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차 유네스코 총회
2023년 11월 7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제42차 유네스코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2년마다 전체 회원국이 참여해 열리는 유네스코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주요 위원회 이사국 선출, 예산안 등을 논의·채택한다. 이번 총회의 주요 내용과 함께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유네스코 핵심 사업 강화하는 사업 및 예산안 채택
이번 총회에서 회원국과 유네스코 사무국은 미국의 재가입으로 만성적인 유네스코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환영하면서, 그간 예산 및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필수 사업 강화에 기대를 걸었다. 아프리카, 성평등, SDG 목표 달성과 지역사무소 강화 등 유네스코의 가시성 제고에 기여할 42C/5 사업안 마련과 예산 증액에 특히 관심이 높았다. 그간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했던 유네스코 사무국은 이번에 일부 증액된 예산안을 마련했고, 총회에서는 총회 직전 집행이사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정규예산 6억8500만 달러와 비정규예산 11억1900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최종 확정했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네스코의 대응
회원국들은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에 대응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아랍지역 회원국 및 이에 동조하는 회원국들은 인권선언과 가자지역의 문화재 보호, 민간인에 대한 공격 중지 및 교육권 보장, 언론인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네스코의 활동 분야 내 현황 파악과 긴급지원을 요청하는 결정문 초안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규탄하는 내용을 추가한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되었고, 호명투표 끝에 결정문 초안이 채택됐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내에서의 유네스코 활동을 담은 결정문도 채택됐다. 유엔은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으며, 유네스코는 이 결의안에 준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응을 해 왔다. 이번 결정문에는 교육기관과 생물권보전지역, 문화유산과 언론인 등 유네스코의 사업분야 내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의 광범위한 피해를 모니터링하고, 필요에 따라 긴급 대응과 중장기적 복원을 지원하는 계획을 담았다. 스웨덴, 독일, 미국,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수 국가가 지지 의사를 표명했으며, 중국과 벨라루스 등 은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유네스코의 정치화와 의견 양극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인권에 기반한 교육의 미래와 세계시민교육에 주목
지구촌 곳곳에서 고조되는 분쟁과 갈등, 팬데믹의 지속적인 영향 및 기후위기라는 과제 앞에서 유네스코는 인권에 기반한 교육 분야 접근법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오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유지됐으며, 회원국들은 재정에 숨통이 트인 유네스코가 교육2030 의제 이행에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으리라는 데 기대를 표하며 균등한 교육기회를 위한 교육 시스템 변혁(취약계층 및 재난후 상황 집중)과 SDG4 조정에서 유네스코의 리더십 강화를 주문했다. 2년간의 협의과정을 거쳐 다차원적이며 포용적인 접근법을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1974 국제이해교육 권고」 개정안도 회원국들의 환영 속에 채택됐다(이번 호 10-11페이지 위원칼럼 참조). 이번 권고 이행을 위해 세계시민교육상을 제정하고 1백만 달러를 기여할 계획을 밝힌 한국은 현장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양질의 교육과 미래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 중국이 상하이에 설립할 것을 제안한 카테고리1 센터인 국제STEM교육연구소(IISTEM) 설립과 관련된 결정문도 채택했다. 설립 논의 초기에 제기되었던 기능 중첩, 이사회 구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검토 과정을 보고한 유네스코 사무국은 ‘카테고리1 기관은 위성기관이 아니라 유네스코 사무국의 일원으로 부재한 STEM 교육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활동을 보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회원국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았다. 회원국들의 질문과 논의 내용을 볼 때, 해당 이슈는 향후 출범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과학과 과학의 자유 강조
자연과학 및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회원국들은 지속가능목표 달성에 있어 과학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과학분야의 협력과 재해 대응 및 역량 강화, 인종주의와 차별 철폐, 인권 증진, 과학 및 과학연구자 권고 이행 및 과학자의 안전과 자유, AI 윤리와 생명윤리를 강조했다.
윤리 부문과 관련해 회원국들은 사무국이 이번 총회에 보고한 ‘신경기술윤리 규범 제정 타당성 연구’에 대해 신경과학기술이 인권과 자기정체성 등에 미치는 영향과 혜택 등을 강조하면서 권고 제정을 강력히 지지했다.
유네스코 예산이 증액되면서 사무국은 소도서개도국 지원 사업 예산을 증액했고, 회원국들은 이를 환영하면서 소도서개도국 운영전략을 채택했다. 회원국들은 향후 2년 간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예산이 증액된다는 내용에도 적극 지지를 표명했으며, 일부 회원국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유엔 해양과학 10개년을 주도한 IOC의 활동에 사의를 표하면서 기후변화와 쓰나미 대응, 연구 및 역량강화 등에 지속적으로 활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17년 개정된 「과학 및 과학연구자 권고」의 이행 강화에도 회원국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고, 과학의 자유와 과학자의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용과 성평등에 기여하는 스포츠의 가치와 동 분야에서의 유네스코 활동에 공감하는 회원국들의 지지에 힘입어 폴란드와 프랑스 등이 공동으로 제안한 의제인 ‘스포츠, 교육, 발전을 통한 유네스코 가치의 촉매자로서 올림픽과 패럴림픽 운동’도 채택됐다.
