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기구 하나 바꿨을 뿐인데, 공기가 달라졌어요”
아시아 ‘기후변화 대응’ 이끄는 ‘RICE’ 프로젝트 지구촌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등 심각한 재해를 입으면서도 무지와 가난 때문에 거의 대처하지 못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Asian RICE Project)가 지구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현상에 취약한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스스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 및 기술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올해부터 한위는 이 프로젝트를 ‘유네스코 브릿지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로 개편, 시행할 예정이다. 그간 펼쳐온 아시아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 중 우수 사례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RICE란? : ‘Regional Initiative for Climate change Education’의 약자로 ‘지역주도적 기후 변화 교육’을 의미합니다. |

방글라데시 북쪽 인도, 네팔 국경지대와 가까운 타쿠르가온은 2006년 이상 기후현상으로 인해 4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던 곳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아시아지역 기후변화 피해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 주민들도 지역 사회의 갑작스런 혹한, 혹서, 불규칙한 강우량 변동이 기후변화로 인한 것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만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설립된 셰토나 지역개발협회에서는 지역의 거점 학교인 지니데비 아그왈 여자대학과 함께 지역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지난 2012년부터 구상해왔다. 그것이 바로 ‘깨끗한 공기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지니데비 아그왈 여자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아프로자 베검(Afroza Begum·34)은 셰토나 지역개발협회와 함께 기후변화 관련 인식개선 캠페인을 고안해낸 주인공이다. 그는 우선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배출되는 무분별한 이산화탄소 및 온실가스의 양을 줄이는 데 인식개선 활동의 초점을 맞췄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나무 땔감을 이용한 조리용 화덕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나무 땔감 화덕은 열효율도 높지 않고,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와 기타 유독가스가 함께 배출돼 인간과 지구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역의 무분별한 벌목 활동도 막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리용 화덕을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며 열효율도 높은 새로운 기구로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베검 씨는 일부 개도국에서 시범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개량화덕(ICS:Improved Cook Stove)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를 지역 사회에 도입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이를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다. 개량화덕 하나당 제작 단가는 많이 들지 않지만, 이를 지역사회 전체에 보급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했던 것.
이에 베검 씨는 셰토나 지역개발협회와 힘을 합쳐 기후변화 교육을 위한 지역주민 세미나와 지역 장터를 열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개량화덕의 소개 및 보급에 나섰다. 주민들에게 개량화덕을 직접 제작하는 방법, 개량화덕 사용의 장점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인식을 바꿔나갔던 것. 이와 함께 그동안 벌목으로 인해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삼림지역에 주민과 함께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물론 지역사회의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땔감용 나무 벌목, 재래식 화덕 등 주민에게 익숙한 생활방식을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역 주민들은 기후변화가 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며,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바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지원으로 처음 시작하게 된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먼저 그와 지역개발협회 구성원 10명이 함께 현장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깨끗한 공기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어 지니데비 아그왈 여자대학 소속 학생 및 교원 175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고, 그후 지역 주민 대표 50여 명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점차 규모가 커지게 됐다.
그간의 노력 덕분에 이 프로젝트는 2013년 방글라데시를 대표하는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 우수 사례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다. 베검 씨는 앞으로도 계속 지역 차원의 기후변화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도 활동을 통해 개량화덕이 왜 기후변화 대응에 유리한지를 주민들이 이제야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지역 주민 모두가 스스로 조리시설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계속 도울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 1인당 세 그루씩 나무를 심고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1인 세 그루’ 운동도 전개하려고 해요.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가 그저 연료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온실가스를 흡수해서 우리 모두의 삶을 지켜주는 귀중한 존재임을 주민들과 함께 공감하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베검 씨는 마지막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개량 화덕 제조 분야에서 한국의 발전된 기술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바람대로 타쿠르가온 지역은 물론 방글라데시 전체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삶의 터전과 소중한 자원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지속적으로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를 시행할 예정이다. ■
이동현 브릿지2팀
[참여 학생 한 마디 / 아스마 아크터(Asma Akter), 지니데비 아그왈 여자대학 ]
“프로젝트로 배운 것, 공유하고 실천해야죠”
“‘깨끗한 공기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서야 이제까지 전 지구적 현상인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저를 비롯해 지역주민과 학생 모두가 적극 동참해 기후변화 현상에 대해 알고 함께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어요.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변화도 시작됐지요. 우리 지역 주민들이 재래식 화덕을 점차 청정연료를 사용하는 개량 화덕으로 교체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가족은 물론 먼 지역에 있는 친척, 친구들과도 프로젝트를 통해 배웠던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실천하려고 해요. 우리의 노력과 실천을 시작으로 방글라데시 전체가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기후변화에 취약한 ‘위기의 아시아 국가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현상임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선진국보다는 대응 역량이 부족한 저개발국가 및 빈곤층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 지구적 부의 편중 현상이 결과적으로 재난에 대한 대응 역량 차이로 이어질까 염려되는 대목이다. 이는 독일의 민간연구소인 저먼와치(Germanwatch)가 공개한 기후변화위기지수(CRI:Climate Risk Index)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지구상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을 조사한 결과, 소득이 높은 선진국보다 중저소득국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 10개국 중 6개국이 아시아 국가인 것으로 나타나, 이 지역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교육이 다른 지역보다 시급한 상 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