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 후기
필자는 9월 10일부터 5일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25차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International Bioethics Committee, IBC) 회의에 참석했다. 1993년에 출발한 IBC는 의생명과학이 인류 사회에 가져오는 문제점과 함의를 국제적인 관점에서 다학제적이고 다문화적으로 논의하고, 권고 및 제안을 만들어 사무총장에게 제출하는 국제적인 포럼이다. IBC는 36명의 생명윤리 관련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자는 3년 전부터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이번 회의 기간에는 이틀에 걸쳐 18명의 과학기술 윤리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World Commission on the Ethics of Scientific Knowledge and Technology, COMEST)와 36개국의 정부 대표로 이루어진 정부간 생명윤리위원회(Intergovernmental Bioethics Committee, IGBC)와 IBC가 함께 하는 공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서는 2018-2019년 COMEST가 작업하고 있는 주제로서 물 윤리(water ethics)와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2017년 COMEST가 발표한 로봇윤리(robot ethics)와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인 만큼, 활발한 토론이 펼쳐졌다.
IBC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두 주제인 인공생식 기술이 부모되기(parenthood)에 미치는 영향과 건강에서의 개인의 책임에 대해 발표했다. 인공생식세포, 대리모, 인공자궁 등 인공생식기술이 인류와 사회에 미칠 영향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보고서 초안에 대해서 여러 국가의 IGBC 대표들이 발언했고, 참가국에 따라 부모됨, 자식, 가족 등에 대해 상당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기에 활발한 논쟁도 있었다.
IBC 25주년과 IGBC와 COMEST 20주년을 맞이하여 ‘인공 지능: 복잡성과 우리 사회의 영향에 대한 반성’과 ‘유전자 편집: 왜 윤리가 중요한가?’를 주제로 라운드테이블 세션도 진행되었다. 인공지능과 유전자 편집은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일반 대중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가하여 이로 인한 변화와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공개 모임으로 진행이 되었다. 해당 주제에 대한 대중의 큰 관심을 반영하듯, 커다란 홀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 중 하나로서 인공지능 기술이 제기한 윤리적 의미와 물음에 대해 토론했다. 발표자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인류의 불안감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인공지능이 향후 인권과 가치의 측면에서 인류에게 어떻게 봉사하도록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인간의 책임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안전성, 접근성, 보안, 인간의 창의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윤리적인 인공지능을 설계하기 위한 과제들이 언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전 세계적 차원에서 윤리적 관점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기술을 직접 설계하고 다루는 공학자들과 기업에 대한 윤리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최신의 유전자 편집 기술이 이미 업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현재 식품 생산 산업을 포함한 동물 및 식물 관련 업계는 생물체의 특정 유전자 서열을 쉽고 빠르고 비싸지 않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 편집은 인간, 동물, 식물,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배아나 생식세포를 유전자 편집으로 변형할 경우, 그 영향은 이후 세대에 영구적으로 남을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한 안전성의 문제, 미래 세대와 인류 환경에 미치는 영향, 특허 문제, 정의와 형평 문제 등이 제기되었으며, 참석자들은 이러한 윤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글로벌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생명윤리를 다루는 IBC와 과학윤리를 다루는 COMEST, 정부간위원회인 IGBC 세 위원회가 향후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그간 IBC와 COMEST가 각자 주제를 선정하고 독자적으로 작업을 진행해왔으나, 인공지능과 로봇, 기후문제 등의 주제들은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므로 앞으로 각 위원회 간 교류와 협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회의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은 초반에 국제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이 언급하였듯, 의학과 과학기술에 대하여 글로벌 시민 사회의 참여와 공동 창조(co-creation)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의학과 과학과 기술은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글로벌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과학자들과 함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올해 전체 회의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김옥주 서울대학교 인문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