유산 보호 및 무형유산에 대한 관심 재확인
총회 기간 중 문화 분과위원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과 관련한 사항을 집중 조명했다. 회원국들은 가자지구 내 유산 및 박물관 파괴, 이로 인한 소장품의 도난과 불법 유출입, 가자지구 교육 및 문화시설의 기능 마비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유네스코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어조의 결의안을 통해 이 문제에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활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회의에서는 이전에 비해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동체 사회양식과 문화다양성의 모체가 되는 무형유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해 회원국들은 10월 17일을 ‘세계 무형유산의 날’로 지정하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무형유산센터(CRESPIAL)를 유네스코 카테고리2기관으로 재인증했다. 아울러 문화다양성기금(IFCD)와의 기능 충돌로 실효성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었던 문화진흥기금(IFPC)이 이번 총회 결정을 통해 IFCD와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혼돈의 세상에서 더욱 중요성이 커진 정보·커뮤니케이션 활동
회원국들은 상호 분쟁과 혐오를 양산하는 허위정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통적으로 우려하면서, 유네스코가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 다양한 위협을 받고 있는 언론인 안전 보장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사무국이 준비한 2024-25년도 사업 및 예산에는 올바른 인터넷 문화 확산과 윤리적이고 인권에 기반한 AI기술을 정착시키는 데 청년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청년층 활동 지원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유네스코는 정보사회정상회의(WSIS)와 함께 공평한 디지털 미래 사회를 구축하는 데도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러시아는 오히려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거짓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으며 러시아 언론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가 심각하다는 주장을 펼쳐, 여타 회원국들과는 이 문제에 대해 확연히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의 성과와 향후 과제
이번 총회 기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집행이사회 및 세계유산위원회, MAB 국제조정이사회 등에서 이사국에 당선됨으로써 유네스코 네트워크 내에서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자외교’ 부문에서 더욱 심도 있는 논의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과제도 파악했다. 예를 들면, 대다수 회원국은 수석대표 발언을 통해 미국의 재가입,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사태 등을 언급하면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이를 자국이 내세우고자 하는 바를 위한 논리적 근거로 활용했다. 이는 단순히 최근 국제 정치 무대에서 약화된 ‘다자주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이것을 어떤 의미에서 수용하고 해석하고, 활용하면서 향후 능동적이고 선도적으로 유네스코 활동을 이끌어 갈지를 보다 깊이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유네스코의제정책센터, 국제협력사업실
새로 채택된 기념일과 기념해, 공식 언어
총회 등 유네스코의 주요 회의에서는 현재 6개 유엔 공식언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중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들 언어에 힌디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를 더해 9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으며, 이번 총회에서는 현재 약 2억 75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어를 10번째 유네스코 공식 언어로 채택했다.
다수의 세계 기념일과 기념해도 이번 총회에서 새로 채택됐다. 전 세계 도량형 표준을 규정한 미터협약이 체결된 날인 5월 20일이 ‘세계 측량학의 날’로,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 채택일인 10월 17일이 ‘세계 무형유산의 날’로 지정됐다. 교육격차 해소와 양질의 교육에 있어 디지털 학습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디지털 학습의 날’(3월 19일)과 ‘세계 코딩의 날’(10월 29일)도 새로 지정됐으며,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2025년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선포했다. 이밖에도 2024-2025년에 해당하는 기념해 53개가 여러 회원국들의 제안을 받아 채택됐으며, 여기에는 ‘칸트 탄생 300주년’,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등이 포함된다.
국가위 총회에서 존재감을 떨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42차 유네스코 총회 기간에는 제10차 국가위원회 총회도 열렸다. 유엔기구 중 유네스코만이 운영하고 있는 국가위원회 제도에 따라 각 회원국 내에서 유네스코의 가치를 확산하고 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 온 국가위원회들은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공통 사안을 논의하고 결속을 다졌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간 유네스코 내 논의에서 평가절하되기도 했던 국가위원회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노력이 특히 두드러졌다. 참가자들은 국가위원회 간 교류와 국가위원회와 유네스코 간의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다음 4개년(2026-2029) 계획에 국가위원회의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축할 것을 요청했으며, 사무국은 남은 2년간 다방면에서 소통하고 활동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 회의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글로벌 아프리카 및 성평등 우선전략’ 달성을 위한 국가위원회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위의 성공적인 활동 사례들을 소개했다. 한경구 한위 사무총장은 11월 9일에 열린 ‘글로벌 아프리카 우선전략’ 부대행사의 패널 토론에 참석해 아프리카 우선전략 사업과 국가위 연계 대표사례로 브릿지 사업을 발표했다. 또한 한위는 국가위원회 중에서는 유일하게 10일 오후 단독세션을 마련해 ▲브릿지 사업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브로슈어 시리즈 ▲국가위원회 직원교류 ▲글로벌 청년포럼 ▲교육의미래 글로벌 캠페인(#고잉투게더) ▲2024년 예정된 교육의미래 국제 포럼 등 한위 사업을 회원국에게 소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50여 명의 국가 대표단 및 국가위원회 직원들은 브릿지 사업 참여 방안(우간다), 한위의 사업 내 청년 참여 증진 전략(캐나다), 시민사회와의 협력 방안(알제리)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표했고, 유네스코 본부 아프리카 및 대외협력부서의 모함메드 엘파나 와니 국장은 한위에 아프리카뿐 아니라 캐리비안 지역에서의 사업 확장을 요청하는 한편, 국가위원회 직원 교류 시 본부를 통한 홍보와 연계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위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교육사무총장보를 포함한 유네스코 본부와 지역사무소, 국가위원회 관계자들과 20여 차례 면담과 업무 협의를 가지면서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육, 문화, ICT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한위의 국제협력 및 개발협력 사업의 전문성과 유네스코 전략과의 정합성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한위의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에 대해서는 다양한 협력 제안이 있었고, 가나와 말라위는 개최 15주년을 기념해 동 워크숍의 내년 아프리카 개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