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내 한국의 비전, 젊은 세대가 찾아주길 바랍니다”
작년 11월 이병현 주 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사무총장 및 총회 의장과 더불어 유네스코 내 3대 요직으로 꼽히는 자리에 한국인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월 10일, 바쁜 일정 중에 한국을 잠시 찾은 이 대사를 <유네스코뉴스>가 만나보았다.
“왜 유네스코가 아니면 안 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몇 년 간 유네스코의 핵심 의제는 단연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90년대 초부터 개혁은 유네스코를 포함한 국제기구 전체의 이슈였습니다. 새 지도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을 천명했음에도 쉽게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회원국으로부터 분담금을 받아 조직을 운영하는 유네스코 사무국이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무국으로서는 우선 조직의 인원을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부터 단행해 왔지만, 저는 조직이 지금보다도 더 간소화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정비와 더불어 유네스코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개혁도 필요합니다. 유네스코는 세계평화라는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규범 설정(norm setting)이나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 같은 유네스코의 전통적인 기능만으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원조 사업 같이 유네스코가 특히 잘할 수 있는 ‘비교우위 분야’를 찾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략적 변혁을 통해 유네스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일 잘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서 ‘왜 유네스코가 아니면 안 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유네스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유네스코 내에서 갖는 위상이나 역할도 많이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유네스코 내에서 어떤 전략과 비전을 갖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많은 회원국들은 유네스코를 활용하고 유네스코에서 국익을 반영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이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떠난 자리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공여국으로 올라서며 패권을 노리고 있고, 이탈리아는 문화 분야에서, 일본은 지속가능발전교육 분야에서 각각 영향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 못지않게 유네스코에 많은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고 활동도 많이 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분명한 ‘색깔’은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유네스코 내에서 매력적인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선진국처럼 패권을 추구한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롭고, 유네스코로부터 지원 받은 교과서로 공부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모범적인 역사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내에서 한국이 제안하면 회원국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이러한 위치를 활용하여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직업기술교육이든 세계시민교육이든,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한국의 전문 분야’를 찾아야 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젊은 직원들이 이를 위한 구체적인 해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좀 더 큰 문제의식을 갖고 기발한 답안지를 내놓으시기를 기대합니다.
작년 말부터 집행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해 오고 계십니다. 한국의 첫 집행이사국 의장 수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집행이사회 의장직이 유네스코가 움직이는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정보를 얻는 데 유리한 자리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유네스코 내에서는 주요 정보가 모두 집행이사회 의장을 거쳐 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네스코 사무총장 등 유네스코 고위 간부와의 교류도 빈번하고 주요 사안에 대한 현황 보고를 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러한 자리를 맡게 되면서 한국이 유네스코라는 외교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집행이사회 의장이라는 직책은 중립적 자세를 지켜야 할 자리이겠지만, 동시에 ‘한국 대표’로서 임무의 무게도 크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6월 27일에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하시마, 일명 ‘군함도’가 포함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후속 조치 이행과 관련된 결정문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워낙 뜨거운 이슈였던 만큼 회의 전에 저는 저대로 걱정을 많이 했고, 일본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저는 집행이사회 의장이자 대한민국 대사로서 우리 입장이 반영된 결의안을 회원국 간 컨센서스로 채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21개 위원국 모두의 지지를 얻어 조선인 강제 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릴 것을 일본에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되었습니다. ‘방어’에만 급급했던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요. 아울러,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사찰 7개를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도 집행이사회 의장이라는 프리미엄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평화를 대표하는 기구인 유네스코가 남북 평화 정착에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정치적 분야를 다루는 유네스코가 북한과 좀 더 유연하게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여전히 유엔의 제재 대상국인 상황에서 섣부른 예상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북한이 관심이 많은 생물권보전지역이나 세계유산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고 도움을 주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안에서 북한과 협력을 시작한다면 남북한 두 나라만의 관계를 넘어서 다른 많은 회원국들이 참여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