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기술 앞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대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도박이고, 우려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일 수 있다. 유네스코는 신기술을 파는 기업이나 치적을 생각하는 정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학습자와 가르치는 교사를 그 결정의 중심에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신기술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에 기대를 걸 수 있으리라고 이야기한다.
조바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지난 7월 유네스코가 2023년도 ‘세계 교육 현황 보고서(Global Education Monitoring Report, 이하 GEM보고서)’ 인 『교육 분야에서의 기술: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를 발간한 이후 국내외 여러 언론이 이를 기사화했다. 이는 스마트 기기 및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도구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기술이 우리, 특히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방식을 얼마나 바꿔놓을지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챗GPT’ 와 같은 생성형 AI(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열기 속에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신기술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저렇게 앞서가는데 우리는 뭐하나’라는 아우성 속에서 마냥 신중하기만 할 수 있는 교육 당국은 그리 많지 않으며, 이웃 아이들이 너도 나도 하는 걸 차분히 두고 볼 수 있는 부모도 그리 많지 않다. 언론 또한 이러한 주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기보다는 소비자나 공급자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들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네스코가 내놓은 이번 GEM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새로운 도구와 기술에 대해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고민을 해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습자와 교육자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원칙을 중심에 두고, 디지털 시대에도 교육이라는 공공재를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며 공평하게 활용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신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학생과 교사’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세부 질문을 던져 보자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술인가
21세기에도 교육은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공공재’라는 점에서, 교육 분야에서 도입하거나 사용할 새로운 기술이 ‘모두를 위한 것’인지는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인터넷이 각 가정뿐만 아니라 개인이 사용하는 기기들을 빠짐없이 연결하는 오늘날 대부분의 에듀테크(EdTech) 기업들은 ‘접근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성인학습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교육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학습 기회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장애를 가진 학습자에게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단순한 보조 도구를 대체하면서 학습 기회를 확장시켜 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 세계 저소득 국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상황이 여전히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가운데, 21세기의 새로운 교육 기술이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교육 붕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온라인 교육이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학습자를 배제했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학습은 잠재적으로 10억 명이 넘는 학생에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그 뒤에는 적어도 5억 명의 학생이 이를 활용하지 못한 채 뒤처졌다. 이는 전 세계 학생의 31%, 극빈층 학생의 72%에 해당한다. 21세기에도 전 세계적으로 초등학교의 40%, 전기중등학교의 50%, 후기중등학교의 65%만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고,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농촌 주민의 70%이상이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생활한다. 새로운 원격교육은 분명 기존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학습자 수억 명을 교육 단절로부터 구원했지만, 이전부터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수많은 학습자의 대부분은 이번에도 그대로 뒤에 남겨졌다. 이 아찔한 격차를 외면한 채 신기술의 접근성과 연결성을 이야기한다면, 결국 그것 역시 ‘모두를 위한 교육’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상황에 맞는 기술인가
신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지 여부는 결국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에서 기존의 교육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기술이 제시하는 새로운 미래에 현혹되기에 앞서 해당 기술이 현재 이를 도입하려는 국가, 혹은 교육시스템의 상황에 과연 적합한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그저 ‘남을 좇아가기 위해’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구매하는 것은 낭비를 초래할 뿐 아니라 기존의 교육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우려마저 있다. 보고서는 저소득 국가에서 인터넷을 깔고 기초적인 디지털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추가로 투자하거나 기존의 투자처로부터 전환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들 국가가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4)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정 부족분을 50%나 더 확대할 것으로 예측한다. 지구상의 여전히 많은 나라, 그리고 이 사회의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는 초고속 인터넷망이 아니라 날씨와 관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전기가 들어오는 교실과 편안한 책상이 더욱 많은 학습자들의 삶에 꼭 필요한 교육을 더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특정한 기기와 기술 보급이 끝이 아니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는지 여부를 따지는 일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교사와 학생 모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 도입만을 서두른다면 소중한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평균 67%의 교육용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98%는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채 기간이 만료됐다. 기초 문해력과 신기술 활용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학습자일수록 신기술을 올바로 활용하기 힘들고, 신기술의 부작용이나 악영향에 노출될 가능성도 더 높다는 연구가 있다. 보고서는 읽기 능력이 뛰어난 학생일수록 피싱 메일에 속을 확률이 적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신기술이 이끌어가는 21세기에도 교육은 여전히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라는 기본적인 능력을 빠짐없이 갖추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드시 최신의 기술만이 가장 교육 효과가 높다는 뜻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는 ‘레거시(구) 미디어’라 할 수 있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및 휴대전화가 온라인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대신하고 있다. 약 40개국이 라디오 교육을 이용하고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교실 수업과 결합된 텔레비전 방송 수업 프로그램을 통해 중등학교 취학률이 21% 증가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중국에서는 농촌 학생 1억 명에게 고품질의 수업 녹화물을 제공함으로써 학습 성과를 32% 향상시켰고,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를 38% 감소시켰다는 보고도 있었다.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인가
