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차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사업(MAB) 국제조정이사회
국제사회가 합의한 전 지구적 목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는 이곳저곳에서 꽤 자주 들어본 느낌이 있지만, 딱히 그 내용이 무엇이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총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이루어진 SDGs는 방대한 영역을 다루는 전 지구적 목표인만큼 내용이 추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DGs의 핵심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류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모두의 실천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1987년에 발표한 보고서『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한 개념으로, 쉽게 말해 현재와 미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발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SDGs가 다루는 영역만큼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답변이 가능하다. 언뜻 환경과 성장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녹색성장(green growth)과 같은 개념이 떠오르지만, 이러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조화로운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제시한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한 가지 제안이 바로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이다.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이 획기적인 이유는 바로 인간과 자연 간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추상적인 SDGs의 기본이념을 내세우면서도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꽤 현실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를 대상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육상, 연안 또는 해양 생태계’로, 법적으로 보호하는 ‘핵심구역’, 핵심구역을 둘러싸며 연구·교육·생태관광 등이 허용되는 ‘완충구역’, 그리고 농경지와 주거지로 이용되는 ‘협력구역’으로 구성된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이처럼 자연 보전과 인근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조화롭게 추구하도록 설계되었고, 보전과 발전 간 균형점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기 위한 연구·교육·모니터링 활동과 같은 지원책도 함께 제시하고 있어 상당히 현실적인 SDGs의 실천 방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유네스코 국제회의가 바로 ‘인간과 생물권 사업(Man and the Biosphere, MAB) 국제조정이사회’다. 지난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제31차 유네스코 MAB 국제조정이사회’가 개최되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외교부, 환경부, MAB한국위원회, 국립공원공단, 지자체 관계자들이 함께 이사회 회의에 참가했다.
이번 이사회에서 한국의 생물권보전지역 2곳(연천 임진강, 강원 생태평화)이 새로 지정되었고, 제주도 생물권보전지역은 그 영역을 제주도 전역으로 넓혀 확대 지정되어 우리나라는 총 8곳의 생물권보전지역을 보유하게 되었다.1) 이번 이사회에서 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처음으로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받은 노르웨이와 에스와티니를 포함하여 전 세계 총 18곳이다. 생물권보전지역 지정뿐만 아니라, 지정 이후 실제로 생물권보전지역이 원래 취지에 맞게 효율적으로 관리·운영되도록 장려하기 위한 ‘우수화 절차’(process of excellence)에 대한 협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생물권보전지역은 ‘보전, 발전, 지원’의 3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용도구역을 설정하여야 하는데,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생물권보전지역이 우수화 절차의 일환으로 스스로 지정을 철회하는 사례도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 생물권보전지역의 성공적 운영사례를 전해 듣고, 새롭게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받은 각국 대표단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MAB 사업이 실제로 인간과 자연 간 지속가능한 공존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더 큰 기대를 갖게 되었다. 특히, 이번 이사회 기간에 우리나라와 유네스코는 공동으로 ‘생물권보전지역과 평화 워크숍’, ‘한국의 생물권보전지역 사진전’, 오찬 리셉션 등의 부대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더 기쁜 마음으로 한국의 DMZ 인근의 ‘연천 임진강’과 ‘강원 생태평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축하할 수 있었다.
‘자연 보호 그 이상’을 추구하는 생물권보전지역을 통해 생태계 보전과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이 조화롭게 실현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 간 평화라는 보다 야심찬 목적까지 달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백영연 과학청년팀 전문관
1) 1982년 설악산이 처음으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제주도(2002), 신안 다도해(2009), 광릉숲(2010), 고창(2013), 순천(2018), 연천 임진강(2019), 강원 생태평화(2019) 등 총 8곳의 생물권보전지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