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타임머신 / 그땐 이런 일도] 한위 60년 뒤안길 들여다보기 I
일본 심장부에서 역사 왜곡에 첫 ‘회초리’
올해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설립된 지 60돌을 맞는 해이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국민적 여망을 안고 탄생한 유네스코한위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학·문화 활동을 펼치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
독도 영유권, 위안부 문제 등 최근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해 있지만, 사실 일본의 ‘역사 일그러뜨리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51년 제1차 한·일회담 직전에는 재일 한국인을 ‘뱃속의 벌레’로 비유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망언이 터져 나왔다. 1953년 10월 한일회담 일본대표인 구보타 간이치로는 심각한 역사왜곡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일본의 36년 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라는 그의 발언으로 한일회담은 이후 4년간 결렬되고 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56년 2월 말 일본 도쿄에서 유네스코 아시아지역회의가 열렸다.
당시 아시아지역회의는 루터 H. 에반스 유네스코 본부 사무총장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세계 각국의 관심이 쏠린 국제회의였다. 김호직 박사(유네스코한위 부위원장)를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는 이 기간에 4개의 결의안을 제출해 모두 통과시키는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국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중 두 가지는 사실상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비합법적으로 획득한 다른 민족 문화재의 자발적 반환’, ‘다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오해케 할 우려가 있는 왜곡된 역사적 사실의 시정’이 바로 그 결의안. 유네스코한위 대표단이 일본의 심장부에서 일제의 과오에 대해 ‘회초리’를 들었던 셈이다. 특히 당시 결의안은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시정을 결의한 첫 사례로 거론되며 국내외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에선 ‘역사왜곡에 대한 시정 결의’를 아시아 지역회의가 이룩한 가장 현저한 성과로 꼽기도 했다.
이후에도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위의 ‘견제’는 계속됐다. 1960년 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아시아국제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대표는 일본의 역사서적과 역사교육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아 역사에 관한 저술과 교육에서 여러 가지 왜곡을 없애기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공식 제의한 것. 한국 대표의 제안은 일제에 수탈을 당했던 아시아 국가대표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유네스코한위의 역할은 일본의 고질적인 역사 왜곡을 견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5월에는 서독에 있는 국제교과서연구소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역사 교육 교과과정에 대한 자료수집에 나섰다. 훗날 이 자료는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출판되어 유럽 및 미국의 역사 담당 교사들에게 제공된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에 한국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작은 첫 걸음이었다.
‘국력이 역사’인 시대 그래서 더 절실한 유네스코 정신 오래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표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수차례 문제를 제기한 일은 민족정서를 떠나 유네스코 정신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유네스코는 참혹한 상처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인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탄생한 국제기구이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유네스코 헌장의 이 문구에는 유네스코의 정신이 집약돼 있다. 유네스코는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가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하고, 여기서 비롯된 갈등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지속적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 평등, 상호존중의 정신 아래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활을 알아가며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고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객관적 진리와 진실이 구속받지 않고 탐구되며, 사상과 지식이 자유로이 교류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교육·과학·문화 활동을 통해 국제평화와 인류공동의 복리를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첫걸음이다. 반면 역사왜곡은 서로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키울 뿐이다. 안타깝게도 근래 들어 ‘국력이 역사인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이웃 국가의 역사를 중화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가의 힘과 세력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가 올바른 역사일 수 없다. 서로의 역사를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유네스코 정신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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