교육 신기술을 활용할 환경이 마련돼 있고 이를 모든 학습자가 공평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해도, 해당 기술이 목표한 교육 효과를 실제로 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보고서가 “신기술의 투입이 아니라 학습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물론 교육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거나 구체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교육의 부가가치를 똑부러지게 산출하는 방법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기술을 도입 혹은 구매하려는 당국이나 교육 소비자가 기업이 강조하는 이익, 혹은 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증거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교육 기술 제품들은 평균적으로 36개월마다 새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기술의 교육 효과에 대한 데이터는 대부분 해당 기술의 공급자로부터 나오고 있다. 교육 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제품을 팔고자 하는 쪽의 편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진행된 한 평가에 따르면 제품의 효과를 제시한 교육 기술 기업 중 단 7%만이 무작위 대조 시험을 실시했고 12%는 제3자 인증을 사용했으며 18%는 학술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17개 주 교사와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교육 기술을 채택하기 전에 동료 평가를 거친 증거를 요청한 비율은 단 11%에 불과했다. 어떤 연구는 교육 관련 신기술 중 단 2%만이 그 효과에 대한 강한 혹은 일정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는 신기술이 강조하는 교육 효과가 모두 거짓말이라거나 ‘뻥튀기’라는 뜻은 아니다. 다양한 상호작용과 시각적 표현이 들어간 교육 자료는 학생의 참여를 높일 수 있으며, 개별화된 적응형 소프트웨어는 교사가 학생의 진도를 추적하고 오류 패턴을 확인하고 차별화된 피드백을 제공하는 등의 유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 기술은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저렴하고 편리한 방법을 교사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보고서는 소비자가 교육 제품의 효과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독립적인 평가와 리뷰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민간 싱크탱크와 공립 대학이 파트너십을 맺고 교육 기술의 품질 표준과 평가 도구 및 공개적인 전문가 리뷰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지속가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인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은 새로운 기술의 지속가능성이다. 이는 단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학습자, 특히 더욱 디지털화되고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살아야 할 다음 세대가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먼저 가늠해 보자는 뜻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소개되고 이를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안전, 특히 개인정보를 중심으로 한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점점 자주 발생하고 있다. 연결성과 접근성이 강조되면서 교육 테크 기업이 이용자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은 더욱 쉬워졌으며, 정보의 양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과 아동 학습자에게 정보 유출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교육 도구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국가는 전체의 16%에 그친다고 분석하며, 특히 지난 팬데믹 상황에서 여러 국가가 급하게 온라인 교육 공급에 나서면서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환경을 철저히 살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기간 동안 아동 학습을 위해 추천된 163개 교육 기술 제품 중 89%가 수업 시간 또는 교육 환경 범위 밖에서 아동을관찰할 수 있거나 실제로 관찰한 것으로 밝혀졌다.
스마트 기기에 대한 과도한 몰입 또한 학습자 관점에서 기술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지나친 화면 노출 시간은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늘어난 화면 노출 시간은 자기 통제력과 정서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불안과 우울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14개국에서 영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사용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약간의 부정적인 영향을 발견한 바 있다. 또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등과 같은 대규모 국제 평가 데이터는 정보통신기술을 학생의 학업에서 적절한 사용 한계점을 넘어 사용하는 경우 부정적인 연관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들을 24시간 내내 붙들어두다시피 하는 소셜 미디어가 사이버 괴롭힘이나 온라인 학대의 통로가 되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혹은 특정 앱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하지만, 사용자를 통제하는 이러한 방법은 그 시행도 쉽지가 않으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고서는 사용자의 건강 문제, 데이터 보호, 교사의 인권과 안전문제 등에 대한 법률과 표준 및 모범 사례의 채택과 이행 필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학습자의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의 ‘시민을 위한 디지털 역량 프레임워크’는 디지털 역량을 ▲정보 및 데이터 리터러시 ▲의사소통 및 협력 ▲디지털 콘텐츠 생성 ▲안전 ▲ 문제 해결의 다섯 가지로 제시하는데, 현재 이들 역량 역시 국가마다, 그리고 지역과 계층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큰 실정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성인의 31%가 기초적인 디지털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도시가 농촌보다 2배, 노동 인구가 비노동 인구보다 3배, 사회경제적 상위 그룹이 하위 그룹보다 9배 더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는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이 변화시켜 나가는 세상 속에서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지난날의 보편교육이 사회 발전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듯 21세기의 교육 역시 새로운 세상에서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늘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기술 발전의 일부 부작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또 그것을 잘 활용하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번 보고서 연구진을 이끈 마노스 안토니니스(Manos Antoninis) GEM보고서 팀장이 내놓는 대답은 이렇다. “기술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뿐만 아니라 기술 없이도 살아가는 법, 넘쳐나는 정보에서 꼭 필요한 것만 찾고 그렇지 못한 것을 무시하는 법, 그리고 기술이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돕도록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