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 서신
유네스코가 민간부문과 관계 맺기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민간부문(private sector)은 공공부문(public sector)을 제외한 모든 파트너들을 말하며, 주로 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내세운 이 키워드는 사실 새롭지는 않다. 기업은 유엔의 탄생부터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70년전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같은 대기업은 유엔의 창설을 지지했고, 40년 전 유엔은 기업이 따라야 할 행동강령을 제시하기도 했다. 20년 전 유엔은 기업을 유엔의 활동으로 적극 끌어들인 ‘유엔글 로벌콤팩트 운동’을 시작, 현재 160개국의 9500개가 넘는 기업이 인권, 노동, 환경 분야에서 유엔의 10대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다. 유네스코도 2020년부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민간 협력을 도모하기 시작했고, 매년 20여 건의 크고 작은 파트너십이 유네스코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의 키 플레이어, 기업
지속가능발전이 글로벌 아젠다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유엔과 기업의 만남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난 3월 글로벌콤팩트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유엔기구 대표 33명 중 91%가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지속가능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고, 1000명의 기업 CEO 중 87%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기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빈곤, 식량, 물, 에너지, 인프라, 기후변화, 해양개발 등 거의 대부분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기업의 영역과 겹쳐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들의 삶에 현실적 파워를 행사하는 기업이야말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룹일 수 있다. 그럼에도 유엔과 기업과의 협력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유네스코가 관장하는 교육의 경우, 민간부문의 교육 지원액은 전체 교육원조 규모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접점으로 유엔(유네스코)과 기업이 더 전략적으로 친해져야 하는 이유다.
기부자에서 파트너로
기업을 단순히 기부자로만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달라지고 있다. ‘유네스코의 민간부문 파트너십 전략 문서’(2012)는 유네스코와 기업의 파트너십을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전략적 관계로 정의한다. 기술, 노하우, 상품, 서비스 등에서 기업이 가진 역량이 유네스코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기업은 이를 통해 자사의 운영에 유네스코의 가치를 더할 수 있다.
로레알, 마이크로소프트, 디스커버리, HP, 쉘그룹, P&G, 인텔, 구글, 삼성전자, CJ그룹, 포스코⋯. 이들은 유네스코와 파트너십을 맺었거나 맺고 있는 기업 들이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은 20년 동안 유네스코의 여성생명과학상을 지원해 왔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 사업을 유네스코와 펼쳤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위험에 처한 언어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했고, 쉘그룹은 세계유산 관리자들에게 유적지 관리를 위한 비즈니스 기술을 전수했다. 우리 기업의 참여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BBC 방송과 함께 유네스코 무형유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CJ그룹은 유네스코와 파트너십을 맺어 개도국 소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걸스 에듀케이션’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윈-윈 파트너십을 위하여
유네스코와 비즈니스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당한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기업은 유네스코가 지닌 숭고한 사명, 강력한 브랜드, 견고한 신뢰성, 방대한 네트워크가 주는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 유네스코는 기업의 자금, 기술, 영향력, 추진력이라는 자산을 빌려 유네스코 사업을 더 크고 넓게 해나갈 수 있다.
유네스코가 민간부문과의 적극적 관계 맺기를 선언한 만큼, 까다로운 고객인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또한 필수다. 무엇보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혁신적으로 사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대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 기업의 언어로 유네스코를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있어야 한다. 새로운 파트너에게 다가가기 전에 먼저, 유네스코에게 부족한 이 부분을 채우기 위한 충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