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만 되면 제주도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참가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석학들의 방문으로 들썩인다. 13회차를 맞은 제주포럼의 올해 주제는 ‘아시아의 평화 재정립’이었다.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호세 라모스 오르타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럼에 초청되어 아시아의 평화가 지속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제주포럼 출장이 결정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단연 ‘정우성 씨도 만나고 오는 거냐’였다. 하지만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직원으로서, 우리는 작년 겨울 취임해 처음 한국을 찾은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기조연설이 더 궁금했다. (정말이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제주포럼 특별 세션 연설을 하며 제주도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박상미 한국외대 교수의 사회로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대담을 진행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세션 내내 아줄레 사무총장이 던진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세우는 유네스코의 사명은, 국경통제와 자국 우선주의가 심해지고 국경을 초월한 문제들이 산적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는 것이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특히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에 따른 기술의 윤리의식, 기후변화, 그리고 인구학적 변화를 지적하며, 유네스코의 교육 및 문화 분야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세계시민을 길러내는 유연한 교육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각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지속해서 늘릴 것을 요청했다. 한편, 우리 교육부의 아프리카 교육 지원 사업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에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아줄레 사무총장이 문화 분야에서 강조한 부분은 역사와 유산의 보존이다. 제주포럼 며칠 전에 개막한 세계유산위원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청년전문가포럼에서도 유산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자연유산 보존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줄레 사무총장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 다양성을 중시하고 사회의 포용력을 높이는 것이 폭력적 극단주의에 맞서는 방안임을 설파하며, 유네스코 역시 이를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성공적으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유네스코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과 함께 연설을 끝맺었다.
제주도는 세계유산, 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람사르 습지 등 모두 4개의 유네스코 지정 구역을 보유하고 있어 유네스코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이에 해당 지역 제주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나섰다. 대담 중 원희룡 지사는 최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해녀 문화를 언급하며 청중석의 해녀 분들을 직접 소개했고, 아줄레 사무총장은 해녀 문화와 같은 전통이 제주도의 지속가능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문화라고 화답했다.
특별 세션이 끝난 뒤 아줄레 사무총장은 국내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이하 ‘카2센터’) 기관장들과도 면담했다. 유네스코 카2센터는 유네스코 소속은 아니지만 유네스코 주요 사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국내외 활동을 펼치는 기관이다. 현재 한국에는 4개 기관이 활발히 활동 중이고, 작년에 설립 승인을 받은 국제기록유산센터가 개관을 준비 중이다. 카2센터와의 면담에서 아줄레 사무총장은 각 센터장이 직접 진행한 센터 별 소개를 경청했으며, 센터 간 협력 현황 등의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불과 이틀 전 중동의 바레인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개막식을 소화했고, 제주포럼이 끝난 당일 저녁에 다시 출국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줄레 사무총장을 보면서, 유네스코 정도의 국제기구 수장이 되려면 ‘강철 체력’이 우선적인 조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줄레 사무총장은 제주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기조연설에 담았던 약속과 다짐에 대한 실현 의지를 보여주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이번 제주포럼에서 ‘급변하는 세계와 한-유네스코 협력 비전’이라는 세션을 개최하며 아줄레 총장의 의지가 실현되는 데 한국이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더불어 ‘한국의 유네스코협력 비전 연구’의 하나로 진행된 본 세션을 통해 유네스코만의 비교우위를 발굴하고, 결코 적지 않은 한국의 대(對)유네스코 재정적 기여의 가시성을 높일 방법도 논의해 보았다. 아줄레 총장의 기조연설과 대담, 그리고 위 세션을 통해 앞으로 한국과 유네스코 간 협력이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박다혜 국제협력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