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위원회 창립 60주년에 부쳐]
“이제는 우리가 지구촌 이웃의 유네스코가 돼야 할 때입니다”
2014년 1월 30일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창립된 지 꼭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8·15 광복 이후 3년 만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수탈의 역사가 뿌리내렸던 한반도에는 국가 발전의 토대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가운데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은 새로운 국가건설을 꿈꾸던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어서 유네스코에 가입하는 것도 무척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논란과 표결 끝에 1950년 6월 14일 제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불과 2주일도 못되어 6·25 전쟁이 일어나국가위원회 설립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멈춘 1954년 1월 30일에야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써 국민의 여망 속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온 국민이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을 때, 유네스코는 한국위원회 설치 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초등학교 교과서 인쇄공장 건립과 그 시설을 위한 긴급원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최초의 유네스코 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유네스코에서 인쇄기계의 지원을 받아, 국정교과서 인쇄전속공장이 새로 생겼는 바, 이 책은 그 공장에서 박은 것이다’는 문구가 실렸고, 유네스코는 교과서를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출발은 전쟁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유네스코 활동의 시작과 정착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평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유네스코의 이념을 절실히 이해하게 함으로써오히려 유네스코 활동이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지나온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위원회는 지난 60년 동안 선도적인 교육 활동을 통해 국가 재건에 디딤돌을 놓고, 다양한 과학·문화 활동으로 국가 성장에 기여해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명실상부한 국제사회 주도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199개 유네스코 회원국 가운데 13번째로 많은 재정분담금, OECD 개발원조 위원회 가입, 유엔 사무총장 배출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주소입니다. 한때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국가위원회였던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이제는 전 세계 199개 유네스코 회원국 중 가장 큰 규모의 조직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국가위원회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위원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으로 시대적 소명에 답하고자 합니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국민과 함께 만드는 평화, 배움으로 꿈을 이루는 지구촌”이라는 비전을 선포합니다. 어린 꿈나무들로부터 학생과 교사,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세계를 무대로 유네스코 활동의 주인공이 되는 새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중점적으로 추구하려고 합니다.
첫째, 지구촌 이웃나라들을 ‘교육’ 나눔 활동으로 도우려 합니다.
우리가 전쟁의 폐허 속에 있을 때, 미래를 바꾼 것은 ‘빵’이 아니라 유네스코가 지원해준 ‘책’이었습니다. 빵과 의약품은 굶주림과 질병을 해결할 수 있지만 빈곤의 악순환까지 끊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가난한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의 씨앗입니다. 그 시절 유네스코가 우리를 도왔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어려운 처지의 지구촌 이웃나라들을 교육으로 도와야 할 때입니다.
둘째, 미래 세대를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일에 적극 힘쓰겠습니다.
미래세대는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오지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청년으로부터 제2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꿈꾸는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꿈나무들이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자라나도록 든든한 디딤돌을 놓겠습니다. 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 청소년 세계시민프로젝트, 동북아 청년역사대화, 국제자원 활동 등 한국위원회의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청소년들이 유네스코의 평화이념과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셋째,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는 동아시아 평화의 핵심입니다. 과거 북한의 교과서 발간을 지원해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텄던 것처럼 남북한이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화합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유네스코는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갈등을 관용과 대화의 정신으로 해소해 나가는 데 적절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치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도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남북한 화해 협력의 물꼬가 다시 트이는 상황을 대비해 교육, 과학, 문화, 개발협력, 상호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위가 남북화해 증진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활동과 사업을 면밀히 준비할 것입니다.
유네스코 가족 및 국민 여러분!
이 같은 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입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노력에 국민 여러분의 참여와 성원이 더해질 때 새로운 비전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한정된 예산에만 의존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과 함께하는 후원개발을 시작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정성과 뜻이 담긴 기금으로 지구촌 이웃을 돕고 우리의 꿈나무를 키우며, 한반도의 평화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주는 일을 하려 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발적인 후원을 통해서 전무후무한 새 역사를 써 나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국민후원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유네스코와 함께 저개발국 지원에 나선다면 유네스코 재정위기 극복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모범사례가 될 것입니다.
한국위원회의 후원개발 사업은 다른 구호개발단체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위원회만의 특화된 활동, 다른 구호개발단체들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연대 활동, 특히 국제개발협력을 유네스코적인 가치와 방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선도적인 방식으로 전개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변화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청마의 해를 맞아,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되겠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유네스코입니다.
감사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민 동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