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중동의 작은 섬나라인 바레인의 마나마에서 6월 24일부터 7월 4일까지 10일간 개최되었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4년간 세계유산위원국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고, 각 세계유산이 지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보존하기 위해 당사국들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을 결정한 바 있다.
지난해까지 위원국으로서 누렸던 명예와 영광은 잠시 뒤로 한 채, 필자는 올해 처음 옵저버 국가 대표단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감회가 남달랐다. 위원회라는 무대에서 ‘액터’(actor)가 아닌 ‘관람객’으로 내려와 회의에 참관한다는 홀가분함 한편으로, 위원국 못지않은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바로 지난 2015년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론 끝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후속조치 이행 상황을 처음 검토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사무국의 노력과 한일 협력의 정신이 합쳐져 일본 근대산업유산 결정문은 논의 없이 컨센서스로 채택하기로 사전에 합의가 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일본 근대산업유산에 ‘진실’을 담아라
일본은 근대산업유산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를 작년 11월 30일에 제출했다. 실망스럽게도 보고서에는 ‘한국인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강제노역희생자를 위해 홍보관을 설립하겠다던 계획도 변질되어 있었다. 2015년에 채택된 결정문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몇 달 뒤에는 해당 이행보고서에 대한 자문기구의 검토의견초안을 어렵게 입수했는데, 그 내용 역시 ‘재앙’이라 해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 ‘유산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석 전략을 마련하라’는 제39차 위원회의 권고를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일본에게 ‘잘 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 내에 일본인이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을 새삼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일본의 이행보고서가 검토되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공개되는 자문기구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 자문기구 관계자를 만나 일일이 보고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결정문에 담길 내용의 수정을 설득해야 했다. 만에 하나 권고안에 우리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세계유산센터 관계자는 물론 21개 세계유산위원국을 모두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지지 약속도 받아야 했다. 이후 수 개월간 유네스코 한국대표부는 물론 외교부와 21개 위원국 주재 공관은 우리 입장을 담은 구상서(non-paper)를 모든 관련 기관에 전달하고 지지를 요청했다. 다행히 관계자들은 대부분 우리 입장에 우호적이었고, 이는 최종 문안 협상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며 컨센서스 문안을 도출해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권고안 초안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걷어내고, 홍보관 설립 등 남은 후속조치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한일 대화를 독려하는 내용도 추가되었다.
침묵 대신 약속을 듣기까지
마침내 완성된 결정문을 두고 바레인에서 마주한 일본은 컨센서스 결정문 채택과 관련하여 ‘발언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일본은 근대산업유산 등재를 승인한 제39차 결정문에 담긴 내용의 성실한 이행을 수차례 약속했음에도, 정작 이행 상황 검토 내용을 담은 결정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침묵하겠다는 태도였다. 이에 한일 양자 간, 또한 의장과 사무국이 함께하는 4자 간 긴급 회의가 현장에서 수차례 진행됐다.
일본 근대산업유산 의제 결정문이 채택되기로 한 6월 27일 오후 3시. 세계유산위원회의 셰이카 하야 알 칼리파 의장은 일본 근대산업유산 관련 결정문이 컨센서스로 채택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을 대표하여 한일 양국에 축하의 뜻을 전하고 동 건과 관련하여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을 독려했다. 이어서 우리 측이 대표 발언을 한 뒤 일본 대표는 2015년에 일본이 약속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차 확인했다.
그 순간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물론 결정문에 명시된 ‘대화’에 일본이 얼마나 성실하게 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강제노역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홍보관 설립이 일본 대표의 발언대로 성실히 지켜지기를!
또 하나의 쾌거, 세계유산이 된 한국의 산사
한편,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이 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당초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ICOMOS)로부터 ‘부분 등재’ 권고를 받았다. 7개의 사찰로 이루어진 연속유산 중 4개 사찰만 등재를 하고 나머지 3개 사찰은 제외하라는 것이었다. 해당 3개 사찰의 역사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유산이 되기에 규모가 작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2년 간 세계유산 등재에서 연속으로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다. 여기에는 외교력으로 등재를 밀어붙이기보다는 겸허한 자세로 자문기구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이번 산사의 경우는 좀 달랐다. 문화유산 자문기구가 제시한 3개 사찰 제외 논리가 너무 빈약했고, 그에 반해 우리가 준비한 논리는 위원국들의 지지를 얻어낼 만큼 탄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부닥쳐 보기로 했고, 바레인 회의 개최 전부터 파리에서 21개 위원국 대표부를 접촉해 내용을 설명했다. 반응이 나쁘진 않았지만, 등재 지지 결정의 열쇠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은 파리가 아닌 각국 수도에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지지표’를 계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현장에서 21개 위원국을 다시 접촉하여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6월 25일 회의가 시작된 직후부터 우리 대표단은 각자 맡은 위원국을 설득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한 경험이 있거나 친한 성향의 수석대표들을 집중 공략하여 지지를 얻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위원국들의 지지를 견인하는 전략을 짰다. 외교부, 문화재청, 유네스코 대표부로 구성된 대표단이 하나가 되어 ‘등재’라는 간절한 목표를 갖고 진정성 있게 다가간 것이 먹힌 것일까? 지지 서명을 하겠다는 국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산사’ 등재 건이 검토되기 하루 전까지 19개 위원국으로부터 서면 혹은 구두로 지지 의사를 확인 받았다. 이 정도로도 등재는 확실했지만, 우리는 끝까지 찬성 의사를 표하지 않은 노르웨이와 호주의 의견이 궁금했다. 결국 우리 대표단의 접촉 시도를 자꾸만 피하던 이들 국가는 검토 당일 아침 우리를 면담했고, 이 자리에서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21개국 전원 만장일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승리였다.
‘산사’ 등재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자 스페인을 필두로 20개 국가의 지지 발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저 지지를 위한 지지가 아닌, ‘산사’의 가치와 의미를 면밀하게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도 미처 알지 못한 의미를 발굴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아 벅찬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2015년 이후 처음 등재된 우리의 세계유산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이 갑절이 되는 느낌이었다.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준비하면서 때로는 낙심하고 막막한 순간도 있었지만, 하나 하나 배우면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 과정을 세심하게 리드해 주신 이병현 대사님과 ‘퍼펙트’한 팀워크로 두 개의 중요한 미션을 잘 해낸 정부 대표단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임소연 주 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서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