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북한 문제가 대화 소재로 오른다. 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꽤 많은 걸 이미 알고 있고 관심도 깊다. 북한과의 정치적 대립 역사와 김일성에서부터 내려온 김정은의 외교적 전략, 중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한반도 긴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내가 쩔쩔매는 형국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화젯거리로 올라오면 식사자리에 앉은 모두가 각자 나름의 열변을 토한다. 그 원인에서부터 역사적 맥락, 현재 유럽 여러 나라의 복잡한 이해관계, 종교와 정치의 뒤얽힌 갈등 등 다양한 주제들이 올라오지만, 저마다 자기 생각들이 뚜렷하다.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폭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시진핑의 장기집권 전략을 왜 중국인인들이 묵인하는지, 기독민주당 대표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추진하려는 사회민주당, 기독사회당과의 대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식사자리 토론은 끊이질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세계를 한 바퀴 돈건 마냥 어지럽다.
하지만 이런 토론이 주는 가장 즐거움은 내가 지구인이라는 자각이다. 내 삶은 한반도의 작은 도시에 머물러 있지만, 내 의식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 전체를 사려 깊게 살핀다. 이러한 자각은 ‘지구를 위해 내가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실천적 질문으로 이어지기에 결국 생산적이다.
오랫동안 한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교육받고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아온 우리는 세계시민의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제대로 교육 받은 적도 없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도 무지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학교가 하고 있는 세계시민의식 교육을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 한다.
국제뉴스를 거의 접하기 힘든 현실에서, 세계시민 의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하고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일깨워주어야 한다. 지난 7년 동안 KAIST에서 맡고 있는 수업 중 하나가 ‘글로벌 이슈’ 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알아야만 인류 전체에 애정이 생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웃과 인사하지 않고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무지한데, 그들과 친하게 지내거나 어려움에 부닥친 그들을 도울 순 없다. 그들과 함께 마을을 가꿀 수도 없다. 우리는 아는 만큼 사랑한다. ‘학문의 최전선에 선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KAIST 학생들이 지구가 앓고 있는 문제를 모른다면, 지구를 보듬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지구인들과 지구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젊은이들, 어르신들까지 전 세대에게 두루 교육하는 것! 이것이 세계시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유네스코 교육의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138 억 년 전에 탄생한 이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 이다. 이렇게 작은 존재가 우주의 크기를 짐작하고, 지구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체와 함께 공생하며, 75억 명의 지구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 또한 경이로운 일이다. 이를 깨닫는 것, 그것이 세계시민의식의 첫걸음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미래전략대학원장