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말로 33년 교직을 접고 명퇴하는 아내의 화장대 앞 시간이 길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기초 화장품만 발라도 빛나던 얼굴이었는데. 참지 못하고 그만 일어서라고 독촉하다가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화장에서도 기초화장이 중요하듯, 모든 일은 기초가 중요하다. 요즘 누구나 이야기하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도 기초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제4차 산업혁명의 16대 핵심 기술도 기초 문해(foundation literacies)로 출발한다. 기초 문해란 학습자들이 일상에서 핵심 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지(how)를 가리킨다. 기초 문해는 문자 문해(literacy), 수리 문해(numeracy), 과학 문해(scientific literacy), 정보통신 문해(ICT literacy), 재무 문해(financial literacy), 문화시민 문해(culture and civic literacy)로 구성된다.
문해라는 기초공사
인류를 위하여 참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온 유네스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한 일을 꼽자면 그것은 바로 문해 증진이다. 우리나라가 세계가 부러워할 보편적 문해 국가가 된 데에는 유네스코의 도움이 컸다. 유네스코는 1945년 기구 설립 직후부터 문해를 교육과 인권의 핵심 의제로 꾸준히 다루어 오면서 문해의 등불을 높이 들고, 문해의 보편화에 앞장서 왔다. 문해는 인간의 기본권이자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기반이며,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유네스코가 초기에는 성인 기초교육을 뜻하는 말로 ‘기초교육’(fundamental education)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안다. 문해가 교육의 기초체력, 곧 토대(fundamental)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표현처럼 문해는 ‘인권이자 평생학습의 토대’이다. 토대가 튼튼하면 높게 쌓아올릴 수 있듯이 문해는 많은 파생효과를 낸다. 문해는 개인,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게 한다. 문해는 가난을 줄이고, 어린이의 사망률을 감소시키며, 인구 성장을 억제하고, 양성 평등을 성취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평화와 민주주의를 보장한 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를 웅변한다.
삶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문해
문해는 인간의 삶의 질과 관련된 모든 것과 통한다. 이른바 문해의 ‘승수효과’(乘數效果, 경제적 현상에서 투자, 정부 지출, 수출 등의 변화가 소득 등의 변화를 유발하여 파급적 효과를 낳고 마침내는 그 몇 배의 증가나 감소로 나타나는 효과)이다. 문해는 생태계, 물과 위생, 에너지, 건강, 정의, 양성평등, 교육, 권한부여, 평화, 식량 안전, 양질의 일자리, 포용 및 회복사회, 기후변화, 국제 파트너, 지속가능발전, 경제성장, 빈곤퇴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에서 말한 문해의 가치는 매년 9월 8일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을 기념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세계 문해의 날 기념식은 매년 전 세계에서 개최되어 인간 존엄과 인권의 문제로서 문해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며, 문해증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문해 의제를 진작시켜오고 있다. 2018년 세계 문해의 날은 유네스코 세계 문해상 시상식을 포함한 지구적 행사, 지역과 국가 행사, 가상공간에서의 축하행사 등으로 다채롭게 기념하고 축하한다. 이날 문해상으로 ‘세종상’이 수여되어 우리 편에서는 더욱 뜻 깊은 날이다. 세계 문해의 날 관전 포인트는 세계 문해의 날의 주제이다.
유네스코는 2003년부터 세계 문해의 날 주제를 2 년 주기로 채택해왔다. 2003-4년에는 ‘문해와 성’, 2005-6년에는 ‘문해와 지속가능발전’, 2007-8년에는 ‘문해와 건강’, 2009-10년에는 ‘문해와 권한 부여’, 2011-12년에는 ‘문해와 평화’, 2013-14년에는 ‘21세기를 위한 문해’, 2015-16년에는 ‘문해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주제로 채택했으며, 2017년의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문해’, 2018년의 주제는 ‘문해와 기술 개발’이다. 평생학습 맥락에서 성인과 청소년에게 주안점을 두어서 문해와 스킬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 한다. 여기서 스킬은 취업, 진로, 생계에 필요한 지식, 기술, 역량을 뜻하는데, 특히 이전 가능한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직업기술 스킬을 강조한다. 2018년 세계 문해의 날의 주제인 ‘문해와 기술 개발’은 문해가 4차 산업혁명의 초석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희수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대학원장
* 이희수 교수는 평생학습과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펼치며『각국의 평생교육정책』,『한국의 문해교육』등을 펴낸 교육학자다. 지속가능발전목표의 교육 분야 정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유엔 지속가능발전 교육목표 이행(SDG4-교육 2030)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맡았다.
* ‘알.쓸.U.잡’은 인기 TV프로그램 제목처럼 ‘알아두면 쓸 데 있는 UNESCO 잡학사전’의 준말로, 유네스코의 주요 관심사이자 활동 영역인 교육, 과학, 문화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사들의 칼럼으로 구성되는 코너입니다. 매월 다양한 관점과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 교육, 과학, 역사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