범주에 들지 않는 장애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중증 장애인도 2억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 많은 장애인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교에서 장애인 친구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는 비장애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장애인을 자주 본다는 비장애인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장애인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수업을 듣고, 대중교통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인기 유튜버로 활약 중인 열아홉 살의 지체장애인 김지우(유튜브 채널명 ‘굴러라 구르님’) 씨도 바로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굴러라 구르님’은 자신의 첫 번째 유튜브 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혹시 길을 가다, 혹은 생활하면서 장애인과 마주친 적 있어? (중략) 한국 드라마나 영화, 예능에서 장애인이 활동하는 것을 많이 본 적 있어? 아마 손에 꼽힐 정도일 거야.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많은 장애인이 여러분 곁에 있어.”
호킹 박사가 장애인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로 “대중에 자주 노출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꼽은 영국BBC의 한 기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BBC는 호킹 박사가 “심슨가족, 스타트렉, 빅뱅이론 등의 인기 콘텐츠에 휠체어를 탄 캐릭터로 등장함으로써 그간 대중문화 속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장애인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비장애인들에게 일깨워 주었다”고 했다.
‘모두’를 위하지 못하는 교육
집이나 시설, 심지어 자기 침대 밖으로도 쉽게 나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손과 발, 눈과 입이 되어 주기 위한 국제기구들의 노력은 다양하다. 하지만 각 기구와 회원국들이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실태를 파악해 전지구적 행동을 펼쳐 나가는 데는 아직 제약이 많다. 국가별, 지역별 편차 또한 대단히 크다. 2030년까지 인류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제시했던 유엔이 작년 12월 「장애와 지속가능발전목표에 관한 유엔 보고서」(UN Report on Disability and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내놓은 것도 그래서다. 이 보고서는 장애인과 더불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최초의 보고서로, 세계 각국의 장애인 실태와 정책, 프로그램, 추천 사례 및 장애인을 포용하면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안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국제기구와 각 회원국의 적잖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이 완전한 주체로서 사회에 참여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장벽이 남아 있다”고 하며, “비장애인에 비해 더 가난하고 덜 교육받고 덜 건강하며,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의 불합리한 현실은 그러한 장벽을 제거해야만 개선될 수 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보고서의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 4-Education 2030) 내용 작성에 기여한 유네스코도 장애인의 교육권과 장애인 포용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담았다. 유네스코는 “주로 문화적, 사회적, 재정적 장벽 때문에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교육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장애인을 포용하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각국이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또한 유네스코는 장애인들이 가난과 소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인 ‘교육 받을 권리’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발전 달성에 중요한 바탕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공부하고, 학교와 집을 오가고, 교실에서 필요한 인적·기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장애인들이 빈곤과 소외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교육 분야에서 전 세계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기초 교육을 이수하고 문해력을 갖추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 전 세계 비장애인의 7분의 1 가량이 학령기에 초등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지 못하는 반면,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의 수는 전체 장애인의 3분의 1에 달한다. 설령 제때 학교에 들어간다 해도 졸업까지 무사히 마치는 비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차이가 크다. 그 결과,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36개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국의 15세 이상 인구 성인문해율은 비장애인이 77퍼센트인 반면 장애인은 54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또한, 조사에 응한 장애인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 때문에 학교입학을 거절당한 적이 있으며, 네 명 중 한 명이 다니고자 하는 학교의 시설이나 환경이 장애인으로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여전히 높기만 한 벽
한편으로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장애인의 교육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법과 정책의 측면에서 각국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93개 유엔 회원국 중 34개국은 헌법에 장애인의 교육권 또는 장애로 인한 교육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명시해 두고 있다. 또한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전 세계 87개~101개 조사 대상 국가 중 장애인의 교육권을 법률이나 정책에 반영해 둔 국가의 비율도 2013년 62퍼센트에서 2017년에는 88퍼센트까지 높아졌다. 적어도 법과 제도에서만큼은 각국이 지난 5년간 장애인의 교육권을 높이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는 뜻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확충되는 속도에 비해 장애인들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의 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데 있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받고 있는 기초적인 교육조차 맘 편히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그림에서 알 수 있듯, 2017년 현재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41퍼센트의 국가만이 장애인에게 교육에 필요한 의사소통 수단과 도구를 지원할 수 있으며, 장애인의 교육을 돕는 인적 자원과 학교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비율도 전체의 33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학습 환경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학습 및 의사소통 도구(학습에 도움을 주는 기기), 인적 자원(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 물리적 환경(학교 건물과 교실의 접근성) 등, 교육 현장에서 가장 필수적인 세 가지 자원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고 해도) 장애인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함께 가야 하는 이유
현실적으로 한정된 재원과 각국의 교육 역량을 감안할 때, 세상의 모든 학교가 하루아침에 장애인을 위한 학습 및 의사소통 도구, 인적 자원, 물리적 환경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 등,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교육을 위한 자원과 예산 자체가 부족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유엔 회원국의 44퍼센트에서만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고, 39퍼센트에 해당하는 국가에서는 같은 학교라 해도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다른 교실을 사용하며, 12퍼센트에 해당하는 국가에서는 장애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장소는 특수학교밖에 없다. 이처럼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은 한정된 예산과 자원하에서 장애인 교육권을 위해 정부가 상대적으로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그 결과 ‘장애인 교육 정책’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같은 시설을 먼저 떠올린다.
국제기구와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학교 현장이 비장애인을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대신 장애인 전용 시설만 늘이는 정부 정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교육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만을 위한 교육시설’이나 ‘장애인만을 위한 교실’ 같은 방법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특수교육(special education)을 분리교육(separate education)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포용 교육은 어디까지나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장애인들이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동등한 사회구성원’임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샬럿 맥클레인-늘라포(Charlotte McClain-Nhlapo) 세계은행 세계장애고문(Global Disability Advisor) 은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교육은 장애인들이 ‘정상적으로’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 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장애를 열세(disadvantage)라고 오해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장애인의 소외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같은 편견 때문에 많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게 있어 학교란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그저 (비장애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정치인과 단체, 국제 기구들은 한결같이 ‘장애인을 포용하고 함께 나가자’라고 외치고 있지만, ‘함께 가자’는 말의 의미가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뒤떨어짐을 메우기 위한 시혜’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고 함께 경쟁할 수 있는 ‘기울어 지지 않은 운동장’이다. 따라서 모든 비장애인들이 각기 나름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듯, 장애인 역시 일방적인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강점과 약점을 두루 갖춘 한 인격체임을 모두가 자각할 때, 우리의 교육은 장애인을 포용하는 사회를 향해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UN「The UN Flagship Report on Disability and Development 2018 – Realizing the SDGs by, for and with persons with disabilities」, 2018
bbc.com “Hawking: Did He Change Views on Disability?“
blog.worldbank.org “The Missing Piece: Disability-Inclusive Education”
hani.co.kr “장애·비장애 학생 함께 배우면 ‘편견’이 ‘이해’로 바뀝니다”
unesco.org “A Momentum for Efforts on Inclusion in Education”
youtube.com ‘굴러라 구르님’ 유튜브 채널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